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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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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qkfrksqhf] 쪽지 캡슐

2003-08-29 ㅣ No.471

 

  요약

 

 서울특별시 관악구에 있는 동.

 

위치 : 서울 관악구

면적 : 18.13㎢

인구 : 28만 9823명(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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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면적 18.13㎢, 인구 28만 9823명(2001)이다. 서울특별시 관악구에 속한 동이다. 관악구의 서남쪽에 있으며, 동북쪽에는 봉천동·남현동, 경기도 과천시가 있고, 서남쪽은 구로구, 남쪽에는 경기도 안양시, 북쪽으로는 동작구 신대방동과 접해 있다. 동의 이름은 관악산 기슭 숲이 무성한 곳에 있다는 데에 유래한다.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시흥군에 속하였다가, 1914년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신림리·서원리·난곡리의 자연마을을 합하여 신림리로 되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편입되면서 신림동으로 바뀌었고, 1973년 관악구 신설로 이에 속하게 되었다.

 

법정동인 이 동은 행정동인 신림본동과 신림1~13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관악구에서 가장  먼저 상업지역으로 발전한 신림본동은 예전에는 서원마을이었다. 마을 이름은 고려시대에 서원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붙여졌다. 강감찬 장군이 송도에 왕래할 때 자주 머물렀던 곳으로 정자는 없어졌으나 지금까지도 지명은 남아 있다. 마을 뒷산인 장군봉은 강감찬 장군이 무예를 연마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동북쪽 산정에는 군웅당이라는 제당이 있었으나 주택 신축공사로 헐렸다.

 

신림5동 지역은 먹거리 골목 및 각종 편의시설 등이 잘 갖추어진 곳이다. 신림9동은 서울대학교가 있는 곳으로 고시촌이라는 독특한 동네가 형성되어 있으며 대규모 하숙집, 고시전문서점 등이 들어서 있다. 신림10동에는 약수암이라는 유서 깊은 절이 있다. 이 지역은 관악산 기슭에 밤나무가 무성했던 동네라 하여 밤골이라 불렀으며 삼성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지형이 조개 모양을 하고 있어 합실(蛤室)이라고도 했다.

 

남부순환도로와 신림로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충지에는 유흥업소와 상가 등이 밀집하여 상업과 주거의 복합구조를 이루고 있다. 신림3, 7, 11, 12동 지역은 난곡이라 불리는 곳으로서 조선시대 강홍립(姜弘立) 장군이 유배되어 은거할 때 난초를 많이 길렀다는 데서 유래하며, 낙골, 난골 등으로도 불린다. 자하골은 서울대 정문 동쪽의 운동장 부근에 있던 마을이다.

 

문화재로는 신림3동에 굴참나무(천연기념물 271)가 있는데, 이곳은 강홍립 장군 집 뜰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1987년에 건설된 건영아파트 뒤쪽에 있다. 또한 강사상신도비(서울유형문화재 104)가 있으며, 그 밖에 신림3동과 7동의 경계에는 강홍립 장군의 묘와 진주(晋州) 강씨(姜氏) 일가의 묘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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