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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3811] 자세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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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glara68] 쪽지 캡슐

2003-06-23 ㅣ No.3818

요한 13,1 -20

 

지거 쾨더,

 

제자들의 발을 씼어 주심,

 

캔버스유화

 

-김남철 신부님의 글입니다.

 

지거 쾨더는 오늘날 독일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종교화가 가운데 한 명입니다. 그는 주로 표현주의 기법에 근거하여 신·구약성서의 내용을 다양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는 매우 강한 색을 사용하고 있으며 성서의 주제를 보기 드물게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발을 씻어주시는 예수님〉은 요한 복음에 나오는 성서말씀에 근거해서 그려졌습니다(요한 13, 1-20참조). 요한복음에만 나타나는 이 구절은 공동체의 기본 틀이 이미 갖추어진 시대에 쓰여졌다고 봅니다. 그런데 "상전"과 "아랫사람"이라는 신분상 상하의 격차가 이 공동체들 내에 이미 존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서 저자는 최후의 만찬 때 보았던 대단히 인상적인 장면을 기억해냅니다. 이 장면을 이 화가는 그림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스승 예수께서 겉옷을 벗었습니다. 그분은 세숫대야에 물을 채우고, 식탁에 함께 있던 동료들의 발을 씻어주기 시작합니다. ’발을 씻어주는 행위’는 동방세계의 연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연회석에 자리잡기 전에 먼지투성이의 발을 깨끗이 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인들의 몫이었습니다. 하인들은 손님들의 신발 끈을 풀어주고 발을 씻어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하인들의 봉사를 떠맡으십니다. 그분께서는 해야 할 일을 어떤 하인에게도 맡기려 하지 않고 몸소 이 일을 행하십니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장면에 이르게 됩니다.

 

시몬 베드로는 자신의 스승으로부터 이런 봉사를 받는 것을 한사코 사양합니다. "주님, 그렇게 굽혀서는 안됩니다. 하인이나 하는 그런 일을 저를 위해 해서는 안됩니다. 도무지 그럴 수 없습니다. 주님이 하인이라뇨!"

 

이 때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런 가르침을 주십니다. "내가 그대의 발을 씻어주지 않는다면, 그대는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과 함께 하신 최후만찬 석상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것을 회상하며 지거 쾨더는 그 장면을 인상깊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림 읽기

 

▶ 등장인물

 

등장인물은 아주 단순합니다. 그림에는 단 두 사람의 인물만이 나타나 있습니다.

 

한사람은 의자에 앉아있고 다른 한 사람은 땅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사람의 발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예수님과 베드로 두 사람만을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최후만찬을 하실 때 12제자들이 있었지만 화가는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해서 오직 두 사람만을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 장소

 

등장인물들이 있는 장소는 실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이 이루어졌던 장소가 다락방이었듯이 작품에서는 이 갈색으로 처리된 작은 방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 도구

 

이 그림에 나타난 도구들은 복잡하게 많이 있지 않습니다. 위쪽에 흰 식탁보가 덮여있는 탁자가 놓여있고 그 탁자 위에는 두 가지의 물품이 놓여 있습니다. 하나는 포도주가 담긴 컵이고 또 하나는 쪼개진 빵이 담겨있는 접시입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앉아있는 의자와 베드로가 발을 담그고 있는 대야가 놓여있으며 그 대야 밑에는 파란색의 천이 깔려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파란색 천 때문에 대야는 마치 물에 띄워진 배처럼 느껴집니다.

 

▶ 자세

 

베드로는 스승 예수의 몸에 오른손을 대고 있습니다. 이런 동작은 무엇인가 간곡히 청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반면 그의 왼손은 그림의 중앙에 있는데, 무엇인가를 거부하는 몸짓입니다. 거부하는 손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한 베드로의 모습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둥근 대야에 발을 담그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제 발을 씻으시다니요? 제 발만은 절대로 못 씻으십니다(요한 13, 6-8참조)라고 거부하였던 성서의 말씀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무릎을 꿇은 스승의 모습에서 스승 예수께서 지니신 사명의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온전히 섬기고 그의 발 위로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무릎꿇는 행위를 통해 인간에 대해 겸허함을 보여주는 몸짓입니다.

