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의 작은터

<37> 포인세티아 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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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나 [shyj] 쪽지 캡슐

2000-04-08 ㅣ No.4855

포인세티아 화분

포인세티아 화분

 

우편함에 새하얀 봉투 하나가 도착해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여자는 가슴이 뛰었지요.

 

엉뚱한 고지서이거나, 안내문이 들어 있는 우편물일 가능성이 더 컸지만,

어쩐지 저 편지는 그 여자가 그토록 오래 기다리던 그 사람으로부터의

편지일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하얀 편지봉투에 그 남자의 이름 석자가 가지런히 써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을 이루고 있는 자음과 모음마저도 다 각별하게 아름다웠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마음의 공백기를 겪으면서 그 여자는 너무나 힘이 들었습니다.

 

그저 좋아하는 마음으로 무엇이든 해결 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었지만,

그 남자의 말처럼 ’사랑은 자기를 완성해 가는 과정’이었고,

도를 닦는 일’처럼 어렵기만 했습니다.

 

일에서의 어려움도 깊었고, 사랑했던 사람과도 서먹해졌던

가을에서 겨울에 이르는 시간을 견뎌내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서로 다독여 주고 위로하면서 견뎌도 어려운 시절일텐데, 사랑하는

사람과도 서먹해지고 나니까 세상이 더욱 춥고 막막했습니다.

 

어느때는 그에게 찾아가서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고 말하고도 싶었습니다.

 

처음의 그 열정은 다 어디로 갔느냐’고도 묻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차마 거기까지 무너질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그 여자는 버텼습니다.

 

햇빛도 물도 비료도 얻지 못하고 시들어가는 화분처럼 그 여자는 힘이 들었습니다.

 

그런 시간을 견뎌냈기 때문에 그 남자의 이름이 가지런히 쓰여진 편지는

그 여자에게 손이 떨려올 만큼의 의미를 가졌던 것이지요.

 

편지는 ’포인세티아 화분’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대가 선물한 포인세티아 화분을 처음 본 직원들은 매우 신기해 했지.

화분 하나로 사무실 가득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출해 낼 수 있다는 것에

나도 바라볼 때마다 즐거웠어. 그런데 아직 뿌리가 다 내리지 않았는지

새 잎이 돋지를 않았어. 난 참 열심히 지극정성으로 물을 주었지.

 

내가 사무실을 비우게 될 때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해서라도 이틀에 한번씩은

물을 주게 했어. 신정 연휴에는 일부러 들러서 화분에 물을 주고 갔었지.

지난 주에는 4일이나 지방 출장을 다녀왔어.

 

그래서 오늘,닷새만에 사무실에 출근했는데,

내가 출근해서 가장 먼저 본 것이 뭔지 알아? 포인세티아 화분이었어.

 

그런데 말야, 나무의 중간쯤에서 새 잎이 돋아나고 있는 거야.

나는 화분을 두 손으로 감싸안고 여러 번 쓰다듬어 주었지.

 

내가 화분을 들고 나가서 동료들에게 새 잎이 났다고 자랑했더니

다들 아침에 새 잎이 난 것을 보았다고 자기들 일처럼 기뻐해 주웠지.

화분을 보면서 가슴아파했던 것은 나만이 아니었던 거야.

 

결국 나는 그대가 선물한 포인세티아 화분을 죽이지 않고 살려냈어.

그걸 자랑하느라고 이렇게 오랜만에 편지를 쓰는거야.

 

모든 관계는 깊어지면 아파진다.’라는 말, 알고 있지?

우리 잘 견디어내자. 다시 만날때까지 ... 안녕."

 

편지 위에 눈물이 몇방울 떨어져서 기어이 얼룩이 지고 말았습니다.

 

자신은 만나지 못하는 속상함으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동안, 그 남자는

사랑을 키우듯이 화분을 키우고 있었다는 생각이 그 여자를 목메이게 했지요.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자랑스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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