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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7일 성모의 종 수도회창설자 일곱성인축일♬With Your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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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3-02-16 ㅣ No.965

축일 : 2월 17일

성모의 종 수도회 창설자 일곱 성인 축일

St. Septem Ord. Servorum B. M. V

 

성 알렉시오 팔코니에리

alexis falconieri

1310 창설자 카파지오  

 

고대 교회에서는 7을 거룩한 숫자로서 존중해 왔다. 사실 얼핏 생각해 보면 7성사, 성령 칠은 가상(架上)칠언 등 7과 인연이 있는 사물은 얼마든지 있다. 특히 묵시록을 읽어보면 이루 셀수 없을 정도로 그 예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지금 말하려고 하는 7성인이 일치 합심해 성모의 종 수도회를 창립하고 수덕에 매진한 것도 생각하면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성 본필리오 모날디오, 성 보나줌다 마네도, 성 마네도 안델라, 성 아미데오 데 아미데이, 우구치오의 성 우구치오, 성 소스데네오 데 소스데네이 그리고 알렉시오 팔코니에리, 이들 일곱 성인은 모두 북 이탈리아에 있는 플로렌스의 대 상인(商人)들로 13세기 중엽의 사람들이다.  

 

1233년 8월 15일 프로렌스는 구엘피와 기빌리니로 분열되었다. 이 내전에 가담하기 위해 투구로 무장한 일곱 청년들에게 성모님께서 발현하셨다고한다. 이 발현을 지켜본 청년들은 성모님의 말씀대로 모든 무기를 버리고 투구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수도회를 창설했다. 그 수도회 이름은 성모님께 바쳐진 마리아의 종 수도회였다.

 

1233년 성모 승천 대축일에 성모 마리아께서 그들 각자에게 발현하셔서 그들에게 은수자의 기도와 고독한 생활을 계시하시고 집을 떠나 수덕의 길을 닦도록 권했으므로 그들도 이제는 굳은 결심을 하고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와 같이 자기들의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주교의 하가를 얻어 9월 8일 성모 성탄 축일을 계기로 교외에 마련한 가마르자라는 초막에서 그립던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어느날 그들이 초라한 옷을 입고 읍을 걷고 있으니까 조그만 아이들이 졸졸 따라오면서 대단히 즐거워하듯이 "성모의 종, 성모의 종"하며 떠들었다. 그들의 수도회가 후에 주교에게 "성모의 종 수도회"라고 명명(命名)된 것은 이러한 아이들의 말을 따라 지은 것이다. 그 아이들 중에 어린 필립보 베니디오라는 아이도 있었는데, 그가 나중에 성모의 종 수도회에 들어와 총장의 중책을 맡아 회의 발전에 전력하고 성인이 되었다는데, 하느님의 섭리하심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7성인의 탄복할 만한 생활양식은 곧 마을에 소문이 퍼져 많은 사람들이 지도를 받으려고 모여들었다. 성인들은 이를 귀찮게 여기고 주교의 허가를 얻어 다시 그곳에서 90리 가량 딸어진 몬테 세나리오라는 적막한 곳에 자리를 잡고 기도와 고행의 은수 생활을 했다.

 

1240년에 그들은 또 다른 마리아 환시를 보고, 성모의 종(the servites) 수도회를 창설하였으며, 부온피글리오 모날도가 원장이 되었다.  

 

어느 금요일의 일이다. 그들이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고 있으니까 성모 마리아가 재차 발현하셔서 아우구스티노회의 규칙을 사용하고, 검은 수도복을 입고 또한 성자의 십자가 밑에 서 계시는 성모의 고통을 존경할 것을 가르쳐 주셨다. 7성인들이 즉시 그 말씀을 순종한 것은 물론이다.  

 

그들은 사방을 순회하면서 강론도 했다. 강론은 회의 창설시의 목적은 아니었지만,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묵묵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플로렌스 시 가운데에 아논자드라는 수도원을 건설했다.  

 

각 지방을 순회하면서 강론을 하는데 사제가 아니고서는 다소 곤란한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 중의 6명은 주교의 승낙을 얻어 신품성사를 받았지만, 나머지 한 사람 알렉시오만은 겸손한 마음으로 절대로 사제의 권리를 받으려 하지 않고 끝까지 평수사로서 걸인생활을 계속하며 은혜 베푸는 자에게 하느님의 축복을 빌면서 일생을 보냈으며,수도원의 재정관계 일을 맡아 카파지오에 수도원 성당을 짓는데 전념하였다고한다.

 

그는 이 수도회가 교황 베네딕또 11세로부터 인가될 때까지(1304년 사도좌의 인준) 생존했던 유일한 창설회원이었다.  

 

7성인 중 제일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은 보나줌다 마네도였다. 그는 1251년 8월 13일 미사에 봉헌 한 후 자신이 죽을 것을 형제들에게 알리고 제의를 입은 채성서에 있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를 읽어달라 부탁을 하고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하는 구절에 왔을 때 팔을 펴고 그 말씀과 같이 자신의 영혼을 하느님의 손에 맡겼다고 한다.

 

가장 오래 산 성인은 알렉시오 팔코니에리인데 그는 1310년 2월 17일, 110세의 고령으로 몬떼 세나리오에서 세상을 떠났다.그들의 축일은 성 알렉시오 팔코니에리가 세상을 떠난 오늘 지낸다.

 

그들 7성인의 출생과 죽음은 동일하지 않았지만 모두 같은 무덤에 묻혔고, 다같이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 마침내 모두 똑같이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1888년에 시성되었다.

 

 

 

 

 

성모의 종 수도회의 기원에 대한 전기에서

(Monumenta Ord. Serv. B. Mariae Virginis, 1,3.5.6.9. 11, pp. 71 ss.)

