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의 기이편에 나오는 `도화녀 비형랑`의 이야기다. 신라 제25대 진지왕 때 경주 사량부에 참으로 예쁜 여자가 살았다. 복사꽃 피어나 겨우내 얼었던 잿빛 대지를 봄빛으로 물들이듯 뭇사람 가운데 홀로 피어나고 이 산과 저 들의 온갖 짐승들을 취하게 할 만큼 향내 그윽해 이름조차 복사꽃 아씨(桃花娘)였다. 복사꽃 아씨, 그 얼굴이 얼마나 눈부셨던지 진지왕은 며칠 동안 상사병을 앓다 도화랑을 궁중으로 불러들여 궁중의 온갖 향락으로 유혹하기도 하고 윽박지르는데도 복사꽃 아씨는 “천자의 위엄으로도 내 지조를 빼앗을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답한다. 황망해진 왕이 죽이겠노라고 협박을 해도 남편 있는 여자가 어찌 다른 남정네를 섬기겠느냐며 단호히 거절한다. 오로지 복사꽃 아씨만을 그리다 왕은 죽고 어언 3년이 지나 아씨 남편도 저 세상으로 떠났다. 장사한 지 열흘이 지나 아씨 방에 그 왕이 옛 모습 그대로 도화랑을 유혹하기 위하여 황금관에 황금 목걸이에 황금 신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금빛 찬란하게 치장하고 나타나 사랑을 애원하였다. 오로지 한 여인의 사랑만을 애걸하는 사람으로 진지왕은 거기 그렇게 서 있었다. 죽음으로 사랑을 이룬 진지왕은 홀연히 사라지고 아씨 몸에는 이내 사랑의 씨앗이 자라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그날 복숭아나무에 벼락이 치고 천둥이 울리듯 그렇게 하늘과 땅이 진동한 끝에 비형(鼻荊)이란 아이가 태어났다. 비형은 귀신도 부리는 신묘한 재주가 있어 해마다 홍수로 사람들이 죽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신원사 북쪽 개천에 다리를 놓기도 하고 국정도 살피고 나쁜 귀신도 물리치면서 큰아버지의 아들 진평왕을 돕고 노래를 부르며 그렇게 이승과 저승을 넘어 사촌과 신라 사람들을 도왔다고 한다. 이때부터 비형의 얼굴을 문에 붙여서 귀신을 쫓는 풍속이 전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