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골 자유 게시판

짝사랑이야기[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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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성 [greenbee] 쪽지 캡슐

2000-06-16 ㅣ No.901

부제. 18년간의 짝사랑이야기.

 

 

고 삼때의 겨울 방학은 대입에 합격한 이들에게는 무한한 기대와 설레임, 그리

고 여유를 준다. 하지만 별다른 특별한 일들이 쉽게 일어 나지는 않는다. 철민에

게도 그랬다. 철민은 현주를 만나 그 동안의 소원함을 풀고 싶었다. 하지만 철민

은 현주를 우연히 스쳐 지나는 기회도 잡지 못했다.

 

철민은 그냥 심심하다는 생각을 하며, 곧 있을 서울 생활을 기대하며 그냥 놀았

다. 해가 바뀌었고, 일월달이다.

 

"여보세요?"

"야, 나다 동엽이."

"무슨 일이냐? 되도록 용건만 간단히 해라."

"우리 오랜만에 야구나 한 게임 갖자."

"한겨울에 무슨 야구냐."

"할 일 없는 새끼들이 생각보다 많더라. 준용이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자기네 학

교 애들과 야구 한 경기 하잰다."

"준용이네 학교는 남녀공학이잖아."

"남녀 공학에는 야구 즐기는 남학생이 없으란 법이 있냐?"

"없다. 시합 하게 되면 나 사번타자 시켜 주냐?"

"안 시켜 준다. 넌 투수 해야 된다."

"그럼 안해."

"투수도 공격 해 임마."

"그러니까 사번타자 시켜 달라니까."

"그건 시합 때 생각하기로 하고, 몸이나 풀어 나라. 이번 주 일요일날 울 학교

운동장이다. 오전에 일찍 나와."

"알았다. 다른 용건은 없냐?"

"지윤이네 집 전화 번호나 갈쳐 주라."

"왜?"

"지윤이 보고 미팅 좀 주선하라고 부탁하게. 내가 아는 여자라곤 지윤이밖에 없

잖아."

"미팅? 너도 나가게?"

"나는 주선하지 뭐. 너도 미팅 할래?"

"싫어 임마."

"전화 번호 가르쳐 줘 빨리."

"지윤이한테 물어 봐 가르쳐 줄거야."

"지윤이한테는 어떻게 연락해야 하냐?"

"***-****로 전화해서 지윤이 바꿔 달라고 해."

"그 전화 번호는 뭔대?"

"지윤이네 집 전화번호야."

"아무리 생각해도 넌 이상한 놈이야."

 

철민이는 천장 한 번 보고, 방바닥 한 번 긁고. 추워서 밖에 나가기 싫었는지

하루 종일 방에만 쳐박혀 있었다.

 

"여보세요?"

"안녕. 나야 지윤이."

"넌 용건만 간단히 말하지 않아도 된다. 야, 재밌는 일 없냐? 디게 심심하네."

"심심하다 그러지 말고 나에게 연락 좀 해라."

"무슨 일이냐?"

"응, 동엽이가 미팅 좀 주선하라는데 그럴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봐?"

"응? 너도 나갈거니?"

"내가 왜 나가냐."

"그럼 동엽이 친구들 미팅 주선해 주고, 나랑 놀게 너도 나와라."

"동엽이가 주선 한다던데."

"아냐, 동엽이도 미팅하는데 끼라고 했어."

"그럴까? 언제 하는데?"

"내일 오후에. 시간은 나중에 알려 줄게."

"그래."

 

하루가 지나고 철민은 지윤을 만나기 위해 미팅 장소로 나갔다. 철민은 처음 가

보는 커피숖이 낯설고 신기했는지 두리번 거렸다. 남자 아이들은 모두 나와 있었

으나 아직 여자 쪽 아이들은 나오지 않았다. 동엽이가 외모에 신경을 쓴 모습으

로, 무스를 칠했는지 머리는 서 있었고 향수까지 뿌렸는지 좋은 냄새가 나는 깔

끔한 옷을 입고 철민이가 아는 놈들과 함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넌 왜 나왔어 임마."

