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모세의 구리 뱀과 십자고상의 의미 외 [성경공부_구리뱀] [가톨릭성경공부_방법안내] [성경공부_해설서] [신간저서:] 782_ 648_ 1077_

인쇄

성경해석 4/4 [175.126.101.*]

2012-02-07 ㅣ No.1165

  
+ 찬미 예수님
 
1. (이 글의 서론)

다음은 가톨릭 보편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매년 성 십자가 현양 축일(9월14일)과 나해 사순 제5주간 화요일 제1독서인, 민수기 21,4-9 전문입니다:

구리 뱀 
4 그들은 에돔 땅을 돌아서 가려고, 호르 산을 떠나 갈대 바다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5 그래서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6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에게 불 뱀들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백성을 물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다. 7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청하였다. “우리가 주님과 당신께 불평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을 우리에게서 치워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8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9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이상 발췌 끝)
-----


하느님께서 보내셨다는 불 뱀(민수기 21,6)은 "주석 성경"의 주석에 의하면 사막에 사는 독사를 말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와 대동소이한 주석이 또한 NAB(New American Bible)에 주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은 선(good)합니다. 그리고 악(evil)은 사람이 창조하는 것이지, 하느님께서 창조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악(evil)의 정의(definition)를 올바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제목: 죄의 정의(definition), 원죄, 성령을 거스르는 죄 등에 대하여]을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41.htm <----- 필독 권유.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하느님의 의도(God's will)가 곧 하느님의 사랑(God's love)이므로(출처: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 하느님의 의도는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악일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의도는 항상 그리고 영원히 선(good)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하느님의 의도 이전에, 바로 그 사막의 독사 자체는 선(good)합니다. 그리고 거기의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그들을 회개로 인도하시려고, 하느님께서 그들이 이 독사에 물리는 것을 보호해 주시던 것을 잠깐 거두어들이셨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다음은 요한 복음서 13,2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만찬 때의 일이다. 악마가 이미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이상, 발췌 끝)

그리고 다음은 요한 복음서 13,21-30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유다가 배신할 것을 예고하시다 (마태 26,20-25 ; 마르 14,17-21 ; 루카 22,21-23) 
21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마음이 산란하시어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2 제자들은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여 서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23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다. 24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이 누구인지 여쭈어 보게 하였다. 25 그 제자가 예수님께 더 다가가,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빵을 적신 다음 그것을 들어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27 유다가 그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28 식탁에 함께 앉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주머니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예수님께서 그에게 축제에 필요한 것을 사라고 하셨거나, 또는 가난한 이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30 유다는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이상, 발췌 끝).

따라서, 하느님을 질투하는(envious) 타락한 천사인 사탄[Satan, 즉 악마(the devil)]의 하수인이 되어 버린, 그리하여 배반자로 불리는, 유다 이스카리웃의 그 이후의 역할은, 하느님께서 보실 때에, 결코 선한 역할이 아닙니다.

참고: 여기를 클릭하면, "악마/악령/마귀/사탄 호칭 및 이름의 의미" 제목의 졸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는, 아래에서 다시 말씀드리겠지만, 성경 본문을 이해할 때에, 성경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들의 자구적 의미를 우선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막의 독사"에게 물려 죽는 것은 "자연적인(natural)" 일이나, 그러나 "구리 뱀"을 바라보면 살게 되는 것은, 영성적으로, 하느님의 권능이 개입된, "초자연적(supernatural)" 사건일 것입니다.

이제, 이 "초자연적 사건"을 그리스도교 신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요한 복음서 3,14-15을 읽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

ㄱㅇㅊ 형제님의 답변:

네 신명기 8:15에 "그분은 불 뱀과 전갈이 있는 크고 무서운 광야, 물 없이 메마른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시고, 너희를 위하여 차돌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신 분이시다."라는 말이 나오는군요 그리고 알아봤더니 이 뱀들은 광야(특히 아라바 지역)에 많이 서식하던 독사 가운데 한 종류로서 등에 불타는 듯한 붉은 반점이 있는 뱀을 일컫는 것입니다.

