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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하느님의전지전능에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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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118.37.88.*]

2010-11-25 ㅣ No.9216

안녕하세요. 일단 부족한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드려도 되는것인지 잘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말씀드려보자 합니다.
부끄럽지만 혹시 도움이 되실까 몰라 몇글자 적습니다.
우리는 항상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통 스러워 합니다.
왜 하느님께서는 고통을 만드셨으며, 우리를 시험하고, 왜 아품을 주시고 고난을 주시는지요.
그렇다면 고통이 진정 주님께서 주신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우리의 고통을 나누어 지려고 이땅에 오셨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와 고통을 나누어
드시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신의 아들 하느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고통과 시험에서 벗어나실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 돌을 던질때,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관을 밖을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욕보일때 예수님께서는
절대로 그들을 원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용서하시고,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최후의 만찬에 우리에게 평화를 주고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평화를요. 그것은 이 곳 세상에서의 잘 살거나, 부자가 되거나, 남들에게 인정받는
그런것들을 이야기 하신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평화는 마음의 평화였습니다. 아무리 현실이 고통스럽고 고난이 와도
주님의 평화로 마음만은 언제나 평화롭고 행복할수 있는것.
내가 비록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주님께서는 그 사실을 아시고,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는것.
내가 오로지 믿고 의지하실 분은 세상의 사람들이 아닌 하느님이시라는것을요.
예수님은 왜 그 고통을 참아내셨을까요? 사람이 아닌 우리들의 아버지 주 예스그리스도 께서는왜
그들을 벌하시지 않으셨을까요? 왜 하느님은 지켜만 보시고 계셨을까요?
그것은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돌아오길 바라면서.
우리는 주위의 환경과 생활 또는 가족과 형제들 내가 아는 사람들, 그리고 여러
물질적인 문제들로 고통받고 힘들어 합니다. 어떤이는 평생 고칠수 없는 난치병으로
생을 마감하기도 합니다.
그들의 고통은 진정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우리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살고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들의 고통은 우리들의 자유의사에 의해 만들어 지고 어쩔수 없이 원하지 않아도
만들어 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살 수있다 말 할 수 있을까요?
아프리카의 난민들은 우리같은 선진국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욕심과 무분별한 환경파괴로
가난과 기아의 허덕입니다. 또 어느나라는 우리 손에 자랑하고 싶어 하는 다이아몬드때문에
내전이 일어나 사람을 죽이고 살육을 합니다. 또 어떤 선진국은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
석유를 가지고자 어느 나라에 전쟁을 일으키고 대통령을 죽이기 까지 합니다.
그것은 누가준 고통입니까?
우리가 준 고통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나한테만 이런 고통을 주시냐고 묻습니다.
우리는 왜 자유의사가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행복하길 바라는 하느님의
마음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자유의사가 없었다면 우리가 행복했을까요?
우리의 자유의사로 우리는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고 불공평하게 살아간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우리가 꼭 다 똑같이 공평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사랑의 마음으로 진정한 평화와 행복으로 마음과 내면의 부자로 사는것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요?
진정 내가 고통받지 않는다면 나의 마음의 평화와 행복이 올까요?
고통을 모르는 행복과 평화가 진정한 평화와 행복일까요?
고통과 고난속에서도 우리의 마음에 진정한 평화와 행복이 올때 그것이 진정성을 띈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은 우리가 서로 우리에게 줍니다. 우리의 자유의사로 인하여, 주님께서 죄인들을 벌하지 않는 이유.
우리들 중 죄인이 아닌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주님은 기다리시는겁니다. 그들이 회계하고 돌아오시기를, 그래서 우리들이 그들에게
고통을 당하고 고통을 주지만 기다려 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것은 하늘나라로 가기위한 우리에게 주시는 시련이기도 합니다.
시련이 없다면 어떤이가 하늘나라로 가서 하느님과 함께 할 자식인지 어떻게 구별해 내겠습니다.
