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골 자유 게시판

짝사랑이야기[10]

인쇄

권진성 [greenbee] 쪽지 캡슐

2000-06-11 ㅣ No.876

부제. 18년간의 짝사랑이야기.

 

 

철민은 자기 친구가 현주를 때린 것이었지만 자기가 때린 것이나 마찬가지라 생

각하며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그래서 다시 현주가 어려워 지기 시작했다.

 

전교 회의에 나가서도 회의를 진행하는 현주를 그냥 조용히 지켜 보기만 했다.

그런 철민의 마음을 지윤은 알지 못한 채 현주가 맞았던 그때의 일을 자주 애기

하곤 했다.

 

체육대회가 가까워 오는 오월의 늦은 날이었다. 자주 같이 붙어 다니 던 지윤과

현주가 철민이와 준용이가 함께 퇴교 하는 날이었다. 그 날 이후로 철민은 현주

와 더욱 멀어졌다.

현주는 그때 준용이에게 맞았던 것에 아직 기분이 안 풀렸는지 뜬금없이 준용이

에게 말을 뱉었다.

"나 아직 우리 아빠나 엄마에게도 뺨 맞은 적이 없는데, 너 나빴어."

"미안하다고 그랬잖아. 나도 너 좋게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나쁘다 그래도 상관

은 없는데 잘난 척 하는 것은 못 봐주니까 입 닥쳤으면 좋겠다."

철민은 그렇게 말하는 준용이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 되었으나 눈을 흘기는 현주

의 표정에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자기는 아빠에게 자주 맞아 본 적이 있다. 자

기 동생은 자기가 때려 봤다. 현주는 역시 자기 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났다고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자신의 친구에게 뺨을 맞은 것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준용이의 팔을 끌어 같이 현주의 곁을 사라져 주었다. 그 사라짐은 오래

갔다.

 

체육 대회때 예전의 현주의 말이 생각이 나 철민은 야구 선수가 되었다. 이번에

도 우승하여 현주가 좋은 말 해 주면 어색함이 달아 나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 열

심히 던졌다. 그러나 첫 경기에서 졌다. 자기를 응원하는 현주를 보며 철민은 너

무 잘 던지겠다는 의욕이 앞섰다. 공은 여러번 타자를 맞추었고, 제대로 들어 가

는 공은 가뭄에 콩나물 나듯 했다. 2회 때 철민은 타자로 교체가 되었다. 타석에

서도 철민은 전혀 활약을 하지 못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철민은 많이 상심

했다. 철민은 현주로부터 잘한다고 유일하게 인정 받은 것은 야구뿐이라고 생각

을 했다. 이제 현주에게 자신은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어 졌다. 어린 마음에 큰

상처가 되었다.

 

철민은 지윤이가 현주와 같이 하는 시간이 많아지자 지윤에게도 소원해져 갔

다. 예전처럼 여학생들 자체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여전

히 그의 마음속에는 현주가 자리 잡고 있었다. 어린 놈 치고 상당히 조숙했던 것

이라 봐야 겠다.

 

운동장에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고 어린 소녀들의 고운 목덜미와 짧은 소매에 드

러난 살갗이 싱그런 햇살에 타고 있는 칠월달이 되었다. 곧 방학이 다가 올 것이

다.

철민은 오학년때 우등상 못 받은 것에 대한 보상심리 차 다소 게을리 하던 학업

에 열정을 두었었다. 칠월 달 내내 땀흘려 가며 시험 공부를 했다. 그리고 받은

성적표가 올 수였다. 기분이 좋았다. 옆을 보며 지윤과 현주의 표정을 살폈다.

별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철민아 성적표 바꿔 보자."

지윤이가 쌩긋 웃으며 친한 척을 했다. 현주도 자기를 쳐다 보는 것을 인지했

다.

"왜 자꾸 남의 성적표를 보려고 하냐?"

"너 시험 잘 봤잖아. 올 수야?"

"어떻게 알았냐?"

"정말? 우린 우가 하나씩 있는데."