이 뱀들은 독성이 강하여 한번 물으면 독이 온 몸에 퍼져 즉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이 뱀은 사막의 불살모사로 불리웁니다.불 뱀은 뱀의 모양과 그 맹독성을 강조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은 선하다고 하면 민수기의 불 뱀도 하느님이 선한 의도로 사용하셨다면 악이 아닌게 맞는 것 같습니다.
(이상, ㄱㅇㅊ 형제님의 답변 끝)
----------

하느님의 의도(God's will)가 곧 하느님의 사랑(God's love)이므로(출처: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 하느님의 의도는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악일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의도는 항상 그리고 영원히 선(good)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하느님의 의도 이전에, 바로 그 사막의 독사 자체는 선(good)합니다. 그리고 거기의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그들을 회개로 인도하시려고, 하느님께서 그들이 이 독사에 물리는 것을 보호해 주시던 것을 잠깐 거두어들이셨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성경 본문의 해석에 대한 가톨릭 보편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은, 다음의 주소에 있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09-119항들을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109.htm <----- 필독 권유

"악(evil)"이라는 용어의 신학적 정의(definition)를 잘 모르는 분들이 자꾸 "선(good)"과 "악(evil)"을 아무데서나 이원론적으로 생각하거나 혹은 흑/백 등으로 쉽게 대비를 시키려고 히는 경향이 있는데, 상당히 잘못된 접근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죄(sin)가 먼저일까요, 악(evil)이 먼저일까요?
----------

2. 다음은 추가적으로 나눈 대화들입니다. 아래의 제3항에서 이 글의 본론으로 다루는 주제를 이해하는 데에 약간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2-1.
-----

ㄱㅈㅇ 형제님의 답변:

두분 토론중에 새롭게 배웁니다.~감사합니다.~좋은 주일 되세요.살롬.
(이상, ㄱㅈㅇ 형제님의 답변 끝)
----------

ㄱㅇㅊ 형제님의 진솔한 글을 읽고서, "나눔의 신비" 차원에서,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약간 몇 말씀들을 드렸던 것인데, ㄱㅈㅇ 형제님께 도움이 되었다니, 저도 기쁩니다. 좋은 주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사실, 민수기 21,4-9는 매년 사순 제5주간 화요일 제1독서 그리고 매년 성 십자가 현양 축일(9월 14일) 제1독서로 발췌되고 있습니다.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 제1독서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을 읽을 수 있습니다.

두 분 형제님들의 진솔함과 진지함이 저를 다시 움직여, 조금 전에 민수기 21,4-9가 언제 가톨릭 교회 미사 성제 중의 독서로 발췌되고 있는지를 파악하였으며, 그리고 이 독서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을 읽어 보니 대단히 좋은 내용이기에, 제가 우리말로 번역하여 첨부하였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lent_5_tue.htm
[나해 사순 제5주일 화요일 말씀 전례 성경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triumph.htm
[매년 성 십자가 현양 축일(9월14일) 말씀 전례 성경들]
----------

2-2.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41.htm  <----- 이 주소에 접속하면, 악(evil)의 정의(definition)가 설명되어 있는, 다음의 주소의 글로의 링크 설정이 되어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85.htm

제 생각에, 우리말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선(good)""악(evil)"에 대한 설명들보다, 다음의 주소에 주어진, 당연히 전달해드리는 설명들이 훨씬 더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85.htm
----------

2-3.
ㄱㅇㅊ 형제님의 추가 질문:

저는 지금 형제님의 성악설을 주장하는 것은 "가톨릭의 보편적인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아 본 바에 따르면 기독교사상는 성악설에 가깝던데...

(ㄱㅇㅊ 형제님의 답변)
"기독교는 인류의 시조 아담이 원죄를 지었기 때문에 사악한 길로 떨어졌고 그 후손들은 태어나면서 악한 경향을 가지고 나온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악하다는 주장이 일찍부터 신조가 되어버려 이에 대해 의심하거나 논변을 벌일 여지도 없었다. 중세의 교부철학자 아우구스티누수(Augustine) 이래의 논자들은 모두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후 이탈리아의 마키아벨리(N.Machiaveli : 1447∼1527)와 영국의 홉스(J. Hobbes : 1588∼1679)와 독일의 쇼펜하우어(shopenhauer : 1788∼1860)는 모두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주장하였다. "
(이상, ㄱㅇㅊ 형제님의 답변 끝).
----------

2-4. 추가 질문에 대한 간략한 답변:

원죄 이전의 상태의 사람이 선하였음은, 창조된 인간의 본성 자체가 애초에 선하였음을 말합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하여 창조된 모는 사물들은 선하다고 가르칩니다. 즉, 사람의 본성이 선천적으로 착하다고 주장하는, 소위 말하는, 성선설입니다.