우리는 완전하지 못한 존재이기에 항상 죄를 짓고 회계할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시련으로 고통 받아야 할까요? 그것은 하느님의 아품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고통의 십자가로 예수님이 드신 십자가를 나누어 드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더욱더 사랑 하시는
사람에게 고통과 시련을 주시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손을 뻗으십니다 . 우리를 사랑하고 믿으시기에 고통의 십자가를 함께 짊어지고 가자고. 진정한 사랑이신 그손을 뿌리치시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삶을 존경합니다.
고통속에서 생을 마감하셨지만, 부활 하셨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만, 하느님을
만날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통 스러워 하는것 중의 일부분은 속세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인 부분도 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돈욕심, 명예욕심, 건강하길 바라는것!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하나를 얻으면 둘이 생각납니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은 구멍난 독에 물을 붙고 왜 물이 차지 않느냐 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진정한 내면의 성찰을 해야합니다.
예수님께서 는 사랑 이시고 우리는 사랑을 실천해야합니다.
우리는 시련과 고통속에 더욱더 단련되고 더 많은 지혜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단지 고통만이 있는것이 아니라는 것은 형제님 또한 아실것입니다.
형제님께서 살아오신 세월 힘들고 아프고 견디지 못하는 나날도 있었지만
그 고통과 시련에서 깨달은 많은것들로 형제님께서는 단련되고 더욱더
발전한 내면을 찾으시고 고난이 왔을때 슬기롭게 이겨내시고 헤쳐나가셨을겁니다.
우리들의 고통과 시련은 언젠가는 보상을 받습니다.
그것은 지금 이세상이 아닐수도 있고 이 세상에서 일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것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삶입니다.
우리는 그 과정중에 다치고 힘들어 하고 하느님을 부르며 울부짓는 것입니다.
이곳의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희생양일수도 있습니다. 죄많은 자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죄를 대신 지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가정에서 부부중 한명이 배신하여 간음을 하고 바람을 피웠습니다.
그렇다면 분명 그 부부중 한명은 상처를 받고 고통을 당하고, 그 자식또한
그 고통속에 괴로워 몸부림 칠것입니다.
그것은 누가준 고통일까요?
하느님이 그 부부중 한명에게 바람을 피라고 말하였을까요?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 자유의지에서 잘못된 유혹에 넘어간
부부중 한명에게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왜 그에게 벌을 주지 않으시는 걸까요?
그가 돌아오길 바래서 입니다. 그를 사랑하기에,
탕자의 비유에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울며 달라오면 아들을 아버지는
기꺼히 행복한 마음에 받아 들이십니다.
그 고통의 십자가 속에 부부중 한명과 자식들은 희생양이 되었지만 만약
잘못을 저지른 부부중에 한명이 돌아오고 회계한다면 어떤 삶을 살까요?
그에게 회계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는 어떠한 마음으로 인생을 다시 살아갈까요?
우리의 희생으로 우리는 어떠한 이를 구원 할수도있습니다.
고통이 너무 고통스러워 진정 왜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 알길이 없을때도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하느님을 믿고 끝까지 의지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그 끝에는  영원한 삶과 하느님이 기라리고 계십니다.
인생은 고통이며 고난압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결코 고난과 고통을 벗어날수 없습니다.
우리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때문에 서로에게 죄를 짓고 잘못도 하지만
서로에게 사랑을 나누어주고 구원을 해주기도 합니다.
모든것은 우리 나 자신에게 달렸습니다. 중요한것은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한 존재로 나갈수 있는 그런 능력도 주신것입니다.
우리는 평생을 자신의 성찰과 하느님을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며
진정한 믿음으로 어떤한 일에도 하느님께 믿고 매달려야합니다.
하느님께서 오로지 하느님만을 의지하시길 바라며
고통과 고난을 주시기도합니다.
