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창동성당 게시판

1월26일[성화묵상]성디모테오,디도주교축일♬Salve Festa 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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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3-01-27 ㅣ No.914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c. 1669  Oil on canvas, 262 x 206 cm  The Hermitage, St. Petersburg

 

   회개의 때『돌아온 탕자』-  렘브란트

 

인간의 사랑과 포용력을 통해 깊은 종교적 체험을 표현한 렘브란트의 걸작품이다. 이 그림의 주제는 한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유산을 가지고 객지로 떠돌며 사창가에서 모두 탕진하고 돼지 먹이로 끼니 끼니를 때우다 고향에 돌아와 아버지의 용서와 환대를 받는다는 루가복음 15장의 이야기이다.

 

렘브란트는 아버지가 돌아온 탕자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워 주고, 발에는 새 신을 신기고, 살찐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고, 춤과 풍류를 즐기는 성서의 장면을 택하지 않았다. 그 대신 거지같이 해진 옷에 죄수처럼 머리를 깎고 다 떨어지진 신을 한 쪽만 신은 채 무릎꿇고 사죄하는 아들의 어깨에 늙은 아버지가 두 손을 부드럽게 얹고 용서하는 극적인 순간을 묘사하였다. 여기서 렘브란트는 심리적 통찰과 인간의 고통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으로 성서의 의미를 해석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성서에 묘사된 입을 맞추는 첫 만남이 아니라 다음의 포옹과 용서의 감동적인 순간을 택했다.

 

아버지는 자식으로 인한 지난날의 괴롭고 복잡했던 감정을 억제하려는 듯 지그시 눈을 감고 사랑의 손길로 아들의 등을 어루만진다. 용서와 사랑이 가득한 아버지의 얼굴은 깊은 품위와 함께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의 얼굴에는 한없는 너그러움과 거룩하기까지 한 성자의 모습이 깃들어 있다. 한편 돌아온 탕자는 너무 왜소하고 초라하다.

 

아버지와 아들의 인간상 속에서 작가는 예수가 죄 많은 인간에게 베푸는 속죄와 구원의 역사를 체험하게 한다. 아버지의 흰 수염과 핏기없는 자비의 굳은 손, 그리고 그의 구부린 몸은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장면을 실감케한다.

 

렘브란트는 색을 통해서 아버지의 어깨에 두른 긴 홍포와 아들의 누더기 옷, 아버지의 긴 백발과 아들의 아무렇게나 쥐어뜯긴 것 같은 머리를 너무나도 강하게 대조시켰다.

사랑에 충만한 늙은 아버지의 인자한 얼굴과 흰 수염, 그리고 자비로운 손길을 밝은 빛으로 비추어 강조하고 있다. 옆 계단 위에서 값진 옷과 화려한 모자를 쓰고 언짢은 표정으로 이들을 내려다보는 냉담한 형제들은 어둡게 묘사되어 있다. 빛은 사랑과 구원을, 어둠은 시기와 무정(無情)과 죄를 상징함을 보여 주고 있다.

 

 

◎알렐루야.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으니,너희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축일 : 1월 26일

성 디모테오 주교 순교자

St. Timotheus, E. et M

St. Timothy 97년경

 

주 예수 그리스도께 특별한 성소를 받은 대 사도 성 바오로는 필립비 인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 "주 예수께서 허락하신다면 나는 디모테오를 여러분에게 어서 보내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편에 여러분의 소식을 들으면 내 마음도 기쁘겠습니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여러분의 일을 진심으로 걱정햇 주는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습니다. 모두들 자기 일만 돌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일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디모테오는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흠잡을 데 없는 사람으로 자식이 아버지를 섬기듯 나를 섬기면서 복음을 위하여 함께 일해 왔습니다"(필립 2, 19-22)하고 대단히 디모테오를 칭찬하고 있다.

 

실제로 성 바오로의 편지, 그 중에서도 디모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디모테오를 사랑하고 신뢰하고 있었던가를 충분히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디모테오에게 보낸 바오로의 두 편지는 65년경에 마체도니아에서 썼을 것이다

 

디모테오는 구세주께서 태어나시기 바로 전에 소아시아의 남쪽에 있는 리스트라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교인이었지만 어머니 오이니게와 숙모 로이스는 경건한 유다교 신자였으므로, 디모테오도 어려서부터 천주 십계와 모세의 율법을 배웠고 덕행을 존중함을 알게 되었다.

 

그 동안 어머니와 숙모(叔母)는 유다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여러가지 기적과 고난과 부활 등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리스도교를 믿게 되었다.

