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동성당 게시판
내 맘대로 꽃도 못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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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어제는 백합을 두 대(꽃가게 아줌마가는 '대'라는 표현을 쓴다.) 사서 집으로 향했다.
레지오 주회때 꽃을 얻어가던 날,
내방의 작은 화장대를 정리하고 꽃과 초를 어우러지게 장식한 이후로 꽃이 없으면 허전하다.
(꽃은 그저 저 생긴대로 필 뿐인데 보는 사람들이 호들갑이다,라는 차가운 귀절도 생각나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소국을 반단만 샀는데 삼천원으로 일주일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어서 무척 만족했다.
물론 지난주에 꽃을 사가지고 들어갔을 때도 기대에 찬 표정으로 아빠가 물으셨다.
'어떤 X이 주더냐?'고...
난 그냥 마음이 심란도하여 사치를 부렸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일주일 후인 어제 백합을 들고 들어가니 여지없이 물으셨다.
'이제 사실대로 말하라'고...
난 물론 아빠가 반쯤은 나를 놀리려는 의도에서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에
웃어 넘겼다.
근데 문제는 거드시는 엄마였다.
'꽃 한다발 사주는 X이 없으니 아예 포기하고 니가 샀구나?' 하셨다.
와~ 이건 배신이다.
서른이 되기까지 삼년쯤 한꺼번에 나이를 먹은 것도 아닌데 친엄마 맞는지조차 의심이 가도록
느긋하시던 엄마까지 내 마음에 비수를 던지다니...
갑자기 설움이 밀려왔다.
그러지 않아도 내일 있을 MT 얘기를 들을 때부터 이 절호의 기회에
성당에는 가족과 일이 있어 불참한다고 하고 집에는 MT 간다고 하고 손 붙잡고 도망갈 애인이
없다는 사실에 씁쓸했는데...(이런거 하기에는 너무 늦었나? ^^;)
난 어제 '염장 지른다'는 표현이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 이해하시라.
위의 X는 물론 '놈'을 뜻하는데, 우리 부모님도 한고상 하시지만 딸만 있는 부모님께
다른 남자는 무조건 '놈'이 된다는 것을...
꽃으로 시작된 열받음을 꽃과 촛불을 바라보며 다스려야 했다.
이런 식으로 몇번만 더 당하면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들런지도 모르겠다. Maybe~
* 추신 : 현배님!
여기서 만나니까 반갑네...^^
졸필을 읽어 주겠다니 고맙고...안녀~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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