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동성당 게시판

아프리카 의사 신부의 편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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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건 [shinnara] 쪽지 캡슐

2003-08-18 ㅣ No.5689

아프리카 의사 신부<1>

이 태 석(살레시오회 신부·의사·수단 거주)

 

수단에서의 첫날

작년 12월 초 수단 ’Tonj’라는 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도착하자마자 이곳 살레시오 회원이 진료소라고 흙과 대나무로 지은 세 칸짜리 움막으로 안내해 주었는데, 건물을 보자마자 눈앞이 캄캄했다. 들어가는 입구는 허리를 90도 이상 굽혀야 할 정도로 낮고, 안으로 들어간 뒤 30초 정도는 기다려야 뭔가가 보이기 시작하는 아주 어두운 곳이었는데, 찬찬히 살펴보니 그래도 진료소라고 대나무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것이라 볼품은 없었지만 침대는 하나 놓여 있었다.
이곳에서 앞으로 환자들을 볼 생각을 하니, 망막하기도 하고 서럽기도 했다. 그렇게 허탈하게 서 있기도 잠시,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나가 보았다. 서너 명의 남자들이 담요로 싸인 환자 한 명을 진료소 앞에 내려놓고, 사람 죽어 간다며 난리를 치고 있었는데, 임신 5개월에 자연 유산으로 죽은 태아를 분만하고 하혈이 멈추지 않아서 급하게 실려 온 환자였다. 피를 얼마나 흘렸는지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거의 백인의 얼굴 같았다. 혈압기를 부탁하니, 어디서 가져왔는지 10분이 지나서야 먼지가 가득 쌓인 구식 혈압기를 보조 간호사라고 하는 직원이 맨손으로 먼지를 쓱 훔치며 건네주었다.
혈압을 측정해 달라고 부탁하고 맥을 짚어 보니 아득히 먼 약한 맥이었다. 혈압을 재던 간호사가 "Blood pressure is OK"(혈압은 정상이네요.)라고 약간 더듬거리며 알려 주었는데, 이상하다 싶어 혈압기를 뺏어 들어 직접 재어 보니 혈압이 60mmHg 이하였다. 이 정도 혈압을 정상이라고 보고하다니`……. 그렇지만 혈압이 너무 낮아 그 간호사에게 화를 낼 틈도 없이 급히 링거 주사를 가져오라고 부탁하고 하혈하는 부분을 검진해 보았다. 아직 태반이 나오지 않아 계속 피가 나오고 있는 상태였고, 자궁 수축이 있어야 태반이 나오련만 자궁 수축은 이미 정지된 상태였다. 그러는 사이에(아마 그러고도 10분이 흐른 것 같다) 간호사가 또다시 먼지와 거미줄에 싸인 포도당 용액을 손으로 훔치며 건네준다. 자궁 수축제를 근육 주사로 놓고 포도당을 주사하려고 토니켓을 부탁하니 그것마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다른 한 사람이 손으로 환자의 팔을 누른 채 혈관을 겨우겨우 잡아 주사 바늘에 연결했다.
정말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어 있는 것이 없었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나고 황당했던 첫 날이었다.

 

막막한 현실 앞에서

다음날 아침 미사 후에 진료소 쪽으로 가 보니 일찍부터 많은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말 또 다른 한숨 거리였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군데군데 뜯어진, 때에 전 누더기 옷을 입은 채 그냥 맨 흙바닥에 앉아 있었고 몇 달은 씻지 않은 듯한 사람들도 꽤 있었다. 그 앞으로 지나가는데 어찌나 악취가 심한지 이런 상상을 초월하는 지저분한 사람들을 손으로 직접 어루만져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번에는 결핵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는 소년이 있다기에 만났는데, 복부 결핵인지 복수로 배는 임산부처럼 불러 있었고 군데군데서 고름이 철철 흘러나오고 있었다. 집도 너무 멀어 진료소 앞 공터에서 지내고 있는 터였다.
다시 진료소 마당으로 돌아오는데 한센병으로 팔다리가 성하지 않거나 눈이 먼 몇 명의 환자들이 나를 보며 알아듣지 못하는 자기들 말로 뭐라고 지껄였는데, 아마 자기들의 신체적 불편함에 대해 불평을 하는 듯했다.
컴컴한 진료실로 들어오니 온몸이 종기투성이인 환자 한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 관절 부위에 엄청난 양의 고름이 배어 있는 환자였다. 메스로 열어 고름을 빼내기 시작했는데 아마 1리터 이상은 되는 듯했다.
창고라고 하기보다 더 지저분한 진료실, 최악의 열악한 환경들,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지저분한 환자들, 먼지로 가득 찬 소독되지 않은 기구들,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이 없는 상황, 이 모든 것을 예상은 했지만 막상 직접 코앞에 닥치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분께 매달리기라도 하면 조금 나을까 싶어 작은 감실이 있는 소성당으로 갔다. 이곳은 전기가 없는 곳이라 감실등조차 없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알아서 하십시오."라고 한마디 기도를 올리자마자 어둠 속 어디서 나타났는지 말라리아 모기들이 독기를 품고 팔다리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정말 사람 환장할 뻔했다. 아니 환장했다.