그래야만 온전히 하느님께 매달려 결국 하느님의 나라로 갈수 있끼 때문입니다.
몸에 좋은 약이 쓴법입니다. 우리에게 고통과 고난은 진저리치고
참을수 없을만큼 쓰고 너무나도 견디기가 힘듭니다.
그럴때는 하느님께 의지하고 의탁하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게서 손을 잡아주실 것입니다.
비록 현실세계에서 힘들고 고통스럽고 고난이 다가오겠지만
그래도 하느님을 믿고 의지한다면 우리도 언젠가는 진정 마음에 평화를 누릴수 있지 않을까요?
형제님께서 궁굼해 하시는 부분들에 대하여
하느님의 뜻을 알려면 하느님에 대하여 공부하셔야 아실수 있습니다.
성경도 많으 읽고 공부도 많이 하셨겠지만 계속 성경을 읽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모두 다 알수는 없지만 조금씩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시게 될것입니다.
그리고 송봉모 신부님께서 지으신 성서와 인간이라는 책 시리즈를 꼭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궁금해 하는 많은 부분들을 잘 이야기해 주시고 있으십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러면 우리도 우리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힘들어도 걸어가야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하느님만이 아십니다. 우리의 마음, 우리의 고통과 아품과 상처를,
하느님께서 항상 옆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눈으로 함께 하신다는것을 잊지마시고,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하느님께 기도하고 물어보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어떠한 방법으로든 응답을 주실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항상 깨어있도록 노력 해야합니다.
하느님의 메시지를 알차차리기 위해서요.
우리는 죄를 짓기에 하느님께서 바라시는것은 회계입니다.
우리는 죄를 질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기에 하느님께서도 알고있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죽음을 앞두시고 고통스러워 하셨습니다. 산에 올라가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피눈물을 흘리셨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다만 하느님의 뜻데로 하시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밖혀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아셨지만 너무나 고통스러웠기에
피하고자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의 자신의 짊어 지고갈 십자가를 거부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느님께 고통스러워 하며 왜 이런 고통을 주냐 원망하며 울부짓을수 있으나
예수님처럼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합니다.
그리고 그 고통에 맞서 싸워 당당하게 이겨낼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우리 한국 천주교의 순교자 성인분들 처럼 어떠한 고통이 와도
하느님을 외면하지 않고, 필요에 의해서만 내 욕심과 사리사욕을 위해 하느님을 외치는 것이 아닌,
하느님을 믿기에 당한 고통속에서도 우리는 회피하거나 하느님의 뜻을 거스러
쉽게 살아가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 고통의 삶 안에는 하느님이 우리를 도구로 쓰시기 위해
만드신 것임을, 고통과 시련으로 단련시키시기도 한다는것을 알아야합니다.
고통은 아프지만 신비입니다.
신비속에서 하느님을 찾으십시오.
고통은 인간이기에 느낄수 밖에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임을 받아들이실때
진정으로 마음의 평화를 찾으시는데 도움이 되실것입니다.
고통을 피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고통과 고난속에 당당하게 맞써 싸우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하느님이 얼마나 대견해하시고, 사랑스럽게 보시겠습니다.
내가 힘든 고통과 아픔속에서도 하느님을 잊지않고 의지하며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며
하느님의 도구로써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시면서요.
하느님께서는 노력하고 하느님께 한걸음 한걸은 다가가는 우리를 원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회계하며  평생 하느님께 의탁하며 살아가도록 노력해야합니다.
제 글이 도움이 되셨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감히 형제님께 이렇게 글을 올려도 되는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저 또한 고통이 너무나도 싫고, 너무나도 지치게해 피하고 싶고,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믿으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형제님도 힘내십시오. 그리고 하느님께 꼭 기도로 물어보십시오.
그러면 응답해 주실것입니다. 글에 내용이 두서가 없고 오타가 많을 것입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언제나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두려워 하지 말아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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