성삼위 하느님의 제2위격이신 성자(the Son of God,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강생 신비에 의하여 원죄 없는 사람으로 오신 이유가, 아담과 하와가 원죄(the original sin)를 범한 이후로 죄의 노예 상태에 있는 피조물들을 해방시켜, 그들이 원죄 이전에 누렸던 완미한 선함(perfect goodness)의 상태로 그들을 회복시키고자(restore, repair) 함인데, 바로 이러한 "하느님과의 통공 교의"는,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고 악하다고 주장하는소위 말하는성악설과는 배치되고, 그리고 더 나아가, 이러한 "교의(믿을 교리, dogma)" 자체가, 절대로 성악설과 양립/공존할 수 없습니다.


3. (이 글의 본론)

지금부터는, 성경 본문의 해석에 대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09-119항들의 가르침/지침들에 대하여 그리고 이 가르침/지침들에 충실한 성경공부 방식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질문 A: 성경 본문의 어떤 절, 용어에 대한 어떤 해석의 진위(truth or falsity) 여부는 결국에, 통상적으로 사람(men)들로 불리는, 독자들이 판단하게 되는데, 가톨릭 보편 교회가 수용한 "진리(truth)"의 정의(definition)는 무엇일까요?

질문 A에 대한 답변:

여기를 클릭하여, <----- 필독 권유.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으로 귀착되는 답변글을 읽도록 하십시오.

성경 말씀을 읽고 이해함에 있어, 논리적 진리(logical truth)만이 진리가 아님을 인식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고 또 시급하기에, 필독을 권고드립니다.
-----

3-1. (0)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

민수기 21,4-9에서, 특히 "불 뱀"과 "구리 뱀"의 의미를 모르면, 전후의 문맥이 무슨 의미를 전달하려고 하는지를 도처히 알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3-1-1. "불 뱀"(민수기 21,6)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막에 서식하는 독사를 말한다(이사 6,2와 각주; 14,29; 30,6 참조).

그리고 이와 대동소이한 주석이 또한 NAB에 주어져 있습니다. "불 뱀들"으로 번역된 표현을 NAB에서는 "seraph serpents"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NAB 주석 전문입니다:

Seraph: the Hebrew name for a certain species of venomous snake; etymologically the word might signify “the fiery one.” Compare the winged throne guardians in Is 6:2, 6; see also Is 14:29; 30:6.

사랍: 특정한 종의 독사에 대한 히브리어 이름이며, 어원적으로 이 단어는 "불같은 자(the fiery one)"를 나타낸다. 이사야서 6,2.6에 있는 날개 달린 어전 호위병들과 비교하라, 그리고 이사야서 14,29; 30,6을 또한 보라.

3-1-2. "구리 뱀"(민수기 21,9)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은 없으며, 이렇게 번역된 표현을 NAB, DRB, KJV, GNB 등의 영어 성경들에서는 "a bronze serpent(청동 뱀)" 혹은 "a brass serpent(놋쇠 뱀)"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 모세에게 명한 것은 또 하나의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는 것이었으나, 모세가 만든 것은 구리 뱀이었는데, 그 이유는, 예를 들어,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 가해-II, 나해-II, 혹은 다해-II 에 주어진 민수기 21,9에 대한 해설에 의하면, 이 사건이 발행한 지역이 고대 시대의 커다란 구리 원산지들 중의 하나였던 푸논(Punon) 지역 근처에서 발생하였다고 믿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해설서의 해설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또한 주어져 있습니다: 

고고학은, 아마도 다산(fertility)을 기원하는 의식(rites)들과 관련하여, 뱀을 섬기는 제식(祭式, cult)이 가나안(Canaan) 지역에 폭넓게 실시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청동 뱀은 라키스(Lachish) 지역의 발굴에서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후기 청동기 시대(Late Bronze Age)로 추정되며(dates from), 이 시기는 탈출기(Exodus, 기원전 1230년경)와 거의 같은 시기이다. 모세는 그러한 형상을 만드는 것을 그의 처가 쪽 친척인 카인(Kenite)족들로부터 배웠을 것이다 (‘kenite’는 ‘smith’, 즉 대장장이를 뜻한다). 