 

그리고 45, 6년경 성 바오로가 첫 번째 전도 여행 도중 리스트라 도시를 방문했을 때, 그는 그녀의 집에 머무르게 되어 친절한 접대를 받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때 디모테오는 친히 이 대 사도에게서 세례를 받게 되었으며 존래 성격이 온순한 그는 바오로에게 사랑을 받게 되고 그도 역시 바오로를 친부모와 같이 사모하게 되어 마침내 그의 두 번째 전도 여행에는 동반(同伴)까지 하고, 세 번째 전도 여행 때에도 선구자로서 그리스에 먼저 들어가서 은사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예루살렘까지 같이 가게 되었다.

 

 

예루살렘의 광신적인 유다교인들은 성 바오로를 ’율법의 파괴자’라고 미워하며 어느 날 그를 체포해 죽이려고 했으므로, 그이 무죄함을 잘 알고 있었던 로마 총독 펠릭스는 사도를 원수들의 손에서 구하기는 했으나, 유다인들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를 2년간이나 감옥에 가두었다. 그러므로 디모테오는 할 수 없이 성 바오로를 떠나게 되었지만, 스승이 다시 자유의 몸이 되자 그를 따라서 에페소로 돌아왔다.

 

58 년, 디모테오와 에라스토는 마체도니아로 파견되었으며, 그 후 코린토로 가서 바오로의 가르침을 명심하라고 권고를 하였다. 바오로가 체사레아에서 투옥되었고 또 로마로 이감되었을 때, 디모테오는 같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 동한 한가지 기묘한 일이 생겼다. 그것은 에페소 교회의 신자로 예언을 할 수 있는 은혜를 받고 있엇던 몇 사람이, 일제히 동시에 디모테오가 주교가 된다는 계시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성 바오로는 그 지방의 장로들과 같이 디모테오의 머리위에 안수(按手)하고, 그를 그 교회의 초대 주교로 임명했다.

 

이것은 확실히 적재 적소(適材適所)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 에페소와 같이 중요하고 성대한 교회를 맡을 수 있었던 사람은 다년간 성 바오로를 따라다니며 친히 그의 지도를 받은 독실하고도 성덕이 높은 디모테오를 제외하고는 다른 데서는 도저히 만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성 바오로가 "그러나 그대는 나의 가르침과 생활, 나의 생활 목표와 믿음, 나의 참을성과 사랑, 나의 인내를 본받아 살아왔습니다"(2디모 3, 10)라고 격찬한 사실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디모테오는 이 때 사도에게 이와 같은 찬사를 받을 만큼 그이 마음이 정직하고 선량하고, 또 어떠한 고난 박해에도 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스스로 자진하여 엄한 고행을 해나갔다.

 

"이제는 물만 마시지 말고 위장을 위해서나 자주 앓는 그대의 병을 위해서 포도주를 좀 마시도록 하시오"(1디모 5, 23)하고 성 바오로는 그의 고신극기의 과도함을 충고했다.

 

살아 있을 때에 성 바오로를 충실히 따른 성 디모테오는 죽을 때에도 은사와 같이 장렬한 순교를 했다. 그것은 에페소 시의 이교도들이 디아나라는 여신(女神)에게 대한 제사에 광분(狂奔)한 때였다.(카타고리아 이교 축제) 디모테오가 그 여신은 우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지적하자, 발광하던 군중은 앞뜰에 그를 체포해놓고 곤봉으로 사정없이 때려 그를 참살했다고 한다.

 

 

 

 

축일 : 1월 26일

성 디도(띠또) 주교

St.Titus

크레타 1세기경

 

 

디도(1세기 경) 주교는 성 바오로에 의해 개종한 후, 그의 비서가 되어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했고, 그후 고린토에 파견되어 그 교회의 잘못을 바로 잡은 다음,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헌금을 모금한 바 있다. 그는 바오로에 의하여 크레타 주교로 축성되었으며, 달마시아 교회를 방문한 뒤 쿠레타로 돌아와서 운명한듯 보인다.  

 

그는 법률가 제나가 쓴 "디도 행전"에 잘 묘사되어 있다.그가 사도로부터 받은 편지 내용은 영적인 권고를 비롯하여 착한 목자가 지녀야 할 자질 및 신도들에게도 엄격한 규율이 필요하다는 것 등이다

 

그가 바오로부터 받은 편지의 주요 내용은  현재 성경안에 있는 띠또서 이며 이 서간에는 주교의 임무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충실한 주교로서의 삶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다. 영적인 권고를 비롯하여 크레타 신자들에게도 엄격한 규율이 필요하다는 것 등이다  띠또성인의 언행일치 강론과 행동은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었고 주교는 많은 사람들을 선으로 인도했다.

 

 

성 디도는 성 디모테오(1월26일)와 같이 성 바오로 사도에 의해 개종한 후 가장 사랑받던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엇다. 그는 모든일에 지혜로웠고 그의 활약은 참으로 뛰어낫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성 바오로의 서간에 기록되어 있는 것 외에 알려진 것이 없지만 그것은 극히 중요한 자료가 된다.

