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동성당 게시판

* 알맹이와 껍데기(8/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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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국길 [fcan] 쪽지 캡슐

2004-08-21 ㅣ No.3538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 (2004-08-21)

독서 : 에제 43,1 - 7ㄱ 또는 1데살 2,2ㄴ - 8 복음 : 마태 23,1 - 12 또는 요한 21,15 -17

* 알맹이와 껍데기 *

그때에 예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를 이어 율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말아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무거운 짐을 꾸려 남의 어깨에 메워주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마나 팔에 성구 넣는 갑을 크게 만들어 매달고 다니며 옷단에는 기다란 술을 달고 다닌다. 그리고 잔치에 가면 맨 윗자리에 앉으려 하고 회당에서는 제일 높은 자리를 찾으며 길에 나서면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스승이라 불러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너희는 스승 소리를 듣지 말아라.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 분뿐이고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 또 이 세상 누구를 보고도 아버지라 부르지 말아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뿐이시다.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말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마태 23,1­ - 12)

인류가 가지고 있는 모순은 역사 안에서 변함없이 그 맥을 유지해 왔다. 물론 모양새는 정도 차이가 있고 다양화되고 있지만 사실 그 본질은 사람의 마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수많은 모순 중 하나를 꺼내 나누어 보고자 한다.
노랗게 잘 익은 귤 하나를 떠올려본다. 잘 익은 귤을 보면 새콤달콤한 맛을 연상하게 되고 식욕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귤 껍질을 벗겨 그 알맹이를 즐긴다. 이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과거나 현재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플 때가 있다. 알맹이와 껍데기가 바뀌어 대접을 받는 듯한 인상, 어쩌면 우리의 자화상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비판하신다. 사실 이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따라 자기들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 살았다는 것은 자타가 인정하는 바다. 그렇다면 무엇을 질타받고 있는 것인가? 알맹이보다는 껍데기에 힘을 기울였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껍질도, 옷도, 형식도, 겉으로 드러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진실로 중요한 것은 알맹이고 몸이고 내용이 아닐까? 기도를 하는 데 중요한 것은 기도인데 왜 주변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가? 선택해야 할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반드시 우선적인 것과 차선적인 것이 존재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알맹이라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껍데기의 역할은 알맹이를 보호하고 표현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의 삶 안에는 주객이 전도되어 정말 구해야 할 것보다는 껍데기에 힘을 쓰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본다.

김대열 신부(일본 시부까와 천주교회)

- 깊고 깊은 밤에    - 
 
모든 소리마저 잠들어 버린
깊고 깊은 밤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져
잠들지 못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그대 얼굴은 자꾸만
내 가슴 속을 파고든다.

그대 생각 하나 하나를
촛불처럼 밝혀 두고 싶다.

그대가 멀리있는 밤은
더 깊고
더 어둡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밤마다 나를 찾아오는
이유는 무엇이냐

지금도 사방에서
그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용혜원의 詩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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