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죽음도 삶의 일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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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04-21 ㅣ No.4783

 

 

우리가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 정답이 없는 것처럼

세상을 뜰 때도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직 살 날이 한참 더 남았으리라 여기던 생의 어느날

혹은 살아 온 날이 충분히 길었다고 여기던 생의 가운

데에서도 갑작스럽게 다가온 죽음의 예고는 삶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어 버리기에 충분합니다.

이때부터 하루하루는 살아 있는 시간이라기보다 죽음을

향해 흘러가는 괴로운 항해가 되고 맙니다.

그것이 괴로운 이유는 가족조차도 함께 해 줄 수 없는

외로운 항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어누 누구도 자신이 언젠가는 죽음을

맞게 될 운명임을 몰랐던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탄생과 함께 죽음이 곧 필연이 되니

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죽음 앞에선 한없이 움츠러듭니다.

우리에게 죽음은 이 ㅅ상과의 영원한 이별을 선고하는

가장 슬픈 순간이거나 육신의 고통이 정점에 다다르는

지점일 때가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현대 의술로도 어쩔 수 없는 육신의 병으로

죽음이 문턱에 다다든 사람들이 삶은 살아 있어도 더

이상 산 것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너무도 고통스러워 차라리 하루라도 빨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죽음이 곁으로 오면, 살아 있는 마지막 소중한 시간들이

정말 그렇게 일생일대의 가장 외롭고 쓸쓸한 시간일 수

밖에 없는 걸까요?

 

여기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이 적어도 고통스럽지는

않도록, 이별의 순간을 함께 지켜주는 외국인 수녀님

이 있습니다.

한국 생활 23년째인 노라 수녀.

그녀는 죽어가는 사람들 곁어세 마지막 시간들을 함께

해 주는 ’호스피스’ 들의 대모입니다.

 

죽음 앞에서 슬프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은 누구보다도 죽음을 마주하는 데에 강한 수녀님

이지만 그녀 또한 병상에 누워 계신 어머니를 뒤로 하고

한국으로 떠나올 때, 그리고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 드리

기는 커녕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낯선 타국에서 들어야

했을 때 무척이나 힘들어 했습니다.

하지만 수녀님은 죽음 앞에서 그저 슬퍼하고 괴로워하기

보다 담담하게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죽음이란 고통이나 절망이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 온 한

사람이 하나의 삶을 완성하는 순간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호스피스의 존재 이유입니다.

죽음조차 삶의 한 과정이고 죽어 가는 모든 사람은 따뜻

한 보살핌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이런 정신에 따라서 호스피스는 죽음을 앞둔 환자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사람과 함께,

원하는 방식으로 살 수 있도록 돕습니다.

또 아직 삶에서 끝마치지 못한 일을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도와 주고, 생의 본질에 대한 그들의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보도록 합니다.

삶을 깊이 이해하면 할수록 죽음에 대한 슬픔은 그만큼 줄

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런 수녀님은 환자나 그 가족 모두 죽음을 그저 모든 것의

끝이라 여기고 절망하며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

까웠습니다. 그래서 시작했던 호스피스 활동.

그러나 호스피스에 대한 개념이 낯선 사람들에게 그 마음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까지 전도를 하려는 외국인 수녀라고

심한 거부감을 나타냈던 겁니다.

그런 예상치 못한 어려움 속에서도 수녀님은 꿋꿋이 호스

피스 활동을 펼쳐 나갔습니다. 그 마음이 아름다워서일까요?

이제는 환자나 그 가족들이 먼저 수녀님을 찾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강원도 춘천 성골롬반 의원의 호스피스 상담실.

이 곳에서 수녀님은 하루에 여덟 명의 환자를 돌봅니다.

그러나 어느새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 119 구급대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수녀님은 담당 환자 말고도 여기저기에서

찾는 사람이 많습니다.

"노라 수녀님 계신가요? 지금 와 주실 수 있으세요?"

사방이 칠흑처럼 어두운 새벽 3시에 걸려 온 전화.

하지만 수녀님은 수화기 너머 들려 오는 말기암 환자 가족

의 흐느끼는 목소리를 듣고 서둘러 채비를 하고 차에 오릅

니다. 그러고는 불안에 떨며 힘들어 하는 환자의 손을 꼭

잡고 마음을 진정시켜 줍니다.

잠시 후 환자는 아프지만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입

니다. 그러나 수녀님이 죽음까지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닙

니다.

그래서 가끔은 방문지가 병원 영안실일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오늘도 노라 수녀님을 찾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수녀님은 아름다운 죽음을 맞게 해 주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 말은 이렇게 정정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수녀님은 살아 있는 날의 한 순간이라도 죽음에 대한

공포로 허무하게 버려지지 않도록 돕는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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