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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의사 신부 편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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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건 [shinnara] 쪽지 캡슐

2003-09-01 ㅣ No.5708


아프리카 의사 신부<2> 한센병에 걸리지 않아 슬픈 까닭

이 태 석(살레시오회 신부·의사·수단 거주)

 

아프리카 생활에 적응해 나가면서

 

이제 이곳 수단의 더위나 사람들에게서 나는 악취, 먼지, 전갈(이곳의 전갈은 독이 아주 약한 편이라 물려도 별 문제는 없지만 큰 통증이 온다), 언어, 아무 곳에서나 바닥에 털썩 앉을 수 있는 마음 등 생활과 문화에 많이 적응해 가고 있다. 말라리아도 다른 선교사들보다 훨씬 드물게 찾아오는 편이다. 또한 이곳의 말라리아는 다행히도 클로로퀸에 잘 반응하는 순한 놈들이다. 오지 중의 오지라 클로로퀸이 늦게 사용되기 시작하여 저항성도 그만큼 약한 모양이다.
이곳 주민들은 주로 ’딩카’라는 토속 언어와 아랍어를 사용한다. 학생들은 초등학교 5-6학년 이상이면 영어를 꽤 하는 편이지만, 주민들과는 영어로 의사소통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환자들과 의사소통을 하려고 ’딩카’ 언어를 공부하고 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의 대화는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아랍어를 많이 섞어 쓰기 때문에 ’딩카’ 언어라고 생각하면서 배운 단어들이 나중에 알고 보면 아랍어인 경우도 많다.
이곳 병원에는 하루에 120여 명이 찾아오는데 이들 가운데 40% 이상이 말라리아 환자들이다. 그리고 더러운 물이나 지저분한 음식으로 전염병 환자들이 많고,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 사진으로만 보았던 희귀한 병들─기니아 충(Guinea worm)’, ’체체 파리(tse-tse fly)’, ’상피증(elephantiasis)’ 등─도 직접 그리고 자주 볼 수 있다.

 

"하느님은 과연 누구신가?"

 

일주일에 두 번은 숲 속 마을로 이동 진료를 나간다. 지프에 의약품, 물, 비스킷, 주사약, 붕대 등을 싣고 숲 속을 달리는데, 때로는 사람 키보다 더 크게 자란 잡초들이 무성한, 길이 아닌 길을, 새로운 길을 만들면서 한두 시간을 달려야 한다. 이런 야생길을 지프로 시속 50-60km로 달리는 일은 돈을 주고도 할 수 없는 신나는 일이다. 마을에 도착하면 모든 주민들이 한꺼번에 달려나온다. 가끔씩 응급 환자들도 만나지만 대부분 가벼운 환자 또는 엄살 환자들이다. 그래도 이때 얻은 약을 간직해 두었다가 정말 아프고 급할 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속는 척하고 일일이 진찰을 하고 약을 준다. 의사를 처음 본다며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꽤 있다.
며칠 전 일곱 살쯤 된 여자아이가 병원에 실려왔는데 전격성 말라리아로 열이 41도를 넘었다. 고열 때문에 계속해서 온몸을 비틀고 눈이 뒤집히며 경련을 일으켰다. 해열제, 항말라리아(퀴닌), 항간질제 등 필요한 모든 약을 투여하고 흡입기로 기도 안에 고여드는 많은 분비물들을 계속해서 밖으로 빨아내었다(말이 흡입기이지 발로 계속 페달을 밟아야 흡입이 가능한 족(足)동식이다). 얼마나 지독한 말라리아였던지 발작은 도대체 수그러들지 않고 그 모습이 꼭 귀신 들린 사람 같았다.
그러자 그 아이의 부모는 아이를 그냥 무당에게로 데리고 가겠다고 난리를 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 아픈 사람을 무턱대고 무당에게 데리고 갔던 것처럼, 여기서도 누가 아프면 무당에 해당하는 ’쿠주르(Kujur)’에게 데려간다. 쿠주르는 쿠주르 신(神)과 통교한다고 믿는 무당으로 그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질병이나 사고 등의 화를 입게 된다는 사고가 이곳 사람들에게 깊이 박혀있다. 더군다나 가톨릭 병원에서 지체하다가 무당에게 늦게 가게 되면 더 큰 화를 입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가끔 볼 수 있다.
부모의 부탁대로 아이를 그냥 보내면 그냥 그렇게 죽게 될 것이 뻔했기에 부모를 설득하기로 했다. 최선을 다해 살릴테니 나를 믿고 한 시간만 더 기다리라고 부탁했다. 10분 뒤 주사약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아이의 경련 발작이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깊은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부모는 쿠주르가 아이를 죽음으로 데려갈 것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줄곧 불안해 하였다. 하루가 지나자 소녀는 완전히 제정신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물음에 반응하고 물도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날, 아침 일찍 누군가 나의 진료실 문을 빠끔히 열고 들여다보았다. 누군가 하고 보았더니, 글쎄 그 여자아이가 멀쩡해져서 부모와 함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온 것이 아닌가. 귀엽고 똑똑하게 생긴, 조금은 수줍어하면서 감사의 미소를 띤 그 아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코끝이 찡했다. 아름다운 체험이었다. 보람도 보람이지만 주님께서 항상 함께하여 주신다는 것을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의 부모에게도 하느님과 쿠주르는 능력이 비슷한 서로 다른 신일 뿐이라는 생각의 단계에서 벗어나, ’하느님은 과연 누구신가?’라는 물음의 물꼬를 터뜨리는 기회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센병에 걸리지 않아 슬픈 까닭

 