 

▶ 색깔

 

  실내의 따뜻한 갈색은 땅의 색이며 가난함과 겸손을 나타내는 색으로 그림이 표현하고 있는 의미를 잘 살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뒤집어쓰고 있는 머리 수건과 흰옷을 입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입고 있는 흰옷은 천상적인 색을 나타냅니다. 화가는 이 작품에서 지극히 인간적이면서도 신적인 예수님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 시점

 

그림의 시점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두고 있습니다. 이 위치는 우러러보는 위치가 아니고 굽어보는 위치라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작가는 예수께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해 실천적 언어로 가르치고 계시는 광경을 우리 모두 잘 지켜볼 수 있도록 시점을 취하고 있습니다.

 

▶ 상징

 

그림에 나타난 상징의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빵과 포도주 : 빵과 포도주는 성체성사를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최후만찬 때 제자들에 나누어주었던 빵과 포도주였으며 오늘날 미사 때 거행되는 성체와 성혈이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서 접시 위에 쪼개진 빵은 네 등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접시의 빵이 십자가 형태로 쪼개진 것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당신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십자가사상 제사를 의미합니다. 네 등분으로 되어있는 데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담은 4복음서를 상징하며, 이 4복음서가 모여 온전한 빵의 형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4는 동서남북의 방위에서 나타나듯이 온 세상을 표현하는 상징적 숫자이기도 합니다(성작과 성반그림).

 

벗은 발 : 그림에서 예수님은 아무 것도 신지 않은 맨발의 상태입니다. 이것은 ’겸손된 삶’을 뜻합니다. 겸손을 상징하는 대지에 맨발을 대는 것은 또 다른 겸손의 표현입니다. 일찍이 모세가 불떨기 나무 앞에서 하느님의 신탁을 받았을 때 그는 신발을 벗고 그곳에 갔습니다. 겸손한 사람만이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출애 3,1-12참조). 또한 벗은 발은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것, 즉 육화를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벗은 발이 나타난 그림).

 

대야 : 방주를 연상시키는 대야를 예수님은 부축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방주는 세상으로 표현되는 혼돈의 바다에서 사람을 구원하는 교회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예수님께서 부축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대야의 둥근 형태는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삶, 영원한 생명을 상징합니다.

 

연두 빛 물 : 베드로가 발을 담그고 있는 물은 연두 빛이 감돌고 있습니다. 이 연두 빛 물은 생명의 물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즉 방주에 의해서 바닷물과는 구분되어지는 생명의 물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은 우리가 직접 볼 수가 없고 그분의 뒷모습만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작가의 의도가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는 비로소 대야 속, 발씻는 물에 비추어진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게됩니다. 즉 참된 봉사 안에서 그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대야그림).

 

그림묵상

 

▶ 예수님의 얼굴과 베드로의 발

 

베드로가 몰이해 때문에 한사코 사양하자, 예수께서는 발을 씻어주지 않는다면, 베드로와 주님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행하신 것과 같이 서로 씻어주라고 명하셨습니다. 베드로의 발을 씻을 때에 물에 비친 예수님의 얼굴이 베드로의 발과 정확히 겹칩니다. 이것은 미래를 향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시몬, 그대가 베드로로서 그대의 역할을 받아들인다면 나의 본을 따르시오. 그대의 발이 나의 모습에 의해, 즉 겸손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는 모습에 의해 인도되게 하시오. 그대에게 주어질 직분에서 중요한 것은 지배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인처럼 봉사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인간에게 깊이 기우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물에 비친 예수의 얼굴에 나타난 슬픔은 어쩌면 우리가 역사를 통해 알고 있는 것을 예감케 하고 있습니다(게르트루트 비트만 편저, 《지거 쾨더의 성서에 관한 그림들》, 슈바벤출판사 170쪽 인용).

 

 

 

▶ 발씻은 물에 비친 주님의 모습

 

우리는 이 그림의 어디에서도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발씻은 물에 비친 모습에서 그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하는 봉사 속에서 우리는 그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고 겸허한 봉사를 통해서 그분께서 사람이 되어오신 육화(강생)의 신비를 몸으로 체험할 수 있게될 것입니다.

 

무릎을 꿇는 행위와 손에서 가장 멀리 있는 부분인 발을 씻어주는 행위야말로 상대방의 가장 부족한 부분을 감싸는 행위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무릎을 꿇는 행위는 굴복의 자세처럼 보여집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모습을 바로 더럽다고 여겨지는 발씻은 물에서 그분의 모습을 찾아보게 되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바로 우리가 그분의 모습을 진정으로 찾을 수 있는 곳은 발씻은 물에서였던 것처럼 구차하고 하찮게 여겨지는 봉사의 삶에서 오히려 그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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