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한국의 103위 순교자(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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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jenya] 쪽지 캡슐

2000-09-17 ㅣ No.1994

 

23. 김누시아 루치아, 동정(金累時阿, 1818-1839), 참수

 

김누시아 루치아는 한강 근처에 살던 어느 양반 집에서 태어났다. 원래 교우였으므로 교리를 익혔고 수계생활도 하였는데, 재주와 용모가 뛰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일찍이 부친이 돌아가시고 성교회를 가르치신 어머니마저 잃고 나자, 얼마 아니되는 가산을 팔아 장례를 치르고, 함께 자수하고 순교한 이데레사의 집에 모두 6명의 여인들이 머물면서 덕을 쌓았다고 한다. 여기서 루치아는 동정을 지킬 결심을 아주 굳히게 되었다. 1839년 4월 11일, 루치아는 이데레사, 이막달레나, 김마르타와 함께 자수했던 것이다. 아직 나이 어린 김 루치아는 천진한 태도와 고문을 받는 중에도 한결같은 마음을 보임으로써 6명의 여인 중에 특히 포장의 마음을 끌었다. 판관과 루치아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대화가 있었다. "저는 훌륭한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참으로 그 교를 믿을 수 있느냐?" "예, 저는 진정으로 이 교를 믿습니다." "교를 버려라. 그러면 네 목숨을 살려주마," "저희들이 믿는 천주는 세상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는 분이시니 모든 피조물의 큰 임금이시고 아버지이신 분을 어찌 배반하겠습니까? 만 번 죽어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누구에게서 교를 배웠고 몇 살부터 믿었으며 공범은 몇이나 되느냐? 어째서 시집을 안갔느냐? 영혼은 무엇이냐? 죽기가 무섭지 않느냐?" "아홉 살 적부터 어머니 곁에서 천주교를 배웠습니다. 그러나 천주교에서는 어떤 사람을 막론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엄금하기 때문에 저와 같이 천주교를 믿는 사람은 하나도 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 겨우 20세 밖에 안되었으니 시집을 아직 가지 않은 것이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처녀의 몸으로 혼인 문제에 대하여 대답한다는 것은 온당치 못하니 여기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말아 주십시오. 또 영혼은 육체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신령한 실체입니다. 저도 죽기는 무섭습니다. 그러나 제가 살려면 천주를 배반하라고 하시니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죽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네가 말하는 영혼은 어디에 있단 말이냐?" "영혼은 육체 안에 있습니다." "너는 천주를 보았느냐?" "시골에 사는 백성들이 임금님을 뵈옵지 않고서 임금님이 계신 것을 믿을 수 없습니까?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을 보고 저는 그것들을 창조하신 대왕과 가장 높으신 아버지를 믿는 것입니다." "오, 네 말이 옳기는 하다. 그러나 네가 상감과 대신들보다 많이 안단 말이냐?" "저희들의 종교는 하도 아름답고 참된 것이어서 상감과 대신들이 연구하려 하신다면 기꺼이 믿게 되실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포장이 처음에 부드러운 말로, 다음에는 위협하는 자세로 그녀의 신앙심을 꺾어 보려고 오랫동안 노력하였으나, 창피만 당하였으므로 다시 모든 온갖 고문을 시켰다고 한다. 이윽고 그녀는 사형 선고를 받다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가지 천주의 은혜로 형벌과 고통 가운데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결국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천주께서 언제 나를 부르실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위하여 천주께 기도하고 될 수 있는대로 빨리 나의 뒤를 따르시오. 나는 다만 천주의 부르심을 기다릴 뿐입니다." 1839년 7월 20일, 루치아는 다른 교우들과 함께 서소문 밖에 끌려나가 참수 당하여 순교하니, 이때 그녀의 나이는 22세였다.

 

 

 

24. 원귀임 마리아, 동정(元貴任 1818-1839), 참수

 

