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일반 게시판

상춘곡(賞春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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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연 [enos1956] 쪽지 캡슐

2002-03-16 ㅣ No.167

 

    상춘곡(賞春曲)

 

 

                              정극인(丁克仁. 1401~1481)

    

 

  세상에 묻혀 사는 분들이여.

  이 나의 생활이 어떠한가.

  옛 사람들의 운치 있는 생활을 내가 미칠까 못미칠까?

  세상의 남자로 태어난 몸으로서 나만한 사람이 많건마는 왜 그들은 자연에 묻혀 사는

  지극한 즐거움을 모르는 것인가?

  몇 간쯤 되는 초가집을 맑은 시냇물 앞에 지어 놓고,

  소나무와 대나무가 우거진 속에 자연의 주인이 되었구나!

 

 

  엊그제 겨울이 지나 새봄이 돌아오니,

  복숭아꽃과 살구꽃은 저녁 햇빛 속에 피어 있고,

  푸른 버들과 아름다운 풀은 가랑비 속에 푸르도다.

  칼로 재단해 내었는가?

  붓으로 그려 내었는가?

  조물주의 신비스러운 솜씨가 사물마다 야단스럽구나!

 

 

  수풀에서 우는 새는 봄 기운을 끝내 이기지 못하여 소리마다 아양을 떠는 모습이로다.

  자연과 내가 한 몸이거니 흥겨움이야 다르겠는가?

  사립문 주변을 걷기도 하고 정자에 앉아 보기도 하니,

  천천히 거닐며 나직이 시를 읊조려 산 속의 하루가 적적한데,

  한가로운 가운데 참된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없이 혼자로구나.

 

 

  여보게 이웃 사람들이여,

  산수 구경을 가자꾸나.

  산책은 오늘 하고 냇물에서 목욕하는 것은 내일 하세.

  아침에 산나물을 캐고 저녁에 낚시질을 하세.

 

 

  이제 막 익은 술을 갈건으로 걸로 놓고,

  꽃나무 가지를 꺾어 잔 수를 세면서 먹으리라.

  화창한 바람이 문득 불어서 푸른 시냇물을 건너오니,

  맑은 향기는 술잔에 가득하고 붉은 꽃잎은 옷에 떨어진다.

  술동이 안이 비었으면 나에게 아뢰어라.

  사동을 시켜서 술집에서 술을 사 가지고,

  어른은 지팡이를 짚고 아이는 술을 메고,

  나직이 읊조리며 천천히 걸어 시냇가에 혼자 앉아,

  고운 모래가 비치는 맑은 물에 잔을 씻어 술을 부어 들고,

  맑은 시냇물을 굽어보니 떠내려오는 것이 복숭아 꽃이로다.

  무릉도원이 가까이 있구나.

  저 들이 바로 그곳인가?

 

 

  소나무 사이 좁은 길로 진달래꽃을 손에 들고,

  산봉우리에 급히 올라 구름 속에 앉아 보니,

  수많은 촌락들이 곳곳에 벌여 있네.

  안개와 놀과 빛나는 햇살은 아름다운 비단을 펼쳐 놓은 듯.

  엇그제까지도 거뭇거뭇했던 들판이 이제 봄빛이 넘치는구나.

 

 

  공명과 부귀가 모두 나를 꺼리니,

  아름다운 자연 외에 어떤 벗이 있으리오.

  비록 가난하게 살고 있지만 잡스러운 생각은 아니 하네.

  아무튼 한평생 즐겁게 지내는 것이 이만하면 족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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