이상, "불 뱀"과 "구리 뱀"의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 즉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참고 3-1-1: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여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자구적 의미에 당시의 삶의 여건, 생활상, 관습, 문화적 및 역사적 배경, 비유적 표현(figures of speech)들, 문학 장르(literary genres)들 등이 또한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지역 언어로의 성경 본문의 번역시에 반드시 "직역 번역"을 하여야 하는 이유도, 어느 지역의 언어로 번역이 되더라도 성경 본문이 가지고 있는 바로 이 자구적 의미가, 번역 과정에서 변형되거나 혹은 왜곡되는 등의 훼손됨 없이, 그대로 보존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읽을꺼리 한 개:
여기를 클릭하면, 당시의 삶의 여건, 생활상, 관습, 문화적 및 역사적 배경, 비유적 표현들, 문학 장르들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발생한 번역 오류의 한 예 [글의 제목: 집사일을 청산/정리하게???]를 읽을 수 있습니다.

3-1-3. 이 자구적 의미에 추가적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만든 구리 뱀을 기둥에 매달았더니, 불 뱀에 물린 자들이 죽지 않고 치유가 되었음을 이 신명기 구절에서 듣게 되는데, 바로 이 부분에서 우리는 "하느님에 의한 치유 기적"이 있었음을 인지하게 됩니다. 비록 이것은 소위 말하는 "영원한 구원(eternal salvation)" 아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사람들이 하느님의 현존을 충분하게 인지하고 또 하느님을 하느님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소위 말하는 "일시적 구원(a temporal salvation)"이었음은 그들에게 분명하게 인지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여기까지 말씀드린 바는, 심지어 유다인들 마저도 별다른 이의 없이 이해하고 또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데, 그 주된 이유는 우리가 바로 이 "성경 본문의 자구적 의미"에 충실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라도 바로 이 "일시적 구원"이 우리를 "영원한 구원"으로 인도하는  한 개의 표징(a sign)이 된다면, 우리들에게  더 없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1) 다음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2) 당신의 십자가 수난
에 의하여

참으로 "영원한 구원", "영원한 생명"에 대한 한 개의 표징이 되었습니다:


----------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복음서 3,14-15). 

----------


3-2. 영성적 의미/어의(語義)(spiritual sense)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09-119항들
에서는 성경 본문의 영성적 의미에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들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1) 우의적 의미/어의(풍유적 의미/어의, the allegorical sense or typological sense),
(2) 윤리적 의미/어의(the moral sense or the tropological sense), 그리고

(3)
신비적/종말론적 의미/어의(the anangogical sense).

참고 3-2-1: 여기를 클릭하면, 이들 의미/어의들의 적용 예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바쁘지 않은 분들의 필독을 권고합니다.

참고 3-2-2: 여기를 클릭하면, 이들 의미/어의들에 대한 더 자세한 글(제목: The Four Senses of Scripture, 저자: Joseph W. Koterski, S.J.)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바쁘지 않은 분들의 필독을 권고합니다.