"내 맘이다 새꺄."

철민을 보더니 동엽이가 대뜸 물었고, 철민은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한 자리

를 차지하고 앉았다. 기대하는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조금 뒤 커피숖으로 아직

애띤 모습인 소녀들이 들어왔다. 지윤이가 앞장을 서서 들어왔다. 지윤은 철민

을 보면서 미소를 띠운 채 손을 흔들었다. 남학생들은 소녀들의 모습을 보고 자

리에서 일어 섰으나 철민은 그냥 앉아 고개를 푹 숙였다. 지윤이가 데리고 나온

소녀들 중에 현주가 있었다.

지윤은 이번 미팅의 주선자 답게 자리에 앉지를 않았다. 동엽이가 지윤에게 인

사를 해 주었고, 낯이 익었는지 현주에게도 반가운 미소를 띠어 주었다. 소녀들

이 남학생 자리의 맞은 편에 모두 앉게 될 때까지 철민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그

냥 앉아만 있다.

"안녕하세요."

지윤은 데리고 온 소녀들을 소개 시킬 요량으로 남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

제서야 철민은 고개를 들고 소녀들을 쳐다 보았다. 현주 빼고는 다들 같이 다니

는데 상당한 용기가 필요할 것 같은 외모의 소유자들이었다. 자신의 옆에 앉은

놈들을 살폈다. 다들 더러버 보이는 인상의 소유자들이다. 현주가 불안했다. 철

민은 이리 저리 애들을 살피다 현주와 눈이 마주치자 씩 웃었다. 현주는 무표정

이다.

"전 간단히 소개만 시켜 주고 갈게요. 공주 여고 이쁜이들만 나왔어요. 저 안쪽

은 심은하, 그 옆은 최진실, 송윤아, 한고은, 성현주에요. 다음 일은 동엽이에

게 맡길게요. 서로 좋은 시간 갖길 바래요."

지윤은 간단한 인사를 마치자 마자 철민이의 어깨를 쳤다. 나가자는 의사 표시였

다. 철민이는 고개를 들어 ’’나 그냥 있으면 안될까?’’하는 표정으로 지윤을 쳐

다 봤다. 그 둘이의 모습을 맞은 편에서 현주가 지긋한 눈으로 바라봤다. 철민은 현

주가 나올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동엽이는 지윤이가 일찍 가버린다는 말

에 서운했는지 지윤에게 눈길을 주고 있었다.

"너도 미팅하러 나온거니?"

현주가 철민에게 말을 붙였다. 철민이 대신으로 지윤이가 답을 해 주었다.

"얘는 아냐. 신경 쓰지마 곧 데리고 나갈거야."

철민이는 나가기 싫었으나 지윤이가 꺼집어 냈다. 철민은 현주를 약간 애처로

운 눈빛으로 바라보다 지윤에게 끌려 나갔다.

"안녕."

철민의 작은 목소리를 현주가 들었을리 없다. 현주는 더 이상 철민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미팅에 임할 자세로 바꿨다.

 

지윤에게 끌려 커피숖 밖으로 나간 철민이가 혼잣말 하듯 물었다.

"현주도 나왔네."

"응, 걔는 공부만 하느라 친구가 별로 없어. 내가 미팅해라 꼬셨지."

철민이는 불만스런 표정으로 지윤을 꼬아 봤다. 그러나 지윤은 철민을 만난 것

이 기뻤는지 귀여운 웃음만 지을 뿐이다.

"걔도 합격했지?"

"응, 그러니까 나왔지. 무슨과라고 그러더라? 아 맞다. 나랑 비슷한 과다. 영어

교육학과라고 그랬어."

"쩝."

"왜 입맛을 다셔? 너도 미팅하고 싶었니?"

"아니야."

"우리 뭐 할까?"

"영화나 보러 가자."

