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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중계동 성당 : 에필로그 : 여기는 용산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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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락희 [rakhi] 쪽지 캡슐

2005-06-20 ㅣ No.5547

 

나의 사랑 중계동 성당 : 에필로그 : 여기는 용산 성당


지난 토요일, 이사를 했다.

받아 놓은 날은 금방 다가온다더니만,

이렇게 빨리 시간이 지날 줄이야......


바로 1년 전에 이사를 했다지만,

한번도 손길이 닿지 않은 것들로 그 양이 반을 넘었다.

그때도 이것들을 들어다 놨다 하면서,

고민했으리라. 


이번만큼은 과감하게

꼭 필요한 것만 들고 가겠다고 다짐했건만,

막상 이사 가기 전날에는

온 가족이 이건 이럴 때, 저건 저럴 때 하면서,

내 놓은 것을 다시 들고 들어오기에 이르렀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무엇이 그렇게 필요하다는 말인지...


아침에 잔뜩 흐려있는 날씨가

조금은 걱정스러웠다.

앞집인 그전 구역장님댁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저무도록 남편은 전화를 해온다.


“수도 계량기 숫자 좀 불러 줘”

“위의 건가? 아래 건가?”

“윗 거라는데...”

“7070.  혹시 모르니 아랫것도 ...”


차 한 모금을 마시는데,  또 전화,

“숫자를 잘 못 불러줬대.  다시 불러 봐.”

“위에 것 ....   아래 것 ....”

“아니라는데...”


또 다시 한 모금을 먹는데, 또 전화.

“도시가스는 얼마 줘야 되는지 물어 봐”

“아직 안 왔는데요”

“빨리 와야 정산을 할텐데. 전화해서 빨리 오라고 하지...”


다시 한 모금을 마시는데, 커피는 이미 식어있었다.

‘딩동’

“도시가슨데요... 철거했구요...”

“언니 안 되겠어요. 내가 가봐야겠네요.”

도시가스 검침 확인서를 들고

부동산 소개소에 가서야, 이사를 위한 모든 절차가 마쳐졌다.


꾸물거리며, 빗방울이 듣던 하늘이 다시 열리고,

앞집의 언니와 가벼운 포옹으로 상계동 살이는 마감되었다.



새로운 살이를 시작할 마포 산꼭대기,

남편은 저 밑에 있는 아파트들이 하나도 부럽지 않다고 했다.

복잡하고 시끄러운데다가, 한강도 안 보이고......

하지만, 당장 월요일부터 출근해야하는 나로서는,

‘그래도 산기슭은 아니더라도

중턱이면 좋겠구만, 우째 산 꼭대기다냐...’


우리 아파트 앞으로 80개정도의 계단이 있다.

그리로 올라가면,

마포구와 용산구를 경계 짓는 작은 도로가 그림같이 굽어져 있는데,

거기서 200m만 거슬러 가면, 성당이다.

남편 말로는 3분 거리라는데,

그건 좀 ‘오바’고.

5분은 좀 더 걸리고 10분 안에는 가겠다.


성당 앞에 마당이,

눈에 설어서 막내는 어리둥절해했다.

마당에 들어섰지만,

도무지 어디가 성당이란 말인가?

왼쪽에 현대식 큰 건물과 오른 쪽에 밑이 툭 트인 곳 사이에,

하얀 수단을 입은 신부님의 뒷모습이 산바람을 맞고 있었다.


일단 건물로 쓕 들어갔더니,

다시 왼쪽에 사무실이,

오른쪽에는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아, 성당은 이 위에 있나보다’

그래도 물어보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근처에 서성거리던 학생에게 물어보니,

아래로 가란다.

‘뭐야, 용산성당은 지하성당이란 말인가?’

내려가 보니,

이번에는 더욱 놀랄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미사 시간이 15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성당에서는 파티마 기적에 관한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소성당’ 이라 써 있다.

우리 막내는 성당(?) 같은 소성당에 익숙하지 않은 터라,

자꾸 들여다 보고 또 보고 했다.

그럼 대성당은 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인지...

한 번 더 내려갈까 했는데,

계단 옆 작은 문이 밖으로 나 있었다.

내어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다.

소성당에서 대성당으로 이어지는 길 아래쪽으로는

순교자 묘역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대성당은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았다.

내 가늠으로는 중계동성당과 비슷한 것 같았다.

다만, 높은 천정과,

유리화의 창문, 고딕의 기둥들이 눈길을 잡았다.

‘늦게 왔다간, 저 기둥 뒤에서 눈을 감고 미사를 참례해야겠구나...’


막내가 관심 있는 건 역시 ‘복사’였는데,

이곳의 교중미사는 부부가 복사를 하였다.

가끔 어른들이 복사 서는 것을 본 적이 있지만,

정말 신기했다.

이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해서,

마치 성지순례 온 사람처럼 나도 모르게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영성체를 위해 앞으로 걸어 나갈 때,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내가 미사참례를 하고 있구나. 

나의 예수님이 여기에도 계시네...’


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신기한 팻말이 눈을 끌었다.

‘오늘의 메뉴, 콩국수  3000원’

막내가 이런 말을 했다.

“해창이 아줌마도 여기로 (이사)오면 좋겠다.

같은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미사 끝나고,

콩국수 한 그릇 먹고 가면 좋겠네.

저기 커피자판기도 있구“

‘짜아식, 내 마음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물건은 얼마나 될까요. 십자가 무게를 힘겨워하면서도 내가 움켜쥐고 있는 것들이 주는 구속은 눈치 채고 있지 못했습니다. 늘 명분은 있었지요. 여행을 떠나 콘도에 든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의 가재도구는 우리가 여행하는데 전혀 불편함을 주지 않습니다. 그 만큼이면 될 것을, 웬 살림살이가 그렇게도 많은지 말입니다.  많이 버렸습니다만, 끝내 버리지 못한 것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것들은 대체 언제 손에서 내어 놓을 수 있을지...   

그리고 또 한 가지, 나의 예수님은 너의 예수님도 된다는 것입니다. 중계동의 예수님을 용산에서도 뵐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우리 집의 좋은 점은 어떤 시설보다 성당과 가장 가깝다는 것입니다.  다만 냉담중인 남편이 그렇게 말하지 못한 것이겠지만요.  이젠 저를 여기로 보내신 분의 뜻을 알아 봐야 하겠지요? 

안녕히 계세요...

그리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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