참고 3-2-3: 여기를 클릭하면, 성경 본문의 의미를, (0) 자구적 의미, 그리고 이 자구적 의미에 기초한 이들 세 가지의 영성적 의미들로 구분하는 방식이 그리스도교측에 처음으로 도입된 것은, 알렉산드리아의 성 클레멘트(St. Clement of Alexandria, 150-215년)의 제자인, 오리게네스(Origen, 185-254년)에 의하여서임 알 수 있습니다. 오리제네스는 또한 성경 본문의 지역 언어로의 번역시에, 자구적 의미를 온전하게 보존하게 하고자, 여러 지역 언어들로 번역된 성경 본문들을 동시에 비교/검토하는 방식의 도입 등을 통하여,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의 중요성을 대단히 강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적인 그리고 중요한 문제는, 성경 본문의 영성적 의미들에 이렇게 크게 세 가지들이 있음을 우리가 알더라도, 어떻게 이들 의미들을 올바르게 찾아내어 이해할 수 있느냐에 있는데, 바로 이 부분은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일 것입니다. 왜냐 하면, 성경 본문에 대한 해석권은 오로지 가톨릭 보편 교회의 교도권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영성적 의미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예를 들어, 이미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가톨릭 교회 교리서 등의 교황청 제공의 어떤 특정 문헌들을 참고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최우선적이어야 하고,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그리고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가톨릭 보편 교회의 전례력을 들여다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구약 성경 민수기 21,4-9의 내용에, 대단히 분명하게, 우의적(풍유적)으로 대응하는 신약 성경의 내용은, 예수님의 직접 말씀에 근거하여, 바로 요한 복음서 3,13-17이라고 가톨릭 보편 교회의 전례력은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일치 정신에 따라 1969년에 개편 마련된 가톨릭 보편 교회의 전례력에 의하면, 매년 성 십자가 현양 축일 (9월 14일)제1독서민수기 21,4-9, 제2독서필리피서 2,6-11이며, 그리고 복음 말씀요한 복음서 3,13-17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여기를 클릭하면 직접 확인할 수 있듯이, 이러한 1969년의 가톨릭 보편 교회의 전례력 개정에 부응하여 일부 개신교측들에 의하여 1994년경에 마련된, 소위 말하는 RCL(Revised Common Lectionary)의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의 제1독서(민수기 21,4ㄴ-9)복음 말음(요한 복음서 3,13-17)은, 위에서 이미 말씀드린, 가톨릭 보편 교회의 성 십자가 현양 축일(9월 14일)의 제1독서 및 복음 말씀과 동일하게 마련되었습니다. 

참고 3-2-4: 여기를 클릭하면,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대한 더 자세한 전달/안내의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3-1-4. 이들 자구적 의미 및 세 가지의 영성적 의미들은 위에서처럼 크게 구분은 할 수 있으나, 그러나 자구적 의미 위에 그 의미가 단계적으로 깊어지는 불가분의 관계들을 가지고 때문에, 이들을 각각 따로 떼어내어 해석자 고유의 독립적/자의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09-114항들에서 제시하고 있는 세 가지의 원칙들 아래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이들 가르침들을 읽을 수 있으며, 필독을 권고합니다:

3-1-5.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공부를 할 때에,

(i)
 성경 본문의 해석에 대한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지침에 충실한 해설 구조를 가진 성경공부 교재를 학습한다면,

(ii)
학습자가 또한 바로 이 동일한 가르침/지침에 따라 학습함으로써,

(iii)
거룩한 말씀, 즉 로고스, 즉, 성자, 즉 하느님의 아드님, 즉 거룩한 지혜(요한 복음서 1,1-18 참조)의 가르침에 대하여 더 깊은 그리고 매우 효율적인 이해를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3-1-6.
 

질문 B: 그런데, 위의 제3-1-5항 (i)에 따라 성경 공부를 하고 계시는 분들에는 어떤 분들이 계실까요?

질문 B에 대한 답변: 예를 들어, 여기에는

(i) 가톨릭 교회의 주일, 대축일 미사 중에 강론(homily) 직무를 수행하여야 하는 성직자들,

(ii) 위에 말씀드린 RCL(Revised Common Lectionary)을 수용한 개신교측의 목회자들,

(iii) 학습한지 이제 6년째로 접어든 저의 본당인 분당 성 요한 성당에서처럼, 총6권이 한 질을 이루는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해-I,II, 나해-I,II, 다해-I,II"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를 교재/부교재로 삼아 학습하는, 본당의 성경공부 신심 단체들,

