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동성당 게시판

예수와 만난 사람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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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호 [austin] 쪽지 캡슐

2003-12-16 ㅣ No.9894

 

 

우리는 왜 그를 죽여야만 했던가

 

 

 

나자렛 사람 예수, 그에 관한 우리의 추억은 그리 유쾌하지 못하다. 우리는 결국 그를 십자가에 달아 죽여야만 했다. 그것도 우리가 원수처럼 생각하는 로마의 정치범으로, 우리가 그를 우리만의 힘으로 제지시키지 못하고 끝내 로마군대의 손에 넘겨야 했던 것은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었다. 우리는 왜 그를 제거해야만 했던가? 그를 없애기 위하여 로마군대뿐 아니라 저 밉살스러운 사두가이파와 헤로데의 도당들과도 손을 잡아야 했던가? 도대체 그가 무엇을 했기에 우리는 수치스런 합작세력에 가담해서까지 그를 제거해야만 했던가? 물론 우리는 그가 우리네 바리사이파에 대하여 회칠한 무덤과 같다느니 소경을 인도하는 소경이라느니 종교적 위선자라느니 하는 온갖 비난의 말을 늘어놓고 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맹세코 말하거니와 적어도 나로서는 그런 비난의 말을 하고 다닌다 해서 그를 죽여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우리는 모두가 제한된 존재다. 신(神)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바리사이파에 속해 있다 하더라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에 세 번씩 기도를 바치고 또 매월요일과 목요일에는 단식을 하면서 우리 자신의 성별(聖別)을 지키고자 애써오고 있는 것이다. 예수라는 그 난데없는 청년이(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이들에게 그는 참으로 ‘난데없는’ 사람이었다.) 갑자기 나타나 우리네 바리사이파를 집중적으로 비난하며 공격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나 또한 인간인지라 어찌 결기가 솟구치지 않았겠는가마는, 그러나 그것을 기화로 한 인간을 죽이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오히려 우리들 가운데는 니고데모와 같은 사람도 있어 밤중에 그를 은밀히 방문하여 담화를 나누어 보기도 했다. 그가 우리를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비난했다면 그럴만한 근거가 있지 않았겠는가? 우리는 그래도 스스로 종교인임을 자처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찌 한 마디의 말이나 뜬구름 같은 인간의 감정 따위로 한 생명을 죽이고자 했겠는가?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를 십자가 위에 달아 죽여야만 했던가? 아니,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왜 우리는 로마가 그를 십자가에 달도록 내어주어야만 했던가? 어찌 되었든 그는 우리와 동족인 유대인이 아닌가? 우리는 그를 제거하되 우리 식으로 제거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종교적 순교자 대신 로마의 정치범으로, 그렇게 죽어갔다. 우리는 그를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선조들 앞에 고개를 들 수 없도록 수치스런 일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유쾌한 일은 못 되지만 나는 한 바리사이인으로서 그를 죽음에 내주는 일에 동참한 나 자신을 역사 앞에 떳떳이 고백하고자 한다. 우리의 행위가 범죄였다면 그에 대한 형벌을 감수하겠다. 우리 당대에 그 피 값을 보상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후손들이 갚을 것이다. 역사가 계속된다면 유대인들은 반드시 물으리라. 예수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는가? 무슨 죽을 죄를 졌는가? 그가 한 일은 가난한 자들에게 용기와 삶의 의미를 심어주고, 과부의 죽은 외아들을 살려주고, 문둥이를 성한 사람으로 고쳐주고, 귀신들린 자들을 그 귀신의 손아귀에서 해방시키고, 온갖 병자들을 치유하여 가정으로 돌려보내고,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한 것밖에 없지 않는가? 그가 언제 누구를 때리거나 했는가? 남의 물건을 약탈하기라도 했는가? 혹은 속임수로 남의 재산을 가로채기라도 했는가? 정변(政變)을 음모한 적이라도 있는가? 무슨 비밀결사라도 조직했는가? 어떤 악성 유언비어라도 퍼뜨린 적이 있는가? 혹은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민족을 이방인에게 팔아먹는 일에 동참했는가? 도대체 그가 무슨 죽을 죄를 범했단 말인가? 이런 식으로 질문을 계속한다면 아무리 해도 예수의 행위에서 사형에 처할 만한 죄를 발견할 수는 없다. 그것은 우리가 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만 보아서는 안 된다. 병자를 고쳐주고 가난한 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소외된 자를 찾아주는 그의 표상적 행위 뒤에 숨어있는 진짜 행위를 보아야 한다. 그는 한 문둥이를 고쳐줌으로써 과연 무엇을 이루려고 했는가? 그것이 우리에게는 문제였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는 우리의 민족적 존재근거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유대인을 유대인이게 하는 것, 유대인을 끝내 하느님의 선민으로 살아 남게 하는 것, 우리의 신성한 바탕이자 적으로부터 지켜주는 방벽이요 우리의 생명을 지속시켜 주는 샘물인 거룩한 하느님의 법(토라)을 그의 그는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것도 감히 하느님의 이름으로!…

