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동성당 게시판

회심기(무소유 - 1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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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8 ㅣ No.12403

그리고 그 일터에는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밤잠도 못자며 땀 흘려 일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저마다 몇 사람씩 딸린 부양가족이 있을 것이다.
그들 가족 중에는 지금 입원 환자도 있을 거고,
등록금을 내야 할 학생도 있을 것이다.
연탄도 들여야 하고,
눈이 내리기 전에 김장도 해야 할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보내 주지는 못할망정 살기 위해 일하는 소리조차 듣기 싫다는 거냐?
 
이처럼 생각이 돌이켜지자 그토록 시끄럽고 골이 아프던 소음이 아무렇지도 않게 들렸다.
이때를 고비로 나는 종래까지의 사고와 가치 의식이 아주 달라졌다.
이 세상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 많은 이웃과 함께 어울려 살고 있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새겨지게 되었다.
 
소유 관념이나 손해에 대한 개념도 자연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내 것이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손해란 있을 수 없다.
또 내 손해가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겐가 이익이 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잃은 것이 아니라는 논리였다.
 
절에는 가끔 도둑이 든다.
절이라고 이 지상의 풍속권에서 예외는 아니다.
주기적으로 기웃거리는 단골 도둑이 있어 허술한 문단속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날마다 소용되는 물건을 몽땅 잃었을 때 괘씸하고 서운한 생각이 고개를 들려고 했다.
그러자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 그 생각을 지워 버렸다.
한동안 맡아 가지고 있던 걸 돌려보낸 거라고.
 
자칫했더라면 물건 잃고 마음까지 잃을 뻔하다가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의 교훈이 내 마음을 지켜 주었던 것이다.
 
대중 가요의 가사를 빌릴 것도 없이, 내 마음 나도 모를 때가 없지 않다.
정말 우리 마음이란 미묘하기 짝이 없다.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 한 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여유조차 없다.
그러한 마음을 돌이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 마음이라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화나는 그 불꽃 속에서 벗어나려면 외부와의 접촉에도 신경을 써야겠지만,
그보다도 생각을 돌이키는 일상적인 훈련이 앞서야 한다.
 
그래서,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고 옛사람들은 말한 것이다.
 
                                                 - 법정, 1972 -(무소유 -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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