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온 뒤의 촉촉한
풀냄새가 나는 사춘기
조숙했던 나는
세상이 생긴 이유에서부터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까지
온통 궁금한 것 투성이었다.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궁금하긴 했지만 드러내어
묻지 못하는 부끄러움 때문에
동화 같은 이야기만
머릿속으로 그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봄기운에 지쳐
졸고 있는 우리들에게
국어 선생님께서 물었다.
"너희들은 사랑이 무언지 아니?"
선생님의 느닷없는 질문에
졸음이 확 달아난 우리들은
서로 말똥말똥 쳐다볼 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잠시 뒤 선생님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곧 오월이 오면
라일락 꽃이 필거야.
하얀 라일락꽃은 아름답고 향기롭지.
누구나 그 향기를 맡으면 행복해지고
구름 속을 날아다니는 것처럼 들뜨게 돼.
하지만 그 아름다운 꽃을
한 움큼 따다가 입 속에
넣고 깨물어 봐. 너무나 쓴맛에
도로 뱉어 버리게 될 거야.
사랑이란 바로 이런 거란다.
겉모습은 아름답고 향기롭지만
진짜 사랑을 맛보게 되면
쓰디쓴 고통을 겪어야 해.
그 고통을 겪어 내야만
참사랑을 얻는 거란다.
너희들은 부디 향기에만
취하지 말고 참사랑을 하길 바란다."
"아는 것과 깨닫는 거에
차이가 있다면
깨닫기 위해서는
아픔이 필요하다는 거야,"
깨달으려면 아파야 하는데,
그게 남이든 자기 자신이든
아프려면 바라봐야 하고,
느껴야 하고, 이해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깨달음이
바탕이 되는 진정한 삶은
연민 없이 존재하지
않는 거 같았다.
연민은 이해 없이 존재하지 않고,
이해는 관심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관심이다.
공지영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