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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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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셉 [jioseph] 쪽지 캡슐

2001-02-02 ㅣ No.2488

다해 연중 제 4주 금요일 주님의 봉헌 축일

 

 

 

말라기 3,1-4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아라, 나 이제 특사를 보내어 나의 행찻길을 닦으리라.

그는 너희가 애타게 기다리는 너희의

상전이다. 그가 곧 자기 궁궐에 나타나리라. 너희는 그가 와서 계약을 맺어 주기를 기다리지 않느냐?

보아라. 이제 그가 온다.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가 오는 날 누가 감히 당해 내랴? 그가

나타나는 날, 누가 버텨 내랴?

그는 대장간의 불길 같고, 빨래터의 잿물 같으리라.

그는 자리를 잡고 앉아, 풀무질하여 은에서

쇠똥을 걸러 내듯, 레위 후손을 깨끗하게 만들리라. 그리하면 레위 후손은 순금이나 순은처럼 순

수하게 되어 올바른 마음으로 제물을 바치게 되리라.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이 바치는 제물이 옛날 그 한처음처럼 나에게 기쁨이 되리라."

 

루가 2,22-32

 

모세가 정한 법대로 정결 예식을 치르는 날이 되자 [예수의 부모는]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그것은 "누구든지 첫아들을 주님께 바쳐야 한다."는 주님의 율법에 따라 아기를 주님께

봉헌하려는 것이었고 또 주님의 율법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정결례의

제물로 바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게 살면서 이스

라엘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는 성령이 머물러 계셨는데 성령은 그에게 주님께서 약속

하신 그리스도를 죽기 전에 꼭 보게 되리라고 알려 주셨던 것이다.

마침내 시므온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전에 들어갔더니 마침 예수의 부모가 첫 아들에 대한 율

법의 규정을 지키려고 어린 아기 예수를 성전에 데리고 왔다. 그래서 시므온은 그 아기를 두 팔

에 받아 안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주님,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이 종은 평안히 눈감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보았

습니다. 만민에게 베푸신 구원을 보았습니다. 그 구원은 이방인들에게는 주의 길을 밝히는 빛이

되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 됩니다."

< 아기의 부모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을 듣고 감격하였다. 시므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

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아기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뜨리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할 분이십니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되어 당신의 마음은 예

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반대자들의 숨은 생각을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

또한 파누엘의 딸로서 아셀 지파의 혈통을 이어받은 안나라는 나이 많은 여자 예언자가 있었다.

그는 결혼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같이 살다가 과부가 되어 여든네 살이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

고 밤낮없이 단식과 기도로써 하느님을 섬겨 왔다. 이 여자는 예식이 진행되고 있을 때에 바로

그 자리에 왔다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예루살렘이 구원될 날을 기다리던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의 이야기를 하였다.

아기의 부모는 주님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다 마치고 자기 고향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으로 돌

아갔다.

아기는 날로 튼튼하게 자라면서 지혜가 풍부해지고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있었다.>

    

 

성탄 후 40일째 되는 날에 지내는 이 축일은 예수님을 낳으신 마리아께서 모세 율법대로 행하신

정결례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전 봉헌(루가 2,22-38)을 기념한다. 그리고 이 날 전통적으로 교회는

1년 동안 사용할 초를 축복하며 모든 전례 때마다 그 불을 켜 놓는다. (정결례<취결례>, 산모 축

복식이라 할 수 있는데, 모세 율법에 따르면, 산모는 출산한지 40일 만에 성전에 나아가 몸을 정

결하게 하는 의식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주님 봉헌 축일'(2월2일)을 '봉헌 생활의 날'로 제정하시고, 전세계

교회가 이를 거행하도록 하셨다. 봉헌 생활에 대하여 어버이다운 배려를 해 오셨던 교황께서는

봉헌 생활은 형제 자매들에게 예수님의 삶과 행동을 일깨워 주는 "살아 있는 기념"이라고 하셨다

(교황 권고'봉헌생활',22항 참조). 수도회성은 이 봉헌 생활의 날을 적극적인 성소의 날이 되도록

준비하여, 모든 신자. 특히 젊은이들이 하느님의 커다란 은총인 봉헌 생활을 이해하는 계기로 삼자고 당부하였다.

   

동방의 옛 전례는 이 축일이 갖는 의미를 매우 잘 표현하였다. 예수님께서는 탄생 후 40일째 되

는 날, 모세법(출애 13,11-13. 레위 12,6-8)에 따른 첫 봉헌 예식으로써 성전에서 선조들의 하느님

을 보여 주시고, 믿음의 백성을 대표하는 시므온과 안나를 만나셨다. 시므온과 안나는 "만민의 빛

"이신 예수님이의 현현을 증언하고 찬양한다.

