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골 자유 게시판

짝사랑이야기[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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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성 [greenbee] 쪽지 캡슐

2000-06-14 ㅣ No.882

부제. 18년간의 짝사랑이야기.

 

 

철민이는 동엽이랑 지윤이와 깔깔 거리며 얘기를 주고 받았다. 그러다 잠시 기

분 나빠하다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현주와 현철이가 다정한 모습으로 나란히 지윤의 집을 찾았다. 현주와 현철이

가 같이 왔다는 점에 잠시 기분 나빠하다가 현주가 하필이면 바로 자신 옆에 앉

는 바람에 마음이 떨어서 말을 하지 못했다.

 

"동엽이는 오랫만이네."

현주가 웃으며 동엽이에게 인사를 해 주었다. 동엽이는 현주와 친하지 않았지

만 철민이처럼 어색해 하지는 않았다.

"현주 니가 초대 받은 것은 이해가 되는데 저 놈은 의외다."

"뭐 임마?"

"친한 척 하는 거지. 헤헤."

동엽이가 철민의 표정을 살피며 현철이에게 무안을 주었다.

"어, 그러면 나도 철민이가 초대 받은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데 동엽이 네가

온 것은 의외다."

현주가 동엽이를 보며 말을 건네자 동엽이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너 나에게 친한 척 하는거지?"

"응."

철민은 자신을 가운데 두고 양 옆에서 현주와 동엽이가 어색하지 않게 말을 주

고 받는 모습을 보고 부러움을 가졌다. 자신도 그렇게 하면 될텐데, 철민은 그러

지 못해다.

철민이를 제외한 네명은 많은 말들로 즐거웠으나 철민이는 자기 옆 현주의 표정

만 어쩌다 살폈을 뿐 묻는 말들에만 간단하게 답하는 말만 했다.

그런 어색한 모습에 지윤이가 철민에게 말을 자주 건넸다. 반응이 시큰둥하자

현주가 재밌게 놀자,라는 뜻에서 장난삼아 말을 건넨 것이 철민에게 아픔을 주었

다.

"야, 김철민. 왜 말이 없어. 너 니가 좋아하는 지윤이 집이라고 수줍어 하는 거

니?"

딴 놈들은 다 이름만 불러 주었는데 자기에는 성을 붙여 딱딱함을 준것에 마음

이 아팠고, 자기를 좋아하는데 딴 애 얘기를 하며 자기 마음을 몰라 주었다는 것

에 마음을 다쳤다.

 

아직 밝은 해가 저녁 여섯시를 꾸미고 있었을 때, 철민이를 제외한 세명은 밝

은 표정으로 지윤의 집을 나왔다.

철민이는 지윤의 환한 배웅을 받으며 지윤을 집을 떠났으나 어깨가 쳐져 있었

다. 그냥 친한 척 하면 되는데 그렇게 못하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 박으며 어두

워 지는 자기 동네를 걸었다. 괜히 기분 좋은 날, 뭐가 기분 나빠 자신의 어깨

는 생각않고 던진 돌이 생각보다 멀리 날아 가 남의 창문을 깨 버리고 말았다.

그것 때문에 아버지께 야단까지 맞았다. 변상을 해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방학이 끝나고 가을이 되었다. 가을 소풍을 갔을 때, 현주와 같이 밥을 먹었지

만 친해지지 못했다. 순전히 너무 어린 나이에 짝사랑이라는 것을 하는 자신 때

문이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시절이 끝나면 나중에 잊혀 지는 줄 알기나 한 것 처럼 철민은

겨울 방학이 시작될 때까지 현주에게 친한 척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남들에게

는 자신의 마음과는 정반대로 해석 되어 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현주에

게 대하는 자신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너 현주 싫어하니?"

"왜?"

지윤이가 철민이와 단 둘이 퇴교를 하며 물은 적이 있다. 앙상한 플라타너스 가

지사이로 찬 햇살이 내리고 있던 12월이었다.

"그냥. 네가 현주 대하는 태도가 그렇게 보여서. 현주는 널 괜찮게 생각하던

데. 너도 내 친구고 현주도 내 친군데, 네가 싫어 하는 모습 보이니까 어색하더

라."

"너 작년에는 현주 재수 없다 그랬잖아."

"그때는 올해처럼 짝이 아니었잖아. 지내 보니까 좋은 애더라."

"나보다 키가 커서 이상해. 하지만 싫어하진 않아."

