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회성당 자유게시판

네명의 아내를 둔 남자

인쇄

이상윤 [novita] 쪽지 캡슐

2002-06-17 ㅣ No.2371

    네 명의 아내를 둔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첫째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나깨나

    늘 곁에 두고 살아갑니다.

 

    둘째는 아주 힘겹게 얻은 아내입니다.

    사람들과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쟁취한 아내이니 만큼

    사랑 또한 극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둘째는 든든하기 그지없는 성과도 같습니다.

 

    셋째와 그는 특히 마음이 잘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며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넷째에게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녀는 늘 하녀 취급을 받았으며,

    온갖 굳은 일을 도맡아 했지만

    싫은 내색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그의 뜻에 순종하기만 합니다.

 

    어느 때 그가 머나먼 나라로 떠나게 되어

    첫째에게 같이 가자고 합니다.

 

    그러나 첫째는 냉정히 거절합니다.

    그는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둘째에게 가자고 했지만 둘째 역시 거절합니다.

    첫째도 안 따라가는데 자기가 왜 가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셋째에게 같이 가자고 합니다.

    셋째는 말합니다.

    "성문 밖까지 배웅해 줄 수는 있지만

    같이 갈 수 없습니다." 라고

 

    그는 넷째에게 같이 가자고 합니다.

    넷째는 말합니다.

    "당신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넷째 부인만을 데리고 머나먼 나라로 떠나갑니다.</b></font>

 

 

    <잡아함경>에 나오는

    이 이야기의 "머나먼 나라"는 저승길을 말합니다.

 

    그리고 "아내"들은 "살면서 아내처럼 버릴 수 없는

    네 가지"를 비유하는 것입니다.

 

    첫째 아내는 육체를 비유합니다.

    육체가 곧 나라고 생각하며 함께 살아가지만

    죽게 되면 우리는 이 육신을 데리고 갈 수 없습니다.

 

    사람들과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얻은 둘째 아내는 재물을 의미합니다.

    든든하기가 성과 같았던 재물도

    우리와 함께 가지 못합니다.

 

    셋째 아내는 일가 친척, 친구들입니다.

    마음이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던 이들도

    문 밖까지는 따라와 주지만

    끝까지 함께 가 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나를 잊어버릴 것이니까요.

 

    넷째 아내는 바로 마음입니다.

    살아있는 동안은 별 관심도 보여주지 않고

    궂은 일만 도맡아 하게 했지만

    죽을 때 어디든 따라가겠다고 나서는 것은

    마음뿐입니다.

 

    어두운 땅속 밑이든 서방정토든

    지옥의 끓는 불 속이던 마음이 앞장서서

    나를 데리고 갈 것입니다.

 

    살아 생전에 마음이 자주 다니던 길이 음습하고

    추잡한 악행의 자갈길이었으면 늘 다니던

    그 자갈길로 나를 데리고 갈 것이고요,

    선과 덕을 쌓으며 걸어 다니던 밝고 환한 길이면

    늘 다니던 그 환한 길로 나를 데리고 갈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어떤 마음으로 어떤 업을 짓느냐가

    죽고 난 뒤보다 더 중요한것 같습니다.

 

 



10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