 

성 디도는 그리스인인데 그의 출생지는 명백치 않다. 성서에 그에 대한 기사는 안티오키아에 있을때부터 시작했다. 그는 앞서 말한 대로 성 바오로의 감화로 개종했다. 바오로 사도가 그를 "공통된 신앙에서의 난의 친아들"이라고 부른 점으로 보더라도 짐작할 수 있다.

 

51년 성 바오로는 디도와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는데, 그때 거기서는 중대한 문제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그 당시 그리스도교 신자들 중에는 이전 유다교를 믿던 사람도 적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그리스도교에 개종한 후도 구약의 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이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많이 있었으므로 그들도 구약의 율법을 지켜야 되느냐 안 되느냐가 큰 문제가 되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는 지킬 필요가 없다는 편으로서 지금까지 이교도 출신의 신자들에게도 그와 같이 가르쳐 왔는데 이제 와서 여러 의견이 나왓지만 성 베드로는 마침내 교황의 무류지권(無謬之權)으로 개종자는 유다의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단정했다. 그 결과는 디도에게도 중요했다. 그 이유는 그도 전에는 이교도였던 연고이다.

 

디도는 그 후 다시 안티오키아에 돌아가서 성 바오로가 두 번째의 전도 여행을 떠나 프리기아 및 갈라디아를 지나 아테네, 고린토의 방면에 갔을동안 그곳에 체류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는 뜻으로 크리스찬이라고 칭한 것은 아티오키아의 신자가 처음이었다. 아티오키아의 교회는 성 바오로가 안 계시는 동안 신앙의 기초를 견고히 하고 신자의 수를 증가시켰다. 이것은 디도의 활동이 절대적 역할을 한 셈이다. 그 이유는 성 바오로는 그러한 결과를 보고 경건하고 열심히, 또한 지혜로운 자에게만 맡길 수 있는 고린토 교회의 주교라는 직분을 그에게 위탁했기 때문이다.

 

고린토라는 곳은 성 바오로가 손수 전교하고 교회를 설립한 곳이었다. 그러나 그는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지 못했다. 그러므로 고린토 교회의 신자들은 신앙으로 뭉치지 못하고 가장 수치스러운 죄까지 공공연하게 범했다.

 

성 바오로는 이러한 슬픈소식을 듣고 스스로 그곳으로 가려고 생각했지만 그때는 마침 두번 째의 전도여행을 마치고 세 번째의 전도 여행의 준비중에 있었으므로 도저히 여가가 없었으므로 다음은 그이 제자인 디모테오와 에라스토를 파견했지만 그들의 활동도 그 교회를 구출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고린토에서 약간 안심할 만한 보고가 들어왔다. 그러므로 성 바오로는 될 수 있으면 후에 자신이 가 보려고 생각했지만 즉각 어떤 인망 높은 이를 보낼 필요를 느끼고 디도를 선택해 보내기로 했다.

 

처음에 디도는 책임의 중대함을 생각하고 주저했지만, 성 바오로가 이웃을 사랑하는 덕을 가르쳐 예루살렘이나 아카이아에 있어서 곤란을 당하고 있는 형제들을 위해 기부를 모을 것을 의뢰했으므로 그는 마침내 승낙을 하고 즉시 동반자를 데리고 출발했다. 성 바오로는 트로아스에서 그와 다시 만나려고 했으나 그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마케도니아에까지 가서 디도를 만나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엇다. 디도는 모든 일을 현명히 처리한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종종 같이 여행하며 크레타 섬에도 갔다. 그리고 그곳에 몇 군데의 교회를 세우고 디도가 주교로서 머물렀다. 성 바오로는 안심하고 그 지방을 떠났지만, 결코 사랑하는 제자를 잊지 않고 2년 후에 디도에게 한 통의 서간을 보냈다. 현재의 성서 안에 있는 디도서가 바로 이 서간이다. 그 서간 중에서 성 바오로는 주교로서의 생활 및 임무에 대해서 훈계하고 지도했으며 한 번 더 사랑하는 제자를 만나고 싶어서 그를 키프로스로 불러 거기서 한 겨울을 같이 지냈다.

 

다음해 그는 디도를 달마디아로 파견하고 전교하도록 했으나 그것도 잠깐 동안이엇고 오래지 않아 디도는 크레타로 다시 돌아와 그 섬 및 부근의 작은 섬에서 널리 복음을 전하는 것에 놀겨했다. 실로 그느사도 성 바오로의 제자로서의 적합한 경건하고, 열심하며, 영리함으로 유익한 인물이었고, 또한 극히 희생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의 강론과 깨끗한 행동은 얼마나 사람들을 선으로 인도했는 지 모른다.

그가 승천한 때는 94세라는 고령이었다.

 

♬9.Canto Gregoriano-Salve Festa 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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