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동성당 게시판

무소유(무소유 - 5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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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8 ㅣ No.12387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개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담요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오."
 
마하트마 간디가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원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마르세유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면서 한 말이다.
K. 크리팔라니가 엮은 <간디 어록>을 읽다가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 그렇다.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오지 않았었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籍)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되었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나는 지난해 여름까지 난초 두 분을 정성스레, 정말 정성을 다해 길렀었다.
3년 전 거처를 지금의 다래헌(茶來軒)으로 옳겨왔을 때 어떤 스님이 우리 방으로 보내 준 것이다.
혼자 사는 거처라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는 나하고 그 애들뿐이었다.
그 애들을 위해 관계 서적을 구해다 읽었고,
그 애들의 건강을 위해 하이포넥스인가 하는 비료를 구해 오기도 했었다.
여름철이면 서늘한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겨 주어야 했고,
겨울에는 그 애들을 위해 실내 온도를 내리곤 했다.
 
이런 정성을 일찍이 부모에게 바쳤더라면 아마 효자소리를 듣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렇듯 애지중지 가꾼 보람으로 이른 봄이면 은은한 향기와 함께 연둣빛 꽃을 피워 나를 설레게 했고. 잎은 초승달처럼 항시 청정했었다.
우리 다래헌을 찾아온 사람마다 싱싱한 난초를 보고 한결같이 좋아라 했다.
 
지난해 여름 장마가 갠 어느 날 봉선사로 운허노사(耘虛老師)를 뵈러 간 일이 있었다.
한낮이 되자 장마에 갇혔던 햇볕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고 앞 개울물 소리에 어울려 숲 속에서는 매미들이 있는 대로 목청으 돋우었다.
 
아차! 그제서야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난초를 뜰에 내놓은 채 온 것이다.
모처럼 보인 찬란한 햇볕이 돌연 원망스러워졌다.
뜨거운 햇볕이 늘어져 있을 난초잎이 눈에 아른거려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허둥지둥 그 길로 돌아왔다.
아니나다를까, 잎은 축 늘어져 있었다.
안타까워하며 샘물을 길어다 축여 주고 했더니 겨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어딘지 생생한 기운이 빠져나간 것 같았다.
 
                                   -  법정스님, 1971 (무소유 - 5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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