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동성당 게시판

* 구원(8/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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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국길 [fcan] 쪽지 캡슐

2004-08-22 ㅣ No.3539

연중 제 21 주일 (2004-08-22)

독서 : 이사 66,18 -21 독서 : 히브 12, 5 - 7. 11 - 13 복음 : 루가 13,22 - 30

* 구원 *

그때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여러 동네와 마을에 들러서 가르치셨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선생님, 구원받을 사람은 얼마 안 되겠지요?”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있는 힘을 다하여라. 집주인이 일어나서 문을 닫아버린 뒤에는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인님, 문을 열어주십시오’ 하고 아무리 졸라도 주인은 ‘너희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너희가 ‘저희가 먹고 마실 때에 주인님도 같이 계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우리 동네에서 가르치시지 않았습니까?’ 해도 주인은 ‘너희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악을 일삼는 자들아, 모두 물러가라’ 하고 대답할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들은 다 하느님 나라에 있는데 너희만 밖에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그러나 사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석할 것이다.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루가 13,22­ - 30)

교회를 찾는 동기는 다양하다. 이는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중에 많은 이들이 구원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신학적으로 여러 표현이 가능하겠지만 결국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을 뜻할 게다. 하느님의 일부가 되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하느님과 같이 보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의 실존은 한계 안에서 산다. 그 한계를 넘는 삶으로 진입. 곧 신학적 용어를 빌리면 ‘지복직관(至福直觀, Beatific Vision)’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일 게다.
예수께서 보여주시려 했던 하느님 나라는 마음 안에서 시작되는 것이었다. 이 말은 결국 잘 죽어야 한다는 것이며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잘 산다는 것, 어쩌면 가장 힘든 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신다. 힘을 냈으면 좋겠다. 우리의 삶이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위한 여정이라 할 때, 이 여정으로 인해 영원하고 그분의 약속이 깃든 시간을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이다. ‘구원의 문은 좁다’는 말은 잘 산다는 것이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포기할 일이 아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면 된다. 단 그분의 도우심 없이는 나의 의지도 약하디약한 바람 앞의 등잔불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말이다.

김대열 신부(일본 시부까와 천주교회)

- 나도 파도칠 수 있을까 -   
바람이 바다에
목청껏 소리쳐 놓으면
파도가 거세게 친다.

나는 살아오며 제대로 소리지르지
못한 것만 같은데
바람을 힘입어 소리지르는 바다

해변가에 거침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보며
돌변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폭풍우 몰아치듯
살고 싶다는 것은
내 마음에 욕망이
불붙고 있다는 것은 아닐까

내 마음에도
거친 바람이 불어와
목청을 행구고 지나가면
세상을 향해 나도 파도칠 수 있을까

늘 파도에 시달려
시퍼렇게 멍들어 있는
이 바다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도 소리치고 싶은
열정이 남아있는 탓일까

갯바람을 쐬면
도시에서 온 나는
갯적은 소리를 내고 싶어진다
세상을 향해 나도 파도치고 싶어진다.
- 용혜원의 詩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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