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동성당 게시판

★참고★ 나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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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호 [austin] 쪽지 캡슐

2001-09-08 ㅣ No.7431

 

나훔서

 

1. 시대 및 인물

나훔은 기원전 610년경에 활동하던 예언자이다. 그는 기원전 721년에 사마리아를 함락시켰고 두 차례나 많은 이스라엘을 포로로 연행해 갔던 아시리아의 멸망을 예고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시리아는 황폐한 사마리아에 이방민족들을 이주시켰는데 이 때의 주민들이 성서에서 사마리아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시조가 된다.

세력이 막강했던 아시리아는 신흥제국으로 강대해진 바빌론 제국에 의해 여지없이 파멸된다. 나훔서는 이스라엘과 인근의 약소국가들을 끊임없이 압박해온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의 멸망을 기뻐하는 환호의 외침이다. 나훔의 강한 애국심이 나타난 이 기록은 하느님의 승리와 지배를 찬미하는 노래이다.

엘코스 출신의 예언자 나훔에 관해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유다의 예언자라는 사실뿐이다. 이것도 그의 유다에 관한 비상한 관심 - 구언의 선포와 외적의 침략이 없으리라는 보장 - 으로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이다. 또 니느웨를 생생히 묘사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기원전 721년 이후 아시리아 가운데 살던 이스라엘 유랑민의 한 후예로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그는 니느웨의 최후를 목격한 사람일 것이다.

정확한 저술시기도 단정하기 어렵다. 나훔서의 각 장이 실제로 기록된 곳은 에집트의 디브스 성읍의 어느 곳으로 짐작된다. 이에 대한 비교적 분명한 근거를 3,8~10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 기록된 시기는 기원전 612년 8월 니느웨가 몰락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일 것이다. 나훔서의 저술이 니느웨의 몰락 이후라면 그 후 곧 근동세계를 휩쓴 승리의 흥분 가운데서 기록했을 것이다. 아시리아의 왕 앗수르바니팔이 죽은 후에 기록하였을 것인데 앗수르바니팔의 통치는 에집트의 침입 때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변방에 산재해 있는 여러 백성과 더불어 끊임없는 전운의 연막 속에서 그 명맥을 유지해 왔었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들은 허약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며 바빌론과 메데와 시틴의 동맹은 기원전 616년에서 612년의 4년동안 니느웨와 그 전초기지의 요새지들을 약화시키는데 성공적인 효과를 거두었다.

 

2. 저작문제

나훔서의 중심부는 대체로 2장과 3장에 그려져 있는 긴 송시(頌詩)인데, 이는 전쟁에 의해 무너지는 니느웨 성의 몰락에 붙이는 시다. 니느웨에 대한 승리의 이 노래는 고대 히브리 애가의 특이한 리듬으로 기술되어 있는데 몰락한 적에 대한 조롱조의 노래로 쓰여졌다. 그러나 그 분위기는 히브리 공동체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도덕적 악의 시정과 결부된 예언적 서술법과는 다르다.

나훔서의 대부분은 니느웨가 몰락하기 직전 그 도시가 간직하고 잇던 최후의 사회상을 그린 것이다. 나훔은 아주 세밀하게 그 현실을 묘사하고 있으며, 그 도시의 운명을 피하려고 몸부림치는 시민들에 대해서 강한 도덕적인 입장을 휘하고 있다(3,5~17). 나훔서는 애가와 조롱조의 노래를 그 특색으로 하고 있지만 그 언어의 구사법은 간결하며 그 운율은 짧고 표현은 생생한 면을 갖추고 있다.

 

3. 내용

오늘날 성서의 가르침의 관점에서 보면 나훔서는 어려운 문제를 제기해 주고 있다. 나훔서가 니느웨가 임한 재난을 기뻐하며 승리감에 사로잡혀 기록됐다면, 이것은 ’원수를 사랑하며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라’(마태 5,44)는 말씀과는 대조적이다.

나훔서가 성서에 포함된 데 대한 설명은 니느웨의 몰락을 정당하다고 보는 히브리적 의미에서 찾을 수 있다. 예언자가 자신의 언어로 니느웨의 몰락의 번민상을 그리는 가운데 거대한 적의 몰락의 정당성을 시적으로 읊은 것은, 그것을 하느님의 지배를 입증하는 사건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나훔서를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하느님의 정의와 그분은 목적성취를 위하여 절대적인 능력을 행사하신다는 것이다.

나훔서는 질투하는 하느님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이 질투의 성격은 야훼의 권위를 비웃거나, 혹은 자기 이웃에게 압박하는 모든 자들에게 대적하여 행동하도록 한다. 그러나 이 질투는 자기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는 세상의 압제로부터의 구출과 해방을 약속하고 있다.

나훔서는 오늘날 현대인을 향해서도 하느님의 요청을 진지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긴박하게 들려주고 있다. 이것은 적당히 얼버무리는 미지근한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면 삶이요 거부하면 죽음인 것이다. 야훼를 거부하는 자의 종말을 장엄하고도 두렵게 보여주면서 우리들 각자에게 단호한 결단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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