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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거지와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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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종 [sjjbernardo] 쪽지 캡슐

2001-08-10 ㅣ No.7288

 

 

거지와 예수님

 

얼마 전에 버스비가 모자라 완행기차를 탔다가 친절하게 자리를 권해주는 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무심코 혹시 교회 나가시는 분이냐고 여쭈었더니 아주머니는 금방 반색하면서 그렇다는 것이다. 어떻게 알았냐고 신기해하면서 묻지도 않은 말을 기쁘게 들려주기 시작했다.

 

아주머니 말에 따르면 한 십 년 전에 이상한 체험을 했다는 것이었는데, 꼭 옛날 이야기만 같은 내용이었다.

 

어느 날 아주머니는 몹시 바쁘게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어떤 거지가 구걸을 하러 왔다. 정신없이 일에 몰두하고 있던 아주머니는 자기도 모르게 귀찮아서 퉁명스럽게 지금은 바쁘니 다른 데나 가보라고 거지에게 박대를 하며 내쫒은 것이다.

 

그런데 그 거지가 돌아서 나가는 뒷모습을 힐끗 보니 놀랍게도 틀림없는 예수님이었다. 깜짝 놀란 아주머니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허겁지겁 쌀을 한 대접 떠서 달려나가 보니 거지는 그새 어디론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옆집으로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역시 허사였다. 집으로 돌아온 아주머니는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 그때부터 아주머니의 눈에는 어떤 낯선 사람도 예수님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 그렇게 아주머니는 십 년을 하루같이 만나는 사람을 모두 예수님으로 알고 대접을 했다.

 

이야기를 다 하고 나서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세상 사람이 다 예수님으로 보이니까 참 좋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드리고 싶어예."

 

그날 나는 동화의 주인공 같은 아주머니를 쳐다보며 부러워했다. 여태껏 들어온 설교 중 진짜 설교를 들은 것이다. 버스비가 모자라 기차를 타게 되었고 뜻밖에 예수님 대접도 받고 아름다운 이야기도 들었으니, 꼭 천국에 사는 기분이었다.

 

권정생, 녹색평론사, <우리들의 하느님>에서

 

주님 안에 사랑 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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