내가 그를 맨 처음 만난 것은 겐네사렛 호숫가의 어느 마을 회당 안에서였다. 그는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가슴속에다 불을 담고 있는 사람처럼 말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치 타오르는 불씨 같았다. “어떤 사람들은 하필이면 세리나 죄인들과 어울리느냐고 나에게 항의를 합디다. 그러나 그것은 모르고 하는 소리요! 의사는 건강한 사람들한테 필요한 게 아니라 앓는 사람에게 필요한 법입니다. 스스로 건강하다는 자들에게 나는 볼 일이 없어요. 하느님 아버지가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의인을 불러다가 끼리끼리 재미보라는 게 아니고 죄인들을 불러 의인으로 고쳐놓으라는 분부셨습니다. 나는 그 명령을 받고 와서 지금 그대로 하는 중이외다. 자기가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모두 나와 상관없으니 가서 볼 일들이나 보시오. 나는 당신들이 버린 쓰레기 인생들 곁으로 가겠소. 세상이 이 모양으로 불공평해서야 어디 쓰겠습니까?” 그의 말투란 이 모양이었다.…

회당에는 마침 오른손이 마비된 사람이 하나가 있었다. 우리는 그를 눈여겨보았다. 예수가 그를 어찌 하는지 두고 볼 참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그를 고쳐준다면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예수라는 저 정체불명의 사내는 지금 우리의 발판을 흔들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그를 그냥 둬서는 안 된다. 우리의 예상은 불행하게도 들어맞고 말았다. 그는 이야기를 하다 말고 좌중을 둘러본 다음, 손이 마비된 사람을 불렀다. “일어나 가운데로 서시오.” 그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일어섰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예수가 말했다. “여러분에게 물어봅시다. 안식일에 착한 일을 하라고 했습니까? 악한 일을 하라고 했습니까? 목숨을 살리라고 했습니까? 죽이라고 했습니까?” 그것은 궤변이었다.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명령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착한 일이건 악한 일이건 아무튼 무슨 일이든 하지말고 쉬라는 것이다. 그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이 안식일을 지키기 위하여 침략자들의 칼끝에서 차라리 이슬로 사라져가기를 선택한 우리네 선조들의 고난과 아픔을 어찌 쉽사리 물거품처럼 사라지게야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지금 저 나자렛 사람 예수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무슨 말로 그의 궤변을 막으려 하기도 전에 그는 좌중을 둘러보면서 의기가 양양하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당신 손을 펴시오.” 놀랍기도 하지만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의 말라 비틀어졌던 손에 다시 생기가 돌더니 이내 이리저리 움직였다. 회당 안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그를 둘러싸고 무슨 메시아라도 만난 듯 야단법석을 떨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한데 뭉쳤다. 예수에 대해 저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그를 어찌할 것인가에 대하여 우리는 의견을 모았다. “저 시골 녀석의 득의만만한 얼굴을 더 이상 두고만 보란 말인가? 그럴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저 사람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 그 점은 무시할 수 없네. 병자를 고치고 불구자를 일으키고 죽은 자를 살리기까지 했다더군.” “그것이 어쨌단 말인가? 신통력이 좀 있다고 해서 저렇게 분명한 범법자를 재버려 둘 수는 없어. 저 자는 장차 이 민족을 악마의 불구덩이로 이끌고 말 것이다. 빨리 막아야 돼. 그는 무서운 불씨야.” 그렇다. 만일 그가 우리 모두를 당황케 할 만큼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지 않았다면, 그가 아무 데서나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그를 버려 두었을 것이다. 그가 안식일을 어기든 토라를 모욕하든 내버려두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를 못했다. 마침내 우리는 그를 제거할 방법을 궁리하기에 이르렀다.

