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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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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59.86.232.*]

2008-03-25 ㅣ No.6483

 

    모든 사람은 그분과의 일치를 꿈꿉니다. 그리고 꿈에서도 그분의 사랑과 일치되기를 꿈꿉니다. 그런데 인간인 우리는 자주 게으름과 교만 불안의 늪을 스스로 건너게 됩니다. 근본적인 가르침의 종교 활동에서조차 우리는 일치의 행보를 원합니다. 때로는 친구처럼, 연인처럼 그렇게 그분과 하나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마음데로 잘 안 될때가 적지 않을것입니다.

여기에서 주님은 또다른 힌트 한가지를 제공해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께 내어 맡기지 못한 그것을 내려놓을 때 평화가 더욱 찾아오기 쉽다는 것입니다. 자매님은 이러한 거룩한 주님의 평화에 맛 들이고 있는데 그 형제님은 아직 그 기쁨을, 진미를 맛들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종교에 배타적인 사람들의 사고 속에는 우리 신앙인들의 잘못된 점을 보아서도 같은 생각에 머물겠으나 중요한 것은 그래도 늘 하느님의 사랑은 변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묵묵히 그것을 전구하기 위하여 애 쓸수 밖에 없는, 당신의 외아들의 고통을 미연에 방지하고픈 성모님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매님은 지금 이러한 성모님의 입장 또는 일생의 매우 중요한 종교활동을 반대하는 남자 친구와의 장래를 위한 선택의 순간에 있습니다. 남자 친구가 말하는 '이스라엘'백성은 잘못 알고 있는 정보임을 지적해 주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님께서 고통과 죽음의 터널을 통하여 부활하심을 믿는 즉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신앙인을 지칭합니다. 따라서 자매님이 성모님의 마음을 배우고 익혀서 형제님을 신약의 이스라엘 백성으로 더 나아가서는 형제의 내면에 갇혀계신 예수님을 위해 기도해 드리는것은 자매님의 몫인듯 합니다.

고집이 그렇게 쎄고 완고할 수 있는 형제들은 의외로 단순한 면이 있습니다. 잘 계도한다면 오히려 내 여자, 내 아내만을 편애하려는 태도로 돌변하기도 할 것입니다. 남성들이 직장에서 또는 사회에서 가정의 구성원들을 위해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는 스스로의 불합리를 만날 때 승리를 위해 애쓰는 현상과도 밀접하겠습니다.

두배의 기도인 성가를 하신다니 다른이들보다 하느님 품에 더욱 안길수 있는 기쁨을 구가하시겠군요. 성가도 내가 홀로 부르기보다 신자들의 소리가 보다 선명하게 들리는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며, 또한 예수님의 제단만을 바라보며 그 모든 것을 의탁할 때 진정한 기쁨을 구가할 수 있습니다. 공명도 더욱 맑아지기에 케이스 바이 케이스의 꾀꼬리 음역을 누릴 수 있을 것이며 모든 인위적인 소리와 잠시나마 작별할 수 있는 기쁨을 맞습니다.

