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돌아보면 모두가 그리움인 것을...(부끄러운 고백: 제1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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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준 [bopark] 쪽지 캡슐

2005-06-09 ㅣ No.5510

얼마 전,

최락희 자매님의 잔잔한 고백의 글에 힘얻어

용감하게(?) 중계동성당에 다닌 14년을 돌아보며

부끄러운 고백을 몇회에 걸쳐 연재해 보렵니다.

 

천학비재한 사람이라 글 솜씨가 없더라도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보아 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 봅니다.

 

내자는 요즈음의 저를 보고 "돌아온 탕자"에 비유를 하곤 하지요.
성격이 급한데다가 일을 잘 저지르고(?) 뒷 수습은 못하니,

그동안 살아오면서 오죽이나 노심초사하며 살았을까?

생각해보면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구로3동 성당을 다니다가 중계동으로 이사온 지,

어언14년의 세월이 흐른 것을 보면

세월이 흐르는 물 같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1991년 4월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고,

중계동 성당으로 교적을 옮겼지만

성당이라고 가보니 빌딩(장우빌딩)에 입주해 있었고,

아는 얼굴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아무도 없는 삭막한 곳이었지요.

나중에 하라프라자로 이사했지만

성당이 빌딩에 입주해 있는 것은 처음인지라

익숙치 못했다는 것이,

더 어울리는 말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후에 남성총구역장을 할 때,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오셔서,

중계동성당의 자랑거리를 말씀하라고 하시기에 ,

 

제가 대표로 나서서

'우리 중계동성당은 멀티성당입니다.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며,

일층과 이층은 상가가 있고,

삼층은 성당이고,

사층은 노래방과 극장이 있으며,

오층은 심신의 피로를 씻으라고 찜질방까지 갖추어져 있으니,

 

세상에서 이토록 골고루 두루 갖춰진 곳은

아마도 중계동성당 밖에 없을 것입니다.'라는 저의 말에

추기경님께서도  파안대소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동네라고는

성냥갑처럼 삐죽삐죽 솟아오른 아파트만 혼재하는 곳이고 보니,

도미노 이론만 머리에 떠오르고

도무지 정을 붙일 곳이 없는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막막한 심정으로

주일미사만 참례하는 발바닥(?) 신자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지요.

 

노원성당에서 분당된 지 얼마되지 않고 보니,

모든 것이 어설펐고,

어려운 와중에도 초대 주임신부님이셨던

허중식 그레고리오 신부님께서는

노심초사 열심이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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