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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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연 [xyz] 쪽지 캡슐

2000-10-29 ㅣ No.1877

+ 오늘은 주일 미사가 정오쯤에 한번있는 솔뫼에서 미사를 드리고 싶어서 시계를 맞춰 놓고 잤는데 조금 일찍 깨어난것 같다. 아직 잠이 덜깨서 그런지 자판위의 손가락이 몹시 황망스럽다. 저~기 아래 1823번의 글을 쓰신 하수녀님께, 지난 봄 피정을 마치고 나올때나 여름에 잠시 들러 매실차 한잔을 송구시렵게 대접받고 나올때도 난 마지막으로 이 말을 했었다. 가을이 아주 깊어갈때.. 그때 다시 피정 올거에요.. 쉽게 생각했던 그 길이 이렇게..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켜 내 눈을 가리더니 주위의 먼지들을 동그랗게 말아서 다시 어디론가 가버렸다. 생각해보면 사는 동안 우리를 변화시키는 일들이라는건, 지피지기 정신으로 이미 나에 대한 파악을 다 끝내놓고 있는 복병같은 놈이다. 오랫동안 날 기다렸다는듯 인생의 어느 길모퉁이에서 확 낙아채 한때를 정신없이 흔들어 대다가는 또 어느날 문득 이제 때가 되었다는듯,무심하게 놓아준다. 우린 단지 너무 늦거나 빠르지 않기만을 기도할뿐,거대한 입김앞에서 속수무책일때가 얼마나 많은가. 본당의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특히 매일 정해진 시간에 모여 기도를 해주시는 우리 구역의 고마우신 어르신들..) 나에겐,그리고 우리 가족에겐 이 10월이 그러하였다. 그런 글을 읽은적이 있다. -우리는 살면서 하나의 모자이크를 만들어 간다.그런데 어느 기간엔 계속 까만 부분만 나와서 왜 나한테는 까만 부분만 나오는거야, 하고 생각하지만 나중에 보면 그 기간은 눈썹을 만드는 기간이었다.. 어느땐 계속 분홍빛만 나왔는데 나중에 보니 그땐 뺨과 입술을 만들어 가던 시간이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요즘 칠흑같이 까맣고 숱많은 눈썹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일까. 우리 가족이 오랜 시간을 단란하고 평탄하게만 살아왔던 것일까. 그저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시련이 한꺼번에 찾아와 네식구를 뿔뿔이 흩어버리고 온기라고는 하나없는 집에 들아와 근심거리를 머리안에 싸매고 혼자 억지로 잠을 청하려면.. ..참 내.. 꿈인지 생시인지..사는게 뭐 이래.. 가혹하다못해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 시월에 나는 잘 지냈는데 넌 어떻게 지냈는지 몰랐어..가 아니라 <우리>참 힘들었어..라고 우리를 묶어 말하며 어느 한 시절을 같은 감정,같은 추억으로 기억하며 살아가는 운명공동체의 사람들, 어떻게 소중하지 않을수 있을까. 참으로 신비로운건, 오히려 시련을 통해서 알아지는 좋은 인연이 있다는거. 그래서 시련은 <체>같은게 아닐가.나에게 더 가까이 있는 사람을 골라내주는 결이 고운 체. 분명 달뜬 기분으로 은근한 기대를 두며 시작했던 대희년이다. 더구나 이 10월에는 주말마다 성지순례에 피정에, 하늘이 주신 좋은 계절을 그저 내 안으로 깊이 깊이 느끼며 살지우고 싶었는데 그 길을 막고 이렇게 다른 카드를 열어 보이시는걸 보면 아무래도 그 방법이 지금의 내 몫은 아니었지 싶다. 아니라면 그만 두어야지. 잎들이 모두 지고 나서야 자태를 제대로 볼수 있는 나무의 가지들처럼 내 안애 있는 욕심,게으름.. 오랜 시간 미열을 달고 있는 감기만큼이나 쓸데없는 감정의 착각들까지.. 이젠 미련없으니 모두 다 가져가주세요, 라는 이기적인 기도가 감사의 마음보다 먼저 튀어 나올것 같다. 이러면 안되는데..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모든걸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때문 이겠지. 낙장불입이라는 말은 고스톱 칠때만 쓰는게 아니라 비온 뒤 길 위에 달라 붙은 낙엽들처럼 바꿀수 없는 내 손안의 패도 한번 던지면 그 길로 저물어간다. 그래야만하고.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 말할수 있다. 그 시절이 내게 고통만은 아니었다고. 그만 일어나 가볼까. 나와는 상관없이 이미 깊이 물들어버린 계절이지만 오늘만큼은 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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