이러한 마음으로의 주님의 사랑을 모를수 있는 남자 친구가 완고함을 계속 앞세운다면 역시 잠시 작별할 수 있는 여유감도 확보해 두십시오. 이것은 결혼전 섹스등을 미연에 방지하는 두사람을 위한 좋은 축복의 여정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마태오복음 12, 32)라고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일단 그 형제가 모르고 짖는 오류의 사고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배타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대개 잘못된 사고에 현혹되는 분들이거나 신앙의 기쁨을 모르는 사람의 사고 속에는 반드시 내가 주님의 역할을 대신하겠다는 일종의 감정적, 이성적 흥분 상태를 유지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당당하게 신명나게 멋지게 져주시는' 당신멋져!의 당신께서는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그것을 양보하는 기쁨을 구가할 것이며 이는 자매님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줌으로써 받는 사랑의 원칙이기도 할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하십시오. 우리는 기도가 따르지 않는 봉사등은 형제의 그것을 통해서도 잘 나타나 있겠으나 반드시 음욕이 따름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도 때때로 나타나는 모든 분심들을 보다 내려놓울 수 탤런트를 가졌다는 것은 성가대원들의 큰 복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모든것은 내가 죄가 많기에 주님이 더욱 이끌어주시는 홍복으로 믿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분명 살아계십니다. 유영철 뺨을 치는 살인마 정씨가 왜 성탄절 밤에 한 가정의 금지옥엽같은 아이들을 납치한 뒤 성 폭행을 한 뒤 끔찍하게 살인 행위를 저질렀을까요? 유영철은 왜 한 가정의 90노모와 60아내와 30 3대 독자를 처참하게 살해한 후 아내와의 살아생전 약속을 실천코자 성당을 찾은 고정원 할아버지께서 세례를 받던날 체포되었으며 그 분노를 이겨내고 용서해야 했던 주님의 사랑으로 유영철 마저 천주교 신자로 거듭나야 했을까요?

자매님도 이 이유를 혹시 알고 싶은가요? 죄송하지만 저는 이 이유에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면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만이 아실 일이고 분명한 것은 하느님께서 이러한 것을 계획적으로 운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믿을뿐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그런것 같습니다. 특히 남녀간의 사랑이란 것은 상대를 전폭적으로 신뢰할 때, 서로간의 케이스 바이 케이스의 진화되는 사랑을 맛들이고 익힐 수 있을것입니다. 여기에서 자매님이 주변의 좋은 응원군들께 신중히 도움을 청하여 남자 친구 모르게 이벤트를 만드시는 것은 어떨까요? 거룩한 주님의 침묵에 안기는 그것을 남자 친구에게 맛들이게 해주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참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실 불가능은 없습니다.

우리 천주교인들은 특히 걸려 넘어져 미사를 궐하지 않는 사람들은 침묵중 내면이 시끄러운 시행착오를 자주 만납니다. 그러나 복음화에 앞장섬으로서 많은 시행착오 및 스스로의 시련을 만나 단련되어짐으로써 종일 이야기를 해도 결코 쓸데없는 이야기를 줄여가며 이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습니다. 이는 오로지 주님만이 초대해주시고 성모님의 마음으로 응답할 수 있는 성사생활이 전승되어 오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지도를 미리 예측한다는 것, 더우기 하느님의 사랑을 멀리하면서 그것을 제단하려는 것은 심하면 사이비 종파를 만들수 있는 만물의 영장인 즉 영혼을 가진 인간의 결정적 오류입니다. 이것을 지적하고 선도해 나갈 수 있는 지혜를 청원하십시오. 의외로 이러한 은총에 무심한 많은 가정의 왕비들과 또한 남편들이 스스로의 굴레에 갇혀 가정을 버리고 또 새쌀을 새 부대에 담지 못하며 불행을 반복 경험하기도 할 것입니다.

성가를 부를 때에도 하느님께 봉송하는 자세도 좋지만 필요하다면 하느님께서 내게 불러주시는 성가를 불러보세요. 그러면 혹여 남자 친구의 속에 계시는 주님의 아픔 또는 주님의 계획적인 그것이 아닌 섭리를 만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것은 성경, 기도, 묵주, 미사, 영성체를 대충하면 위험하니 그저 차근 차근 나의 생각들을 주님께 의탁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로써 무조건 남자 친구를 사랑하려는 마음을 갖되, 지금은 남자 친구가 위험한 상태니 그것을 조심하는 자세로서 스킨쉽도 당분간 멀리 하도록 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에 자매님께 새로운 힘을 주실 것입니다.

두번째 이벤트로서는 약혼자들을 위한 ME 주말 여정을 추천합니다. 하지만 약혼에 대한 선택 역시 신중해서 나쁠것 없으니 분심을 만나면 성모 엄마와 성부 아빠와 잘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잘 되길 빌겠고, 진도 사항도 가급적 이 자리에 다시 올려주세요. 좋은 하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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