철민은 영화 상영 내내 현주 생각을 했다. 어떤 놈이랑 파트너가 될까, 서로 좋

아하게 되어 현주에게 남자 친구가 생기게 되지나 않을까. 철민은 내심 불안했

고, 질투심도 났다.

 

"야."

"왜?"

"누가 보면 어쩔려구 그래?"

"뭘?"

"팔 빼."

"내 아니꼬와서 안 낀다 그래."

"대학도 안들어간게 벌써 부터..."

"치, 재고 해 봐야 겠어."

"뭘 재고해 봐?"

"서울가서 너 하숙 할거지?"

"응."

"주소 가르쳐 줄테니까 자주 놀러와."

"무슨 주소?"

"응, 내가 지내게 될 아파트 주소."

"너 친척집에 있을거냐?"

"아니야. 작은 아파트 하나 샀어. 나중에 동생도 서울 올라 올 것이라 생각하고

서울에 거처를 하나 마련했지."

"지금 너네 집 돈 많다고 자랑하는 거냐?"

"그렇게 밖에 생각 못하니?"

"그렇다."

철민이는 지윤이가 점점 편하게 느껴졌다. 지윤을 만나는 데 있어서는 꾸밀 필요

성을 느끼지 못했다. 좋게 말해서 철민은 지윤에게 가식적이지 않았다.

 

철민은 집에 오자 마자, 동엽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동엽은 집에 들어 와

있었다.

"야, 오늘 미팅 경과 보고를 해라. 현주는 누구랑 짝이 되었냐?"

"응? 우리 그냥 파트너 정하지 않고 놀았어."

"왜?"

"현주가 파트너 정하지 말고 그냥 놀자고 그랬어. 남자쪽에서 다 그러자 그러더

라."

"다행이네."

"뭐가?"

"아니다. 잘자라."

철민은 안심이 되었다. 자기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현주와 친해 질 수 있었을텐

데 하는 아쉬움은 있었으나 짝을 맞추지 않았으니 현주가 특별히 관심을 둔 사내

가 없었다는 것에 위안이 되었다.

 

철민은 지윤이도 아파트를 얻었는데, 현주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철민이는 집

에 가서 아버지께 조심스레 자기도 아파트를 하나 사달라고 말했다. 엄마만 아니

었으면 그는 미친놈 취급을 받을 뻔 했다.

 

철민은 이틀동안 한동안 만지지 않았던 야구공을 손에 잡아 보았다. 추위에 수축

되어진 어깨 탓이라 공을 던지는 데 있어 예전 같지 못했지만 그가 던진 공은 나

름대로 멀리 날아 갔다. 동엽이를 불러 공을 던지고 받기를 했었다. 철민이가 던

진 공을 바로 받은 위치에서 동엽이가 던진 공은 철민에게 훨씬 못 미쳤다.

 

시합날이었다. 다른 이들 보다 일찍 철민은 운동장으로 갔었다. 동엽이는 철민

이 보다는 늦게 도착했으나 다른 이들 보다는 일찍이 온 편이었다.

"야, 준용이네 학교 애들은 왜 안오는거야."

"오겠지 뭐. 공이나 던져 봐라. 내가 포수해 줄게."

철민이는 포수로 동엽이를 앉혀 놓고 공 던지기를 했다. 철민의 던지는 폼은 선

수 같았다. 공 빠르기도 선수 같았다. 하지만 컨트롤 되는 공은 엉망이었다.

정오가 가까이 되자 상대 편 아이들이 하나, 둘 운동장으로 들어 서기 시작했다.

"저 새끼들 뭐냐."

동엽이가 포수를 보고 있다가 상대편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동엽이가 공 받는 것을 멈추고 철민에게 다가 왔다. 철민이도 이제 곧 있을 시합

을 위해 공 던지는 연습을 접을 요량이었다.

"야구하는데 여자들을 왜 데리고 오는거야."

"저기 여학생들이 쟤네들과 같이 오는 거냐?"

