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동성당 게시판

* 나막신에 우산 한 자루(8/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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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국길 [fcan] 쪽지 캡슐

2004-08-11 ㅣ No.3506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2004-08-11)

독서 : 에제 9,1 - 7 ; 10,18 - 22 또는 필립 3,8 - 14 복음 : 마태 18,15 - 20 또는 마태 19,27 - 29

* 나막신에 우산 한 자루 *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형제가 너에게 잘못한 일이 있거든 단둘이 만나서 그의 잘못을 타일러 주어라. 그가 말을 들으면 너는 형제 하나를 얻는 셈이다. 그러나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라. 그리하여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을 들어 확정하라’는 말씀대로 모든 사실을 밝혀라. 그래도 그들의 말을 듣지 않거든 교회에 알리고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거든 그를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내가 다시 말한다. 너희 중의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든 다 들어주실 것이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마태 18,15­ - 20)

◆“인생살이도 그러하겠지만 더구나 징역살이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단출한 차림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이번 전방 때는 버려도 아까울 것 하나 없는 자질구레한 짐들로 하여 상당히 무거운 이삿짐(?)을 날라야 했습니다.
입방 시간에 쫓기며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고 걸어가면서 나는 나를 짓누르는 또 한 덩어리의 육중한 생각을 짐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일은 ‘먼길’을 떠날 터이니 옷 한 벌과 지팡이를 채비해 두도록 동자더러 이른 어느 노승이 이튿날 새벽 지팡이 하나 사립 앞에 짚고 풀발 선 옷자락으로 꼿꼿이 선 채 숨을 거두었더라는 그 고결한 임종의 자태가 줄곧 나를 책망하였습니다.
나막신에 우산 한 자루로 바람결에 머리 빗고 빗물로 머리 감던 옛 사람들의 미련 없는 속탈(俗脫)은 감히 시늉할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10여년 징역을 살고도 아직 빈 몸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있으면 없는 것보다 편리한 것도 사실이지만 완물상지(玩物喪志), 가지면 가진 것에 뜻을 앗기며, 물건은 방만 차지함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마음속에도 자리를 틀고 앉아 창의(創意)를 잠식하기도 합니다.
이기(利器)를 생산한다기보다 ‘필요’ 그 자체를 무한정 생산해 내고 있는 현실을 살면서 오연(傲然)히 자기를 다스려 나가기도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릇은 그 속이 빔[虛]으로써 쓰임이 되고 넉넉함은 빈 몸에 고이는 이치를 배워 스스로를 당당히 간수하지 않는 한, 척박한 땅에서 키우는 모든 뜻이 껍데기만 남을 뿐임이 확실합니다.”(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무슨 일이든지 다 들어주실 것이라는 말씀을 묵상한다. 빈 몸에 고이는 이치를 배워 스스로 당당히 간수하지 않는 한 껍데기만 남을 것이 분명하다고 한 신영복 선생의 글에서 마음을 모아 구해야 할 것을 배운다. 나에게서 나오지 않은 것을 가지고 내 것인 양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백민호(서울대교구 잠원동 천주교회)



 

- 사랑이 그리움뿐이라면 -

사랑이 그리움뿐이라면
시작도 아니하겠습니다.

오랜 기다림은 차라리 통곡입니다.
일생토록 보고 싶다는 말보다는
지금이라도 달려와
웃음으로서 서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얀 백지의 글보다는
당신이 보고 있으면
햇살처럼 가슴에 비춰옵니다.

사랑도 싹이 나 자라고
꽃 피어 열매 맺는 사과나무처럼
계절따라 느끼며 사는 행복뿐인 줄 알았습니다.

사랑에 이별이 있었다면
시작도 아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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