그 무렵 나는 기회를 만들어 은밀한 곳에서 그와 단둘이 만났다. 그에게서 무슨 꼬투리를 잡아 죽음의 함정으로 몰아넣으려는 속셈은 아니었다. 나는 우리가 죽이기로 한 그의 정체를 개인적으로라도 좀더 알고 싶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당신을 죽이려 합니다. 알고 있는지요?” 단도직입적으로 파고들었으나 그는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의 일이니 그들이 하겠지요. 나는 내 일을 할 따름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나는 나의 길을 갈 것이오.” “헤로데도 당신을 죽이려 하고 있어요.” “그는 내가 보기에 한 마리 들여우일 뿐입니다.”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어째서 당신은 하필이면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십니까? 다른 날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아요? 오른손이 마비된 그 사람의 일만 해도 그렇습니다. 하루쯤 더 마비된 채로 지낸들 어떻습니까? 당신은 일부러 안식일을 우리 눈앞에서 어기고 있는 게 아닌가요?” “당신 말이 맞습니다.” “왜지요? 왜 거룩한 토라에 도전을 하는 겁니까? 그것이 우리의 모든 것을 버텨주고 있는 바탕임을 모르지는 않을 터인데….” “토라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그것이 사람을 가두어두는 무덤으로 바뀌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깨뜨려야 합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닙니다.” “그 말은 나도 전해 들었어요. 당신은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도 하셨다지요?” “그렇습니다.” 나는 도저히 냉정하게 그와 대화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안식일은 하느님이 마련해주신 것이오!” “당신 말이 옳습니다.” “그런데 감히 당신이 그 안식일의 주인이란 말이오? 그럼, 당신이 하느님이오?” “그렇소. 나 없이 하느님 없고 하느님 없이 나 또한 없습니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그러므로 아버지는 내 안에 있지요. 나는 안식일뿐 아니라 모든 것의 주인입니다.” “당신은 미쳤군! 더 이상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아요! 한 마디만 해주고 나는 가겠소. 당신은 병자를 고쳐준다, 문둥이를 낫게 해준다, 죽은 자를 살려낸다… 하면서 지금 무서운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오. 우리는 당신의 그 폭력을 반드시 저지시키고 말겠소. 법과 질서에 대한 도발행위는 어떤 모양의 것이든 결코 용납할 수 없소. 우리는 당신의 그 궤변과 웃음과 부드러운 말투와 가난한 자들에 대한 동정심 배후에 숨어 있는 무서운 폭력을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오. 당신이 무너뜨리는 이 세상이 무너지기 전에 당신이 먼저 무너질 것입니다.” “나는 세상을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너지는 세상을 바로 세우려고 왔습니다.” “그것은 궤변이고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당신의 도발적인 폭력을 저지시키겠소!” 그는 나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더 노골적으로 법과 질서에 도전해 왔다. 법에 대한 도전은 곧장 로마에 대한 도전이 되었고…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로마의 법에 따라 저주받은 마른나무 꼭대기에 매달려 숨을 거두었다. 유대인인 그를 우리 손으로 제거하지 못하고 이방인에게 넘겨준 것은 수치스런 일었으나 법과 질서가 결국은 로마의 것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자렛 예수. 천수를 다 못하고 그렇게 죽기에는 아까운 인물이긴 했다.

(루가 5,27~6,11: 13,31~33)

 

이현주 지음, “예수와 만난 사람들”(생활성서사 출판) 중에서

첨부파일: Jesus-3.hwp(17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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