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동성당 게시판

무소유(무소유 - 5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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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0 ㅣ No.12389

나는 이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념한 것이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난을 가꾸면서는 산철(승가의 유행기)에도 나그네길을 떠나지 못한 채 꼼짝을 못했다.
밖에 볼일이 있어 잠시 방을 비울 때면 환기가 되도록 들창문을 조금 열어놓아야 했고,
분을 내놓은 채 나가다가 뒤미처 생각하고는 되돌아와 들여놓고 나간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 지독한 집착이었다.
 
며칠 후, 난초처러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 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분을 안겨 주었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날아갈 듯 홀가분한 해방감.
3년 가까이 함께 지낸 '유정(有情)을 떠나보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無所有)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所有史)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소유욕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리고 있다.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 든다.
그 사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는 끔찍한 비극도 불사하면서.
제 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소유욕은 이해와 정비례한다.
그것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어제의 맹방들이 오늘에는 맞서게 되는가 하면,
서로 으르렁대던 나라끼리 친선사절을 교환하는 사례를 우리는 얼마든지 보고 있다.
그것은 오로지 소유에 바탕을 둔 이해관계 때문이다.
만야 인간의 역사가 소유사에서 무소유사로 그 방향을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싸우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주지 못해 싸운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간디는 또 이런 말도 하고 있다.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그가 무엇인가를 갖는다면 같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가질 수 있을 때 한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자기 소유에 대해서 범죄처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뜬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회 떠나갈 것이다.
하고 많은 물량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 볼 말씀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다른 의미이다.
 
                                       - 법정스님. 1971 - (무소유 - 5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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