철민이는 동엽이가 주목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을 받았다.

"봐바. 서로 이야기 주고 받잖아. 남녀 공학이라고 확실히 다르긴 다르다."

"응원하러 오는가 보지 뭐. 신경 꺼 임마."

"지윤이도 오라고 그래라."

"니가 왜 자꾸 지윤이 얘기를 꺼내는 거야 임마."

"너 여자 친구 아니냐?"

"우리가 뭐 사귀었냐. 그냥 친구야 임마."

"그래도 예전만큼 강한 부인은 하지 않네."

"이 새끼가 진짜."

"하여간 여학생들이 저쪽만 응원해 봐. 얼마나 우리 편이 기 죽겠냐."

"그러냐? 그건 그렇겠다."

"지윤이 한 번 불러 봐."

"구경만 하려면 추울텐데."

"여자 친구 아니라면서 대게 챙기네."

"친구라도 챙겨야지."

"나는 니 친구 아닌갑다."

"쫌생이 새끼."

 

철민은 글러브를 벗어 던지고는 공중 전화를 찾아 잠시 운동장을 떠났다. 그리

고 돌아 왔을 때는 운동장에서 상대편 아이들도 자기 학교 아이들과 뒤엉켜 야

구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야구 시합이 시작되기도 전에 상대

편 학교의 여학생 세명이 응원 비슷하게 격려하는 말들을 던져 주는 모습도 보였

다.

철민의 모습을 보자 동엽이가 물었다.

"지윤이에게 연락 해 봤니?"

"응."

"뭐라 그래?"

"온다고 그러네. 아는 애들 같이 오라고 했는데 그냥 혼자 온데."

"그러냐. 지윤이는 혼자 와도 돼."

"그건 왜?"

"걔는 예쁘니까."

"지윤이가 예쁘냐?"

"걔가 어디가서라도 빠질 애냐."

"너 지윤이한테 관심 있냐?"

"너 관심 있다고 그러면 화낼려고 그러지?"

"아니야."

"그래 관심 있다."

"그냥 친구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마라."

철민이는 동엽이가 예전부터 지윤에게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때

문에 지윤에게 삐친 적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동엽으로 부터 직접 그 말을 들으

니까 괜히 기분이 좋지 못했다. 자신의 마음은 분명 현주를 생각하고 있었으나,

지윤이가 자신만의 친구라는 생각도 크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동엽은 철민

의 표정을 살피더니 피식 웃고만 말았다.

 

시합이 거의 시작 될 무렵 지윤이가 운동장에 모습을 드러 내었다. 철민이가 자

기 편 아이들에게 지윤이를 소개하자 아이들은 엄청 환영을 해 주었고, 지윤이

도 그 환대함에 환한 미소로 답을 했다.

시합이 개시 되었다. 철민이 편이 먼저 공격을 하게 되었다. 타순은 그냥 가위

바위 보로 정했다. 철민은 육번을 치게 되었다. 지윤이는 다소 추위를 느끼며 상

대편을 응원하는 여학생들의 기죽임을 막는 역할로 그냥 서 있었다. 타자가 들

어 설때 마다 "화이팅, 왕자 고등학교."라는 말을 꼭 해 주었다. 지윤은 야구에

대해 관심도 없을 뿐더러, 잘 알지도 못했다. 지윤이가 야구 경기를 본 것이라

야 국민학교 시절 체육대회 때 본 것이 고작이다. 지윤은 단지 철민이 때문에

이 운동장에 서 있는 것이다. 철민은 시합 관계로 지윤에게 관심을 두지 못했

다. 그래도 지윤은 싫은 표정 하지 않았다.

일회초는 계속 되었다. 힘만이 늘었을 뿐 야구를 거의 하지 않았던 지금 운동

장 내의 야구 선수들은 야구를 즐겨하는 초등학생 수준만 못했다. 철민이가 타

석에 들어 섰다.

"철민아 홀런 쳐."

