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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관한 서문 한토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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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더럽히는 족속들은, 길은, 한번 지나가버리면 종족이 묘연하다느니, 자취가 없다느니,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느니 하면서 길을 함부로 대한다. 그러나 길처럼 뚜렷한 흔적은 이 세상에 없다. 사진 판독기보다 더 극사실로 길은 지나간 사람들의 자취를 기억한다. 길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발자국 정도는 우습다. 지나가는 사람의 말이나 행동, 돌아쉬고 내뱉는 숨소리에서 몸냄새까지 오래도록 저장하고 있다. 길을 함부로 대하면 다시는 그 길을 갈 수가 없다. 길가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있다가 결정적일 때 증언하는 나무와 풀이 무수하게 살아 눈뜨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함부로 내디뎌 신발 밑에서 깔려 죽은 뭇 생명들의 원혼이 수천 년 잠자고 있기 때문이다. 늘 걸어도 두렵고 떨리는 삶이라는 고행 앞에 다시 추운 겨울이 서 있다. 이 정도 아픔은 견뎌야지, 아픔이 없으면 견디는 힘도 사라진다.
- 유용주 산문집 '그러나 나는 살아 가리라'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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