이 사건의 여러 부분들은 강생의 대축제를 끝마치는 이 날의 축제를 특징짓고 있다. 오늘은 무엇

보다 주님의 봉헌을 기념하면서 빛의 행렬 때에 주님과 당신 백성의 만남의 상징인 시므온의 만

남도 기억한다. 그리고 부수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어머니이신 동정 마리아의 정결 예식도 기억한

다. 이러한 관습에서 오랫동안 2월2일을 '마리아의 정결례 축일'로 지내게 되었다.

이 날 미사는 먼저, 성전에 봉헌되신 주님(입당송, 본기도, 감사송)과 시므온의 만남(감사송, 영성

체송, 영성체 후 기도)을 기억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가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게 봉헌"될 수 있

기를 청하며 (본기도) 은근히 정화를 보이고 있다. 빛의 행렬은 하느님 집에 들어가는 우리의 발

걸음을 기쁨으로 가득 차게 하고, 우리 모두 한 형제가 되게 한다. 우리는 하느님 집에서 빵을 나

누며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오실 때까지" 그렇게 할 것이다(행

렬 전의 사제의 권고).

우리는 오늘 시므온과 안나처럼 "세상의 빛'이신 분을 만난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깊은 믿음으로

이 빛을 환영한다. 살아서 이 믿음을 충실하게 고백한 이들에게는 하느님 나라에서 최종적이고

결정적으로 주님과 만날 것이 약속된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를 통하여 당신께서 오시는 길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신다. 뉘우치지 않으며

깨끗해지지 않고서 하느님을 만날 수는 없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특사는 하느님의 행찻길을 닦을

것이다. 이 준비는 세례자와 메시아 예수님을 믿고 또 예수님께서 참으로 새로운 생명이심을 믿

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제1독서, 말라 3,1-4).

이제 신비가 밝혀진다. 목자들은 베들레헴으로 가서 아기의 탄생을 확인하고 이 탄생 소식을 기

쁜 소식으로 세상에 알렸다. 그러나 히브리 백성들은 이 사건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였다. 노인 시므온만이 성전에 봉헌된 아기를 보고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졌음을 안다. 오랫동안 메시아를 기다려 온 그는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 충실한 백성의 상징으로 소개된다. 그리스도의 신비는 이미

밝혀졌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민에게 구윈의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맞아들이는 첫 사람이 되었어야 했던 히브리인들은 그분을 배척하게 된다. 슬프게도 그리스도께써는 히브리인들에게 배척받아 수난을 겪게 되신다. 마리아께서는 그 배척과 수난의 증인이 되실 것이다.

이것으로 마리아께서는 마음의 고통을 겪으신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예수님의 생애는 탄생에서 부터

 

죽음에 이르기 까지 인류를 위해 봉헌된 삶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봉헌 축일을 지내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자신의 삶도 하느님께  봉헌될 수 있기를 다짐며

 

기도하면서 한 해동안 전례에 사용할 초를 축성합니다.  

 

이와 같은 봉헌의 의미 때문에 오늘을 수도자들의 날로

 

기억하기도 합니다.  수도자의 정식 명칭은 '축성 생활

 

회원'입니다.  복음 삼덕 또는 복음적 권고라고 부르는

 

'정결, 청빈, 순명'을 서약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축성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독신과 청빈 그리고

 

순명에 대해 권고하신 바를 실제로 살고자 하는 삶이

 

수도 생활인 것입니다.  교회 문헌에 따르면 수도자의

 

삶은 '천국의 삶을 지상에서 미리 사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 삼덕이 단지 극기나

 

인내나 포기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복음 삼덕의

 

삶은 하느님의 은총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고 동시에

 

하느님의 은총을 담는 그릇이 되기 때문입니다.  복음

 

삼덕의 근본 정신은 가난한 마음입니다. 하느님과 교회

 

외에는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겸손한 빈마음.  그렇기

 

때문에 복음 삼덕을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채워지는 삶이고 따라서 참으로 진복을 체험하게되는

 

삶이기 때문에 '천국을 지상에서 사는' 삶이라고 정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삼덕의 삶은 수도자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할 자유롭고 복된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성인은 "이 세상에는 수도하는 사람이

 

존재할 뿐 수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난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  즉

 

수도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지 '수도자'란 존재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수도회에 소속되어

 

수도복을 입었더라도,  복음적 권고의 삶을 통해 하늘

 

나라를 살지 못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이 세상에는 생각보다 많은 젊은이들이 순수한 이상을

 

갖고 복음적인 삶을 살고자 투신하고 노력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느님이 주시는 은총으로 채워

 

지고자 여러분이 비워내어야 할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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