철민이는 그렇게 말하는 지윤이가 참 귀엽게 보였다. 완전 동네 야구 수준인데

홈런이란게 나올리 만무했다. 홈런이란 걔념도 없었다. 뒷 펜스가 없었으니까.

그냥 친 공이 운좋게 멀리 나가 홈까지 들어 올 정도로 시간을 끌어 주면 그게

홈런이었다. 일회초에서 왕자 고등학교는 사점을 뽑았다. 일회초에서 가장 먼저

아웃 된 선수는 철민이었다.

 

철민이는 투수였다. 던지는 공이 빨랐기 때문에 동엽이가 적극 추천했었다. 상대

편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자 잠시 조용했던 상대 고등학교 여학생들이 열렬한 응

원을 보내기 시작했다. 왕자 고등학교 애들은 그 모습을 어이 없이 쳐다 보았

다. 배도 좀 아팠다.

"철민아 잘 던져!"

상대편 여학생들이 잠시 응원을 주춤 하는 사이 지윤이가 철민에게 힘을 주는 함

성을 질러 주었다. 철민은 지윤의 말데로 잘 던져 주었다. 한명을 포볼로 일루

에 진루 시켜 주었으나 나머지를 모두 삼진 시켰다.

이회초 공격에서 왕자 고등학교는 또 삼점을 뽑았으나 철민은 그냥 삼진 당해 버

렸다. 횟수가 흘러갔다. 점수차는 더 벌어졌다. 11대 0까지 벌어 졌다. 원래는

구회까지 경기를 지속하려고 했으나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았다. 양팀에

서 오회까지만 하기로 경기 도중 합의를 봤다. 지윤이는 그냥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던 탓에 추위로 몸을 떨었다. 오회초 왕자 고등학교의 공격 때 철민이가 지

윤에게 다가 가 보았다. 철민이가 보기에도 지윤이는 많이 떨고 있었다. 자기가

오라고 해서 온 것이기 때문에 철민은 지윤이가 안스럽기도 했고 지윤에게 미안

하기도 했다. 운동하느라 벗어 놓은 자신의 외투를 가져다 지윤에게 주었다.

"춥냐?"

"조금. 언제 끝나는 거니?"

"지겹냐?"

"그건 아니야. 재밌어."

"지겨우면서. 이거 내 외투니까 둘러써라."

"고마워."

"이번회만 지나면 끝이나. 그때까지만 참아라."

"그래. 근데 너, 치는 것은 참 못한다."

"잘할수 있어."

"그럼 홈런 쳐야지."

"진짜 홈런 쳐 볼까?"

"그래 니가 나 오라고 했으니까 홈런 치는거 보여 줘야지."

"그럼 널 위해서 홈런을 한 번 쳐 볼까. 하하. 곧 내가 칠 차례가 될거야."

"날 위해서? 그거 듣기 좋은 소리네. 잘 해 철민아."

"알았어. 내 홈런 쳐 줄게."

철민은 의기 양양하게 타석에 들어 섰다. 지윤이가 입김을 내 뿜으며 밝은 표정

으로 응원을 해 주었다. 철민은 보기 좋게 삼진 당했다. 철민은 쪽팔린 듯 머리

를 긁으며 타석을 벗어나 지윤에게로 다가 갔다.

"치, 홈런 쳐 준다고 했으면서."

"다음에 꼭 쳐 줄게."

"언제?"

"아마 다음에 꼭 기회가 있을거야."

"그래. 다음에 보게 되면 꼭 쳐 죠."

"알았어. 알았어."

 

마지막 상대편의 공격을 철민은 잘 막아냈다. 철민은 한점도 주지 않고 투수로

서 임무를 완수했다. 그리고 지윤에게 웃음을 던져 주었다. 자기 외투를 걸치고

추위에 떨면서도 자신을 위해 웃어주는 지윤을 보면서 철민은 처음으로 현주앞

에 서 있는 지윤을 발견했다. 잠시간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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