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논리로는 불공평할 수밖에 없는 포도원 주인의 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포도원 주인은 사람들이 불만을 터뜨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하는 이라서 그런가? 주인과 종의 비유가 생각난다. 주인은 주인이 해야 할 것을 하고, 종은 종이 해야 할 것을 하면 되는데 둘 사이에 균열이 오는 것은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이래라저래라 할 때부터가 아닐까? 주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각자는 각자가 해야 할 것을 하면 된다. 무자비한 태도로만 느껴진다. 일꾼들은 각자 다른 시간에 부르심을 받는다. 그들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태도를 보면 좀 이해가 될까? 하릴없이 서 있는 사람도 부르고, 빈둥거리는 사람도 부른 것은 주인이지 종이 아니다. 그리고 일을 하러 가자고 할 때 한 데나리온을 주겠다는 계약도 했다. 아침에 온 이들과도 그랬고 낮에 오후에 온 사람과도 그렇게 계약을 했다. 그 순간은 서로 불만이 없었다. 오히려 감지덕지했을지도 모른다. 아침부터 일한 일꾼들은 자기보다 늦게 온 사람들이 자기보다 많이 받는 것에 불만스러웠다. ‘십우도’ 중에 아홉번째는 반본환원(返本還源)이다. 본래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소도 잊고 나도 잊고 깨침이라는 것도 잊은 상태에서 자연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비치는 경지를 표현한다. 산은 산, 물은 물 그대로의 모습을 꿰뚫어볼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한 경지를 표현하는 말이다. “본래로 돌아올 걸 공연히 애썼구나. 차라리 눈멀고 귀먹었던들, 집 앞에 물건을 왜 못 봤던고? 물은 절로 흐르고 꽃은 절로 피어 있네.” 오늘 복음은 이런 이치를 깨닫게 한다. 예수님은 우리와 늘 함께 걸으신다. 지금도 우리와 함께 걸어가고 계신다. 우리는 당시의 제자들과 같이 부활하신 예수를 금방 알아차리지 못한다. 눈에 씌었던 막이 걷히고 보이게 되는 과정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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