원귀임 마리아는 고양군 용대리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그러나 아홉 살 때부터는 서울에 사는 열심한 교우이며 고모인 원루치아 집에 기거하면서 교리를 배웠다. 마리아는 천성이 순하고 선량하니 그녀의 고모는 조카를 자랑하였고, 16세에 동정 허원을 하고는 머리를 얹어서 시집간 여자의 행세를 하고 있었으며, 언제나 나이보다 점잖은 모범과 한결같은 마음씨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1839년 2월, 포교들이 집으로 몰려왔을 때에 다행히 몸을 피할 수 있었지만, 마을 사람의 밀고로 붙잡히게 되었다. 처음 한 동안은 당황하여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으나, 이 세상에서 주님의 뜻이 아닌 일을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에 미치자, 마음의 평온을 되찾게 된 것이다. 그녀가 문초 당할 때마다 거의 매번 고문을 당하였지만, 거의 항상 조용하고 의젓하게 답변하였던 것이다. "네가 천주교인이냐?"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저는 천주교인입니다." "배교해라. 그러면 살려주마." "저는 천주를 공경하고 제 영혼을 구하고자 합니다. 제 결심은 단단하여서 죽어야만 한다면 죽겠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 영혼을 구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배교하면 영혼을 잃게 됩니다." 결국 마리아는 다른 교우들과 마찬가지로 옥중에서 허기와 갈증으로 모진 고생을 했고, 또 열병에 걸리는 등 수많은 고생을 하다가, 마침내 1839년 7월 20일에 다른 동료들과 함께 서소문 밖으로 끌려나가 순교하니, 이때 그녀의 나이는 22세였다.

 

 

 

25. 박후재 요한, 상인(朴厚載 1799-1839), 참수

 

박후재 요한은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는데, 1801년에 순교한 박라우렌시오의 아들이다. 친척이 없어 외로웠던 그는 부친이 순교한 이후에는 서울로 올라와서 어머니와 함께 물장사도 하고 또 짚신장사를 해서 생계를 이어갔다. 비록 가난한 생활을 하였으나 그는 마음이 대단히 곧았을 뿐만 아니라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신자의 모든 본분을 열심히 지킴으로써 사람들의 눈을 끌었다. 그러므로 그의 아내는 후일 가격적인 증언을 하였다. "그이는 평상시에는 대단한 열심으로 신자의 본분을 지켰고, 매우 부지런히 일을 하였으며, 내 영혼을 구하려면 치명을 해야한다고 할 정도로 순교에 대한 열망에 차 있었다" 또한 그는 주님을 사랑하고 극기하는 한 방편으로 짚신을 만들 때 쓰는 방망이로 정강이를 쳤으며,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육신의 곤궁을 어떻게 참아야 하는가를 성인 이야기를 통해 아내에게도 권고하였다는 것이다. 기해년의 박해가 일어나자, 박요한은 아내에게 "교우들이 많이 붙잡혔으니 더욱더 조심합시다"하고 말하고, 질그릇을 40푼에 팔아 2푼은 아내에게 주어 그날 저녁으로 아내를 아주머니 집으로 먼저 보냈다. 아주머니 집으로 간 부인은 이튿날이 되도록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무슨 일을 당하지나 않았나 하는 생각에서 사촌 오빠에게 청하여 탐지해 보니 전날 밤 포졸들이 박요한을 이미 잡아가고 없었다고 한다. 옥중에서 그는 수차례의 심문과 고문을 받았다. "임금님이 이 교를 허락하시지 않는데 너는 임금님의 명령을 어기고 있다"고 재판관이 말하니, 그는 "천주는 저의 창조주이시고, 당신을 사랑하시기를 명하십니다. 저는 임금님께 보다도 천주께 더 복종할 의무가 있습니다. 천주교는 저에게 있어서 목숨보다 더 귀중한 것입니다. 천주님을 배반하느니 보다 차라리 저의 목숨을 버리겠습니다"하고 대답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공범자를 대라"는 포장의 말에는 "남을 해하는 일을 하지 못하겠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이리하여 그는 사형선고를 받고,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을 받았는데, 희광이가 그의 목을 여러 번 내리쳤으나 완전히 베지 못하자 칼을 돌에 대고 오랫동안 가는 동안에 그의 몸은 무섭게 경령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리하여 희광이가 다시 그의 목을 쳐서 땅에 떨어뜨리니, 그의 순교 열망은 성취되었던 것이다. 이때 그의 나이는 41세였던 것이다.

 

 

 

26. 박큰아기 마리아, 부인(朴大阿只, 1786-1839), 참수

 

박큰아기 마리아는 부유한 집안의 딸로서, 박희순 루치아의 언니이다. 박 마리아는 동생인 루치아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가 외교인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히자 조카 집에서 동생과 함께 지내던 중, 4월 15일에 잡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행적은 기록상으로 별로 나타나지 않으나, 동생과 함께 매질과 주리형을 받고,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음으로써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녀는 국법에 따라 동생과 같은 날 순교를 하지 못하고, 동생이 순교한  후 9월 3일에 54세의 나이로 서소문 밖에서 참수치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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