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돌아보면 모두가 그리움인 것을 ( 부끄러운 고백 제4탄)

인쇄

박재준 [bopark] 쪽지 캡슐

2005-06-20 ㅣ No.5546

중계동성당에서 바자회를 적십자 봉사관에서 하기도 하였고,

마들근린공원에서 가을 운동회도 한다고 하기에,

금쪽같은(?) 내 새끼를 유모차에 태워 

부부가 주변을 맴돌아도 누구 한 사람 나서서

새로운 얼굴이 나타났다고 반갑게 맞이하여 주는 사람도 없기에,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김밥 한 줄 사서 멀찌감치 앉아 먹으면서

'저네들끼리 잘 노네'라며

그들만의 잔치를 비아냥 거리면서

주변인으로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하였었지요.

 

낯가림이 심하고 숫기가 없었던

우리 부부는 약 4년간 그렁저렁

주일 미사만 참례하면서 살았는데,

 

93년도에 아버님께서 병석에 누어 계신지,

거의 10년 만에 하느님 품으로 가셨고,

수원의 권선동 성당에서

형님과 형수님이 레지오 단장을 하시고,

전례분과와 구역분과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하시면서,

울뜨레아 간사에 M.E대표까지 맡으셔서 활동하시다 보니,

 

권선동 성당의 많은 신자분들이

아버님을 위하여 연도를 바쳐 주셨는데,

저는 그때까지도 연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었으나

구성지게 넘어가는 가락에 취하여

3일동안 함께하다 보니

연도가락을 다 외우게 되었었지요.

그 후

아버님의 장례를 치르고

각자 성당은 달랐지만

아버님의 상을 치르면서 느낀 바가 많아, 

어머님이 먼저 레지오에 들어 가시고,

여동생이 성가대 및 레지오에 들어가고,

남동생은 연령회를 들어가게 되었고,

저의 내자도

중계동 성당 레지오에 들어가게 되었었지요.

여기에서 한 알의 밀알이 썩어야만

새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지요.

그 후 얼마정도 지나자

내자가 말하기를
"레지오에  들어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하기에,
저는 말했지요.
"그런 것은

등 따습고 배 부른 인간들이나 하는 것이지,

나처럼 남의 빚이나 갚고

먹고 살기 바쁜 인간이 할 것이 아니다"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지요.

 

5탄은 다음에^^



65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