지윤의 말을 듣고 철민의 마음은 확 퍼졌다. 지윤의 고개 너머 자신을 보는 현

주를 똑바로 쳐다 보았다.

"현주도 우가 있냐?"

"응, 우리는 체육이 우야."

철민은 자신의 성적표를 지윤에게 주고 손을 떨며 현주의 성적표를 받아 보았

다. 지윤과 현주 모두 우가 하나씩 있었다. 자신의 성적표를 가운데 놓고 둘이

가 소곤 거린다. 그냥 그게 좋아 철민은 웃었다.

 

방학이 되었고 며 칠 지났다. 철민에게 지윤이가 찾아 왔다.

"너 내일 우리 집에 올래?"

"왜?"

"그냥."

"나, 너네 집 어딘지 몰라."

"나 내일 생일이야. 방학때라 생일 초대 같은 것 안해 봤는데 올해는 해 보려

구."

"내일 니 생일이냐?"

"응."

"진짜?"

"응."

"누구 누구 초대 할건데?"

"현주랑, 현철이랑. 음, 동엽이도 데리고 가자."

"너 현철이랑 친하냐?"

"그렇게 친한 것은 아니지만, 현주 덕에 가까운 편이지."

"나도 준용이와 친한데..."

"준용이는 날 때려서 싫어. 현주도 걔 싫어해."

"나도 현철이 싫은데."

"하긴 넌 현주와 현철이랑은 친하지 않지."

흠, 철민이는 자신이 현주와 친하지 않다는 지윤의 말에 조금 마음이 서운했

다.

 

다음날 같은 반은 아니지만 철민이는 동엽이와 함께 지윤이네 집으로 생일 초대

되어 가게 되었다. 지윤의 집이 어딘지 모르는 철민이와 동엽이를 위해서 지윤이

가 직접 철민이네 동네로 그들을 데리러 왔었다. 지윤의 집은 철민이가 상상한

것 보다 훨씬 크고 고급스러웠다. 하지만 철민이는 무감했다. 현주에게는 많은

것에 기가 죽었는데 지윤에게는 예전부터 어느 하나 기 죽은 것이 없었다.

"야, 니네 집 좋네."

동엽이가 집에 들어서자 마자 두리번 거렸다.

"우리 둘 뿐이다?"

철민이가 고개를 두리번 거리는 동엽이를 약간 재제하고서는 물었다.

"현주랑 현철이는 조금 있다 올거야. 걔들은 우리 집을 알거든."

"그렇냐?"

철민이는 동엽이와 돈을 모아 산 학용품을 선물했다. 동엽이는 따로 자신의 집

에서 재배한 참외를 여러개 가져와 지윤에게 주었다.

"고마워."

 

"안녕하세요."

"그래. 지윤이 친구들이 왔구나. 이쪽이 철민이 맞지?"

철민과 지윤은 지윤의 어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두어 번 만난적은 있지만 철민

을 알아 보는 어머니에게서 지윤이가 철민이 얘기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엄마. 얘는 오학년때 우리 반 친구였던 동엽이야."

"그래 씩씩하게 생겼구나. 지윤이 방에 생일 상 차려 놨으니까 재밌게 놀아라."

"네."

 

아이들은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가 놓여져 있고, 책상이 잘 정리 되어 있었다.

철민과 동엽은 다시 두리번 거렸다.

"야, 나는 형이랑 같은 방 쓰는데 이것보다 작은데."

동엽이가 한 소리 내 뱉자 철민이가 바로 받았다.

"니 침대라는 것에서 한번이라도 자 봤냐? 그리고 너 방에 그게 책상이냐 밥상

이지."

"철민아 너무 그러지 마."

"그래 임마. 우리 집이 그래도 마당은 넓다."

"친하니까 그러는 거지. 동엽아 삐쳤냐?"

"히히. 내가 삐치는 거 봤냐. 하여간 여자 방이 이런거구나."

 

철민과 동엽은 지윤을 생일상 건너편에 앉혀 놓고 현주와 현철이만 오기를 기다

리며 먹을 것들의 유혹을 참고 있었다.



26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