 

작은 다리가 되어

그렇지만 얼음은 녹기 마련인 모양이다. 자연 유산으로 하혈하던 아주머니가 상태가 좋아져서 퇴원을 하는데 남편이 찾아와 죽을 뻔한 자기 아내를 살려줘 고맙다며 날씬한 아프리카 토종 닭 한 마리를 놓고 가고, 수족 관절의 고름 때문에 걷지 못하던 청년이 좋아져 제 발로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또한 복부 결핵으로 배불뚝이였던 아이가 날씬해져 가는 등 조그마한 결실들이 얼었던 나의 마음을 조금씩 녹이고 있다. 어렵기 그지없지만 나의 작은 희생으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쁨을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씩 힘이 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진료소의 열악함과 필요한 것들의 부족함, 지저분한 환자들에게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다. 모든 것을 내 식으로 바꾸는 것보다 내가 이곳의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 훨씬 쉽고 경제적이며 마음도 편한 것 같다. 가끔씩 진료를 받으려고 30-40km를 밤새도록 걸은 뒤 아침 일찍 진료소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환자들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마음이 새롭게 추스려진다.
지난주에 흙벽돌과 약간의 시멘트로 두 평 남짓한 그럴싸한 진료실 겸 처치실을 만들어 보았는데, 무엇보다도 허리를 굽히지 않아 좋고, 또 지붕을 투명 슬레이트로 얹어 놓았더니 밝게 볼 수 있어 좋다. 그리고 대나무로 만든 낮은 진료 침대 대신에 쇠로 된 작은 테이블을 두 개 붙여서 침대처럼 쓰고 있는데 환자들이 올라가도 흔들리지 않고 높이도 적당해서 좋다. 이곳 사람들의 눈에는 깨끗하게 보이는지 환자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발바닥에 묻은 흙을 깨끗하게 탈탈 털고 들어온다.
이곳에는 한센병 환자들이 700명 정도 있다. 자기들끼리 몇 십 명씩 숲 속에 작은 마을을 이루어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데,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미사 봉헌과 진료차 돌아가면서 방문하고 있다. 이곳에는 교통수단이 없어서 우리가 직접 방문하지 않으면 그들이 며칠을 걸어야 한다.
육체적으로 조금 피곤하기는 하지만 매주 지프를 몰고 즐겁게 다니고 있는데, 우리가 도착하면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모른다. 오랜만에 미사도 드릴 수 있고, 설탕과 소금, 쌀 등을 조금씩 얻을 수 있으며 진료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착해서 자동차 경적을 울리면 어디서 나오는지 환호를 지르며 달려오는 아이들, 발가락이 없어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어오는 사람들, 꼬마들의 긴 지팡이에 안내되어 오는 맹인 등, 모두들 작은 희망으로 바쁘게들 살고 있다.
돈으로 따져 보면 500원도 채 안 되는 감기 시럽 몇 방울, 클로로퀸(말라리아 약) 세 알, 아스피린 세 알을 손가락이 없어 손목으로 받아 들고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히 여기는지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 이 지역(남쪽 수단, 반정부군이 거주하는 가톨릭 지역)에는 전기, 전화, 교통수단이 아예 없어서 그들이 간단한 생필품이나 약품들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우리이기 때문이다. 일 년에 몇 천억 원어치의 쓰레기를 만드는 우리나라나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생각하면, 세상이 불공평해도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의 1%만이라도 이들과 나누면 이들이 얼마나 많은 혜택을 입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또한 이곳에서는 우기에 작물 재배를 하기는 하지만 결실이 아주 적어 하루에 한 끼 먹는 것이 습관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약을 줄 때 아침 점심 저녁 식사 후에 복용을 하라고 하는 대신에 해가 동쪽에 있을 때 한 번, 중천에 있을 때 한 번, 그리고 서쪽으로 질 때 한 번씩 복용하라고 하면 모두들 아주 잘 이해한다.
그러나 굶주림이나 갖가지 질병 앞에서 너무 쉽게 죽어 가는 이곳 사람들, 좋은 병원에서 좋은 약으로 좋은 치료를 받으면 운명을 늘릴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죽음에 저항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운명으로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이곳 사람들을 볼 때면 또다시 마음 한 구석이 저려 옴을 어찌할 수가 없다. 이 병원 저 병원 옮겨 다니며 어렵게 어렵게 죽는 우리의 세상과 비교를 하면, 너무도 불공평한 세상이다.
크나큰 욕심은 버리기로 했다. 단지 남는 세상의 남는 그 1%를, 없는 세상으로 연결하는 작은 다리 정도만 되어 보기로 했다. 그리스도교의 형제적인 사랑을 연결해 주는 작은 고리 정도만 되어 보기로 했다.

사목지에서 퍼옴(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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