이곳에는 한센병 환자들이 많이 있다. 그들에게 다달이 식용유와 강냉이를 배급하는데 식량 배급이 있던 어느 날, 한 어머니가 어린 딸을 데려와서 한센병에 걸린 것 같다며 진찰을 요청했다. 피부병변 검사를 해본 뒤 한센병이 아니라며 축하한다고 했더니 뜻밖에도 모녀 모두가 슬퍼하는 것이었다. 강냉이와 식용유를 담아가려고 준비해 온 비닐 포대와 작은 플라스틱 병을 채우지 못하고 허탈하게 되돌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뒤로 살짝 불러 강냉이와 식용유를 조금 주어 보냈다. 가난의 처절함을 가슴으로 느꼈던 순간이었다.
처음에 와서 이곳 사람들에게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했는데, 환자들에게 약, 주사, 음식 등 모든 것을 무료로 주고 또 주어도 결코 "감사합니다." 또는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처음에는 ’구제불능의 사람들’,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라고 중얼거리며 혼자서 화를 많이 내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의 말에 아예 ’고맙다’ ’감사하다’라는 말이 없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질 대로 떨어진 그들의 처절한 상황에서 하루하루 연명하기만 하면 됐지 ’고맙다’ ’감사하다’라는 말이 무슨 필요가 있었을까 하고 생각하니 이해가 되었다. 그렇지만 학생들에게만은 일부러 감사의 표현을 하도록 지도하고 있다.

 

천부적인 음악가들

 

오후 4시경에는 많은 아이들이 기도 모임에 오는데, 오락기구 전혀 없는 이곳 아이들에게는 이 시간이 축구, 농구, 배구 등을 하며 즐길 수 있는 귀중한 기회이다. 몇 달 전부터는 음악 그룹을 만들어 기도 모임 시간을 이용해 피리, 기타, 오르간을 이론과 함께 가르치고 있다. 거의 대부분 ’도레미파솔라시도’란 것을 처음으로 들어보는 아이들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국악처럼 이곳의 음악도 5음계뿐이어서 ’파’와 ’시’음을 만드는 데 아주 힘이 들었다. 100번을 연습해도 결국은 ’미’와 ’파’, ’시’와 ’도’를 똑같은 음으로 소리 내는 것이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난 지금은 훨씬 나은 편이다.
보통 ’아프리카 사람들’ 하면 ’음악이 나오면 몸을 흔들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음악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조금 다른 편이다. 오랫동안 계속된 가난과 전쟁의 탓인지 미사 시간에 노래를 부르더라도 몸은 절대 흔들지 않을뿐더러 표정도 변하지 않는다. 지나칠 정도로 음악에 무뚝뚝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면서 이 생각이 바뀌었다. 고통과 가난에 지칠 대로 지쳐 표현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음악의 리듬을 피와 살로 느끼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많은 아이들이 피리와 오르간, 기타 등을 쉽게 배운다. 기타를 가르친 지 이틀 만에 성가 몇 곡을 한 번의 막힘도 없이 연주하는 아이도 있고, 가르친 지 5일 만에 양손으로 오르간을 연주하는 천재 같은 아이들도 있다.
이러한 순간 가슴 벅찬 행복을 느끼며, 나를 이곳으로 보내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성탄절에는 아이들이 직접 피리와 기타, 오르간 등을 연주하며 미사를 봉헌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미사곡 몇 곡을 만들어 오르간과 리듬 박스를 이용해 몇몇 아이들과 함께 음악 테이프를 하나 만들기도 했다. 기도 시간에 가끔 그 테이프를 틀어주는데 많은 아이들이 좋아하고 음악에 따라 춤도 춘다. 이곳 아이들에게 드럼 연주는 거의 장난일 정도이다. 간단한 리듬 정도는 서너 살바기 아기들도 두드릴 정도로 ’손북’ 두드리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일상화되어 있다. 내년 초에는 그룹사운드를 결성할 예정이다.

 

"너희에게 평화를 주노라"

 

성탄절 전에는 ’청소년 축제’를 열었는데, 이곳 전쟁 중의 상황에 알맞은 "I give you peace."라는 주제로 2박 3일 동안 진행되었다. 참가 대상은 반경 120km에 분포되어 있는 80여 개 본당 공소의 젊은이들이었는데, 500여 명의 젊은이들이 참석하였다. 멀리서 4-5일을 걸어와 참석한 젊은이들도 꽤 있었다. 주제곡을 작곡해 동작과 율동을 곁들여서 축제 기간 동안 자주 불렀는데 함께한 모든 젊은이들이 동시에 손을 흔들며 "I give you peace."를 음악으로 외칠 때는 정말 가슴이 뭉클했다. 이 축제에서는 2박 3일 동안 화해 예절, 평화에 대한 그룹 대화, 성서 OX 퀴즈, 다이내믹 미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고, 화려한 캠프파이어로 막을 내렸다. 또한 평화가 외부의 힘에 의해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던 젊은이들에게 진정한 평화는 자신의 마음속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내가 생각하는 이곳 사람들의 가장 큰 장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토록 가난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기쁘게 산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풍족하게 살고 있는지 자주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모양이다. 그렇게 가지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가지지 못해 안달하면서 싸우고 죽이고 하니 말이다. 행복의 원인은 결코 물질이 아닌데도 말이다.

 

어려움이 클수록 은총도 크다

 

최근에 병원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부족한 것이 많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생각에 일단 판을 벌여놓았다. 방 8개짜리 작은 규모의 병원을 짓는 것이지만 한국에서 200-300베드(bed)의 큰 병원을 짓는 데 드는 에너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케냐의 수도인 나이로비에서 비행기로 가져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려움이 클수록 하느님의 은총과 우리의 희망도 그만큼 커짐을 더욱 깊이 깨닫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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