 

거룩한 분들을 찬양합시다

피렌체에서 온갖 공경과 명예를 받기에 합당한 일곱 분이 있었다. 그들은 형제적 우애로 결합되어 같은 이상을 찾고 있는 분들이었다.

 

동정 마리아께서는 흡사 하나의 성좌를 이루기 위해 모으신 일곱 별과도 같이 이 일곱 분을 모아 당신 자신의 수도회인 성모의 종 수도회를 세우셨다.  

 

내가 이 수도회에 입회했을 때 일곱 분 중 알렉시오라고 하는 형제 외에는 생존해 있는 분이 없었다. 성모님은 우리 수도회가 어떻게 창립되었는지 우리가 그의 목소리를 통해서 알 수 있도록 오늘까지 이 형제의 육신적 생명을 보존해 주셨다고 생각한다.

 

이 형제는 내 눈으로 직접 본 바와 같이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을 자신의 거룩한 모범으로써 착한 생활로 이끌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생활로써 자신과 첫 형제들이 이룬 완덕 및 수도회 초기에 있어서 생활의 경건함을 증거해 주었다.

 

공동 생활을 시작하기 전 그들의 생활 형태를 다음 네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첫째로, 교회와 관련해서 보자. 어떤 이들은 평생 동정의 생활을 하느님께 서원한 이들이었고, 어떤 이들은 혼인 계약에 묶여 있는 사람들이었으며, 또 어떤 이들은 아내를 여의고 혼인 계약에서 해방된 이들이었다.

 

둘째로, 그들의 직업을 보자. 그들은 모두 상인들로서 현세 사물의 매매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값진 진주 곧 우리 수도회를 찾았을 때 자신의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큰 기쁨으로 자신을 하느님과 성모님께 바치고 그분들을 충실히 섬기기 시작했다.

 

셋째로, 동정 마리아께 대한 공경과 신심을 보자. 피렌체에는 동정 마리아를 공경하기 위해 설립된 오래된 단체가 하나 있었다. 오랜 전통과 거기에 속한 남녀 회원들의 많은 수효와 그 성덕 때문에 그 단체는 다른 단체들보다 더 알려지고 더 위대한 칭호를 갖고 있었다. 그 단체는"대 성모회"라 했다. 우리가 언급한 이 일곱 분은 함께 모이기 전에 동정 마리아를 각별히 사랑하는 사람들로서 이 단체에 속해 있었다.

 

넷째로, 그분들이 이룬 완덕을 보자. 그분들은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사랑했고 모든 생각과 언행에서 하느님을 경배했으며 주님을 섬기는 데에 생활 전체를 바쳤다. 공동 생활을 하기로 확고히 결의한 후 하느님의 감도와 성모님의 부르심으로 자신들의 집과 가족들을 떠났다. 가족들에게는 필요한 것만을 남겨 두고 그 나머지는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다음 슬기롭고 모범적인 사람들을 찾아가서 자기들의 계획을 말해 주고 성실히 조언을 구했다. 그 후 세나리오산에 올라가 산꼭대기에다 알맞는 작은 집을 하나 짓고 거기서 살기 시작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분들은 자신들만이 성덕에 도달하도록 부름받은 것이 아니므로, 자신들을 통하여 성모 마리아께서 세우실 이 새로운 수도회가 커지도록 다른 사람들도 이 공동체에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분들은 새 회원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했고 또 몇 명을 받아들여 우리 수도회를 설립했다.  

 

이 수도회는 시초부터 성모 마리아께서 세우신 것으로서 형제들의 겸손으로 기초가 놓여졌고 형제들의 사랑으로 건립되어 그들의 가난으로 보존되었다.

 

마리아의 종 대 수도원(수도회 창설지)

 

마리아의 종 수도회는 1233년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 에서 교회역사상 유일무이(唯一無二)하게 일곱명의 성인들에 의해서 설립된 수도회이다

(Ordo Servorum Mariae 전례 기념일 2월 17일).

 

다양한 신분을 살고있던 성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모든 것을 버리고’ 예루살렘 초대 공동체처럼 완전히 ’한 마음 한 뜻’으로 공동생활을 하면서, 성모 마리아를 주보로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에 전 생애를 바쳤다.  

 

마리아의 종 대 수도회는 남자 수도회, 관상 수녀회, 활동 수녀회, 재속회로 구성된 10,000여명의 회원들이 전 세계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같은 영성을 살지만 창설자의 설립 목적의 차이에 있어서 수녀를 구분 짓기 위해 설립지명을 명칭에 연결시킨다.

 

-마리아의 종 수녀회에서-

 

축일: 6월 19일

성녀 율리아나 팔코리에리

Juliana Falconieri, 1270 - 1341

동정 순교 이탈리아

 

플로렌스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성모의 종 수도회 창설자 중의 한분인 알렉시오 팔코니에리와 어머니의 교육을 받고 성장하였다.

그녀의 부모는 플로렌스에서 안눈시아따로 불릴 정도로 교회 일에 헌신적인 분들이었다. 그러나 율리아나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집안 사람들은 그녀를 결혼시키려 하였다. 그녀는 이 결혼을 완강히 거부하고, 15세 때 성모의 종 수녀회의 3회원이 되었다.

그녀는 거의 20년 동안이나 자기 집에서 재속 수도자로서 기도와 자선활동을 하며 살았는데, 1304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4세의 율리아나는 기도와 자선활동에 헌신할 수 있는 일단의 복장을 하였으므로, "망토 수녀회"란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그녀의 수도회가 정식으로 승인받은 것은 120년 후이다. 그녀는 71세의 일기로 선종하였고, 1737년에 시성되었다.

 

 

 

 

 

♬ With Your Temple -monastic chants-christdesert(Benedi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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