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동성당 게시판

* 거짓(8/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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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국길 [fcan] 쪽지 캡슐

2004-08-24 ㅣ No.3542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2004-08-24)

독서 : 묵시 21,9ㄴ - 14 복음 : 요한 1,45 - 51

* 거짓 *

그때에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찾아가서 “우리는 모세의 율법서와 예언자들의 글에 기록되어 있는 분을 만났소. 그분은 요셉의 아들 예수인데 나자렛 사람이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는 “나자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고 물었다. 그래서 필립보는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라고 권하였다. 예수께서는 나타나엘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보시고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에게는 거짓이 조금도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나타나엘이 예수께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 하고 물었다. “필립보가 너를 찾아가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시자 나타나엘은 “선생님, 선생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는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하시고 또 말씀하셨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너희는 하늘이 열려 있는 것과 하느님의 천사들이 하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요한 1,45­ - 51)

◆오늘은 예수께서 필립보와 나타나엘을 부르시는 장면이 소개된다. 예수께서는 나타나엘을 가리켜 “그 사람에게는 거짓이 조금도 없다”라고 말씀하신다. 갑작스레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어떻게 살았기에 거짓이 없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거짓을 좋아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거짓된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하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닐까? 거짓의 반복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마도 상처에서 오는 것일 게다. 우리는 각자의 파란만장한 삶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의지와 상관없이 상처를 받는다. 그 상처를 어떻게 소화해 내고 넘어설 수 있느냐에 따라 걸림돌이 될 수도,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어설픈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을 만든다. 더욱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거짓은 면역성이 있다는 것이다. 신음을 하면서도 헤어나지 못한다.
그렇다면 거짓에서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생각해 보자. 상처란 무엇인가? 사랑의 결핍이 아니겠는가? 결론은 하나밖에 없다. 거짓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랑을 체험하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 사랑 안에서 믿음을 받았다는 체험, 그 안에서 나 역시 다른 사람을 온 마음으로 믿어본 체험이 필요하다. 그 체험이 바탕이 되어 철저한 자기 싸움을 이끌어 내야 한다. 연습 없는 완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주님, 거짓된 마음에서는 당신을 만날 수 없음을 압니다. 저 역시 당신에게 거짓이 없는 마음이라는 말씀을 듣게 해주소서. 아멘’

김대열 신부(일본 시부까와 천주교회)

- 계절이 지날 때마다 -   

계절이 지날 때마다
그리움을 마구 풀어 놓으면

봄에는
꽃으로 피어나고
여름에는
비가 되어 쏟아져 내리고
가을에는
오색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겨울에는
눈이 되어 펑펑 쏟아져 내리며
내게로 오는 그대

그대 다시 만나면
개구장이 같이
속없는 짓 하지 않고
좋은 일들만 우리에게 있을 것만 같다.

그대의 청순한 얼굴
초롱 초롱한 눈이 보고 싶다
그 무엇으로 씻고 닦아내고
우리의 사랑을 지울 수는 없다.

사사로운 모든 것들을 잊어버리고
남은 삶을 멋지게 살기 위하여
뜨거운 포옹부터 하고 싶다.

이 계절이 가기 전에
그대 내 앞에 걸어올 것만 같다.

- 용혜원의 詩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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