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자료실

2011.3.9 아름다운 쉼터(앞 못 보는 피아니스트(‘행복한 동행’ 중에서)

인쇄

박상훈 [4rang2] 쪽지 캡슐

2011-03-09 ㅣ No.622


앞 못 보는 피아니스트(‘행복한 동행’ 중에서)

코리아 W 필하모닉의 김남윤 음악감독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일화가 있다. 2004년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정기 연주회를 준비할 때 일이다. 그는 신시내티에 거주하던 시각 장애인 피아니스트 이혁재의 연주 비디오를 보고 협연을 청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베토벤의 코럴 판타지를 연주해 주시겠어요?”

그런데 전화기 너머에서 난감해 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저, 그동안 제가 연주해 왔던 곡을 협연하면 좋겠는데요.”

연주회까지는 5개월이나 남아 있던 터라 김남윤 감독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연주회는 가을입니다. 연습할 시간은 충분하지 않나요?”

“알겠습니다. 그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거듭되는 요청에 피아니스트는 제안을 수락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나, 피아니스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 드디어 찾았어요! 이제 연습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찾았다니, 무얼?”

미국에 있는 모든 도서관을 뒤져도 베토벤의 코럴 판타지 악보를 구할 수 없었는데, 일본의 한 도서관에 점자 악보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마침내 악보를 손에 넣었다는 것이다. ‘아! 그는 일반 악보를 볼 수 없구나!’ 뒤늦게 찾아온 깨달음 앞에 김남윤 감독은 너무도 미안했다. 그는 점자 악보를 손으로 읽어 연습하고 외우는 데 일반인보다 몇 배의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그런데도 “연습 시간이 충분하지 않느냐.”는 말에 아무 이유도 대지 않던 피아니스트의 마음이 그제야 헤아려졌다.

우리는 종종 타인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산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상대의 입장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무지한가. 우리가 맞닥뜨리는 수많은 오해와 갈등도 사실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당신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기 전에, 얼마나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47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