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성당 게시판

[비타] 정든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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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 [novita] 쪽지 캡슐

1999-01-28 ㅣ No.99

                         정든 한숨

                              

                                        최영미                                

      

        어느날 나는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떠날 수도

      머물 수도 없는 길 위를 서성이며  내 안의 나를 낚고

      있었다.

      

      

        바윗등에 부딪쳐 흩어지는 물보라 같은 원망의 순간

      순간들이 다 헛되이 거품으로 끝나지 않았던가.  가슴

      한구석을 맴돌며  정박해 있던 한숨이  마지막 바람에

      몸을 풀었다.  나는 네 무력한 심장 한가운데 돌을 던

      지고 싶었다.  세상의 거친 바람에도 지워지지 않을

      문신을 새겨넣고 싶었다. 밀고 밀리던 반성의 시간들

      위로 뜬 구름은 흘러 어디로 가냐.

      

      

        더이상 꿈꿀 것도 잃을 것도 없어 벌레로밖에 살 수

      없었던 혼자의 방.  길들여진  오랜 낮과 밤을 인질로

      삼아 팽팽히 대결하던  자승자박의 질긴 끈을  마침내

      놓아야 하는가. 허공을 휘젓다 지친 손끝에 아직 열기

      가 남아 있을 때,  어둠의 끝에서 지펴지는 한가닥 가

      는 불빛은 오히려 절망이었다. 얼마나 더 사위어야 꺼

      질 수 있나.

     

        그 잘난 희망 없이도 우린 살았다. 아직 못 태운 무

      언가가 남아 있다면,  다시 고개 들고 태양 아래 너를

      내놓아라. 그 빛에 과거를 말리어 표백하고 정든 한숨

      과 환멸의 힘으로 노를 저어 너의 바다에 이르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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