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십리성당 게시판

(펌)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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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이 [euni3621] 쪽지 캡슐

2004-06-24 ㅣ No.3069


제1독서 이사야 49,1-6
    바닷가에 사는 주민들아, 내 말을 들어라. 먼 곳에 사는 부족들아, 정신 차려 들어라. 주님께서 태중에 있는 나를 이미 부르셨고 내가 어머니의 배 속에 있을 때에 이미 이름을 지어 주셨다. 내 입을 칼처럼 날세우셨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 날카로운 화살처럼 나를 벼리시어 당신의 화살통에 꽂아 두시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 너에게서 나의 영광이 빛나리라."
    그러나 나는 생각하였다. "나는 헛수고만 하였다. 공연히 힘만 빼었다." 그런데도 주님만은 나를 바로 알아주시고, 나의 하느님만은 나의 품삯을 셈해 주신다.
    주님께서 나를 지극히 귀하게 보시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신다. 야곱을 당신께로 돌아오게 하시려고, 이스라엘을 당신께로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태중에 지어 당신의 종으로 삼으신 주님께서 이제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종으로서 할 일은,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살아남은 이스라엘 사람을 돌아오게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나는 너를 만국의 빛으로 세운다. 너는 땅 끝까지 나의 구원이 이르게 하여라."
제2독서 사도행전 13,22-26
    그 무렵 바오로가 말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조상들에게 다윗을 왕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이 다윗에 대해서는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요, 내 뜻을 다 이루어 줄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약하신 대로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구세주 예수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분이 오시기 전에 요한은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요한이 자기 사명을 다 마쳐 갈 무렵에 '당신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그분은 내뒤에 오실 터인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입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형제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공경하는 이방인 형제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은 바로 우리에게 보내 주신 것입니다."
복음 루가 1,57-66.80
    엘리사벳은 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이웃과 친척들은 주께서 엘리사벳에게 놀라운 자비를 베푸셨다는 소식을 듣고 엘리사벳과 함께 기뻐하였다.
    아기가 태어난 지 여드레가 되던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왔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가리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아기 어머니가 나서서 "안 됩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해야 합니다." 하였다.
    사람들은 "당신 집안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하며 아기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물었다.
    즈가리야는 작은 서판을 달라 하여 "아기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이 모두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바로 그 순간에 즈가리야는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하게 되어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모든 이웃 사람들은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이 일은 유다 산골에 두루 퍼져 이야깃거리가 되었고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이것을 마음에 새기고 "이 아기가 장차 어떤 사람이 될까?" 하고 말하였다. 주님의 손길이 그 아기를 보살피고 계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기는 날로 몸과 마음이 굳세게 자라났으며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오늘의 묵상 - 빠다킹 신부님
    우리는 누구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은 또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례명이지요. 그런데 잘 보면 이름이나 세례명이 그 사람과 많이 연관된다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아마도 그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는 함축적인 의미가 담기도록 이름을 짓기 때문에, 또한 자신의 이름에 걸맞게 생활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이름이나 세례명에 연관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저는 세례명이 마태오입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산적인 사고를 더 즐겨서 하며, 신학교 다닐 때 직책을 맡게 되어도 주로 돈을 만지는 총무 일을 보게 되더군요.

    아무튼 이름은 각 개인에게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름값을 해야 한다는 말도 있는 것 같아요.

    오늘 복음에서 요한은 할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이 할례는 이름을 짓는 명명식을 동반했지요.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름은 그저 딴 사람과 구별하기 위한 호칭용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나타내는 중요한 뜻을 가졌습니다. 즉, 그들의 이름은 일생동안 그들이 할 사명을 가리키는 일종의 예언적인 성격을 지니는 것이었죠.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이처럼 이름이 중요하기 때문에 명명식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이 이름을 짓는 권리는 물론 부모에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사명이 부여되지 않았을 때는 보통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전승하는 것이 통례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엘리사벳의 아들 이름을 즈가리야라고 해야 할 것이라고 하였지요. 그러나 엘리사벳은 아들 이름을 요한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요한의 탄생을 예고할 때에 ‘그는 바로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을 가지고 주님보다 먼저 와서 사람들을 올바른 생각을 하게하고 주님을 맞아들일 만한 백성이 되도록 준비시킬 사람으로 요한이라 하라’고 천사가 즈가리야에게 일러 주었는데 그는 그 말을 믿지 않아 귀머거리가 되고 벙어리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이런 사정을 성령을 통하여 알았고 그 성령의 영감을 받아 천사가 남편에게 일러 준 요한이라는 이름을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선구자의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아버지 즈가리야의 입이 열리고 귀가 트였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하느님은 자비하시다’는 자기 이름의 뜻처럼, 하느님의 자비로 이 세상에 파견되었고, 예수님을 겸손되이 준비하면서 세상에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선포하였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으로부터 이름을 받았습니다. 바로 여러분들의 세례명이 바로 주님으로부터 받은 이름이지요. 요한의 부모가 요한의 이름을 주님으로부터 받고 오늘 복음에서 나와 있듯이 인정했기에 즈가리아의 입이 열리고 귀가 트인 것처럼 우리 역시 주님으로부터 받은 이름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이름처럼 평생을 하느님의 자비를 세상에 전한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 자신의 이름값을 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자신의 이름값을 하십니까? 우리 각자 각자가 이름값을 하는 만큼 주님의 나라는 우리 곁에 더 가까이 다가올 것입니다.
오늘의 성인 - 세례자 요한(John)
    성인들 가운데 탄생 축일을 경축하는 분은 세례자 요한 한 분 뿐이다. 요한은 예루살렘 성전의 사제 즈가리아와 성모 마리아의 친척 엘리사벳의 아들로서, 예루살렘 남서쪽에 위치한 아인 - 카림 태생이다. 그는 가브리엘 천사의 탄생 예고를 통하여 석녀로 알려진 엘리사벳에게서 잉태되었으며, 출생 이후에는 서기 27년경까지 유다 사막에서 은수자로 지낸듯 하고, 대략 30세쯤 되어서부터 요르단강에서 설교하고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사명을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세례자 요한이란 칭호로 널리 알려지게 된 듯하다. 예수께서 그에게 세례받으러 왔을 때 그분의 신원을 알아보고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떻게 선생님이 제게 오십니까?"하며 사양한 일이 있다. 예수께서 갈릴래아로 떠나신 후에도, 요한은 요르단 계곡에서 설교를 계속하였는데, 영주 헤로데의 사주로 인하여 사해 근방 마채로 요새로 투옥되어 지내던 중, 헤로디아와 살로메의 간교에 빠진 헤로데가 그를 참수케 하였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세례자 요한은 사해 근방에 있었던 쿰란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았을 가능성이 짙다고 한다. 세례자 요한 수난 기념일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자신의 이름을 자랑스워합시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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