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한 모순 속에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성서를 이렇듯 내 중심적으로 읽을 수 있을까 싶다. 난 지금까지 어떤 식으로 성서를 읽고 묵상하고 이해하는지 별로 고민해 보지 않았다. 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종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전부 다 옳다. 주인은 종의 입장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종은 주인이 원하는 것을 해주면 된다. 그것이 종과 주인의 관계이다. 종의 마음이나 처지야 가끔씩만 알아주면 된다. 그래도 종은 아마 감지덕지일 것이다. 내가 주인일 때 주인의 입장으로 오늘 복음을 보면 모든 게 구구절절 다 옳다. ‘암, 그래야지.’ 그런데 종의 입장에서 보면 주인이 너무 팍팍하다. 도무지 요령을 부릴 수 없게 하니 두려운 존재일 뿐이다. 이 주인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할 것만 같다. 그런데 어찌하나. 누가 강제로 시킨 적도 없는데 자진해서 주님을 모시겠다고 나섰다. 물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게 문제다. 종이 억울해하는 것은 주인이 종의 마음을 몰라줘서가 아니다. 종이 주인처럼 살겠다는 것인데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주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가끔씩밖에 생각하지 않는데 주인이 좋다. 혹사시키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가끔 제가 주인인 줄 안다. 그래서 주인인 양 자기가 하자는 대로 주인이 해주지 않는다고 투덜거린다. 내가 주인이라면 어림도 없다. 당장 내쫓아 버린다. 입장이 바뀌고 보니 내가 주인인지 종인지, 주인이 되고 싶은 건지, 주인은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종은 종대로, 주인은 주인대로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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