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동성당 게시판
크리스마스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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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금부터 쓰는 글은.. 제가 고3때 과외했던 오라버니한테 받은 크리스마스 편지입니다.
카드를 가장한 편지이져...
글이 참 좋아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고대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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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지은
새 달력을 걸고, 새 수첩에 전화 번호를 옮겨 적으며…어느 해와 다를 것 없이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습니다. 그 시간의 갈피에서 떠오르는 생각들
이 있습니다. '또'한 해가 아니라 아주 '새로운' 이 한 해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만년에 죽음을 맞으면서,
"그렇게 기다렸으나…이다지도 늦게 찾아온 죽음" 이라고
그의 시에서 노래했습니다.
오직 하나인 저 다가오는 한 해를 향해 기도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그렇게도 기다렸으나,
이다지도 늦게 찾아온 한 해' 라고.
이렇게 시작되는 작은 기도를 당신과 나누며, 고개를 끄덕여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새해에는 잊혀졌던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날까 합니다.
때때로 생각했습니다. 지금의 나.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나는 그토록 많은 것을 뒤로 미루고, 옆으로 밀어놓고,
그도 아니면 먼 훗날 어디선가 만날 것을 약속하며 여기 이 자리까지 뛰어왔던
것이 아닌가.
아니였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잊혀진 나를 그리워했습니다.
어쩌면 나를 찾아간다고 믿었던 그 긴 여정은 끊임없이 나로부터 떠나는 나그네
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더 미룰 것도 없습니다. 더 기다릴 것도 없다고 새해를 맞으며 생각합니다.
이제는 나를 찾아가기로, 그것은 무엇보다도 스스로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일,
미루어두었던 일… 그것을 찾아가는 출발이어야 하겠지요.
한 해를 보내며 새해를 맞으며, 어떤 계획을 세우셨는지요? 무엇을 끊겠다거나,
무엇을 이룩하겠다는 살벌한(?) 계획은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무엇인가를 다만 시작하기로 합시다. 시작한다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기쁨이며
즐거움입니다.
그 어떤 시작도 늦은 것은 없으니까요.
00.12.20 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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