"호호. 나도 너보다 키가 크잖아. 그래도 키 차이가 많이 줄었다."

지윤이가 손을 철민이 머리에 갖다 대며 키 차이를 확인하더니 답을 했다.

"중학생 되면 내가 너보다 커질 테니까 걱정 말어."

"그래. 니가 나보다 커지면 오빠하고 싶겠다."

"내가 왜 니 오빠하는데? 집에 있는 애 하나만으로도 귀찮아 죽겠는데."

"넌 어느 중학교 배정 받고 싶니?"

"아무데나 가면 되지 뭐."

"나는 사대 부중이나 들어 갔으면 좋겠다. 거긴 유일한 남녀 공학이잖아. 너도

거기 갔으면 좋겠다."

"나는 남자 중학교 갈거야."

"서운하다."

"중학교 들어가면 국민학교 때 애들 잘 생각 나겠냐. 근데 내가 현주 싫어 하

는 것 처럼 진짜 그렇게 보였냐?"

"나는 그렇게까진 생각 안했는데 현주가 그러더라. 준용이처럼 철민이 너도 자

길 잘난 척 하는 그런 애로 보고 싫어 하는 것 같다고."

"아닌데..."

철민이는 자신의 마음이 오해받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지만 더 이상 내색

하지는 않았다.

 

방학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곧 이월달이 되어 개학을 했다. 졸업 때까지는 열흘

도 남지 않았다. 개학하자 마자 담임은 졸업식 때 답가를 부를 합창단 부원들을

뽑았다. 오학년들이 송가를 불러주면 육학원 각반에서 뽑은 열명씩 칠십명의 합

창 단원들이 답가를 불러 주는 전통이 있었다. 담임은 거의 무작위로 합창단원

이 될 학생들을 뽑았다.

철민이와 현주가 합창 단원이 됐다. 앞으로 졸업 할 때까지 남은 기간 동안 이

들은 노래 연습차 강당에 모일 것이다.

각반에서 선별된 칠십명이 음악 선생님의 지도하에 답가를 연습했다. 나중에 무

대에 설 때 아이들의 자리를 배정했는데 남자, 여자 반으로 갈랐는데 키순으로

하면서 철민이가 바로 현주 옆에 서게 되었다. 철민이가 키가 많이 자라 이

제 제일 뒷줄에 서야만 하는 위치가 되었지만 현주에 비해서는 아직 많이 작았

다.

연습을 하면서 철민은 현주 바로 옆에 섰었으나 그때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졸업을 이틀 앞두고 총 연습을 하던 날이었다. 수업이 끝났는데도 늦게

까지 남아 있었던 합창 단원들은 다른 아이들과 따로 귀가를 하게 되었다.

3반 애들만 같이 걷다가 어떻게 해서 현주랑 철민이 단둘이 걷게 되는 잠시간

이 시간이 있었다.

철민이는 어색하게 걷다가 현주의 말을 받았다.

"졸업 잘해라. 나한테 친한척 하지 않아서 이런 말 하기 싫었는데 졸업해도 기

억에 남을 몇 안되는 애들 중에 너도 포함될거야."

철민의 멀뚱히 현주를 올려다 보았다. 현주의 미소가 약간은 인공적이다.

"그래."

"그래 네가 나를 싫어 하지 않았다면 나도 지윤이처럼 너를 생일에 초대하고 싶

었는데... 지윤이가 나보다 딱 일주일 생일이 빠르더라."

"나. 너 싫어 하지 않아. 절대로."

철민이는 고개를 숙인채 천천한 걸음을 걸으면서 또박또박 느린 말투로 입을 열

었다.

"그래도 뭐 좋아하지는 않았잖아."

"절대로 싫어 하지 않았어."

철민은 그말을 남기고 갑자기 빠른 걸음으로 홀로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가버렸

다.

이틀 후 철민은 현주와 같이 지냈던 이년간이 포함된 육년간의 국민학교 시절

을 마감했다. 그리고 그 후로 그의 보물이 되었던 선물을 받았다.

졸업식장에서 현주와 단둘이 서서 찍은 사진 한장이 바로 그것이다. 현주가 밝

게 웃으며 같이 찍자고 해서 찍은 것이었다. 중학교 배정을 받던 날, 그 사진을

지윤이가 철민에게 전해 주었었다.

철민과 동엽은 같은 남자 중학교로 배정받았고, 지윤과 현주는 각각 다른 여중

에 배정을 받아 삼년간의 따로 따로의 삶을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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