등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위에서 말씀드린 네 가지의 의미들에 따라 마련된 가톨릭 보편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서의 대부분의 각 주일, 대축일 미사 중의 독서들 및 복음 말씀에 대하여, 해당 주일 혹은 대축일 미사 중의 제1독서와 복음 말씀 사이의 내용 연결 고리, 그리고 복음 말씀과 제2독서 사이의 내용 연결 고리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대단히 중요한데, 역시 이 파악을 할 때에도 위에서 말씀드린 네 가지의 의미들에 따라 내용 파악을 하면, 손쉽게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의 경우에 있어,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사이에 내용 연결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1) 제1독서 키 워드: 반항, 불 뱀, 구리 뱀
-----> (2) 복음 말씀 키 워드들: 구리 뱀, 하느님의 사랑, 독생자, 영원한 생명
       -----> (3) 제2독서 키 워드: 겸손, 순종

(1), (2), (3) : 자구적 의미
(1) ====> (2) : 우의적/풍유적 의미
(2) ====> (3) : 윤리적 의미(여기에는 실천적 의미 포함)
(2) ====> (2) : 신비적/종말론적 의미

바로 이러한 접근으로부터,

우리는

"영원한 구원"의 표징, "영원한 생명"의 표징인 

성 십자가,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못 박힌 바로 그 십자가,

즉 십자고상

진정한 의미


습관적 및 체계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복음서 3,14-15). 

----------

 

참고: 여기를 클릭하면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사제품이 예정된 부제의 재속 사제 생활에 대한 질문의 답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클릭한 후에, 제5-6항에 있는 [내용 추가 일자: 2011년 12월 13일] 부분을 읽도록 하십시오.
-----

질문 C: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09-119항들의 가르침/지침에 근거한 학습 구조를 가진 성경공부 교재는 있는지요?

질문 C에 대한 답변: 예, 있습니다. 총 6권이 한 질을 이루는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해-I,II, 나해-I,II, 다해-I,II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입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이 책을 출판하게 된 배경, 특성, 그리고 제공 중인 인터넷 각주들 등에 대한 안내의 글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강론 준비 혹은 훈화 준비에 도움을 드리고자, 매일 미사 독서(복음 말씀 포함)들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일부 해설들에 대하여서는 우리말 번역문 제공)을 인터넷 각주로 또한 제공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기를 클릭하면, <----- 필독 권유

성 십자가 현양 축일(9월 14일) 독서들 및 복음 말씀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영문 및 우리말 번역문 일부 포함)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2년 2월 21일]

특히, 위의
빨간 글자들을 클릭하면(필독 권유), 이 민수기 구절이

[마르틴 루터(Matin Luther)16세기 초반경에, 당시에 이르기까지 서방 교회 및 동방 교회에서 정경으로 인정해 왔던, 소위 말하는 제2경전들구약 성경 목록에서 임의적/자의적으로 제거해 버린 어처구니 없는 독선적 해악 때문에, 적어도 1987년 이후부터 개신교측 신자들 모두가 통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지혜서 16,5-12에서 해석되고 있다는 언급이 있는데, 

다음은 지혜서 16,5-12 전문입니다.
 
"주석 성경"의 주석이 매우 좋아 또한 함께 발췌하였습니다. 대단히 좋은 내용이니 여러 번 읽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발췌 시작)
5 사나운 동물들이 무서운 기세로 당신 백성들에게 들이닥쳐
백성들이 그 구불거리는 뱀들에게 물려 죽어 갈 때
당신의 진노는 끝까지 가지 않았습니다.

6 그들은 경고의 표시로 잠깐 괴로움을 겪고 나서
당신 법의 계명을 상기시키는 구원의 표징을 받았습니다.7)

7 눈을 돌린 이는 자기가 본 것 때문이 아니라8)
모든 사람의 구원자이신 당신 덕택에 구원된 것입니다.

8 이 일을 통해서도 당신께서는 저희의 원수들에게
모든 악에서 구해 내시는 분은 당신이심을 확신시키셨습니다.

9 저들은 메뚜기와 파리에게 물려 죽어 가는데
그 목숨을 살릴 약이 없었습니다.9)
저들은 그러한 것들로 징벌을 받아 마땅하였던 것입니다.

10 그러나 독사의 이빨도 당신의 자녀들은 꺾지 못하였으니
당신의 자비가 도우러 내려와 그들을 고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11 당신의 말씀을 기억하라고 그들은 이빨에10) 물렸다가
곧바로 구원되었습니다.
깊은 망각에 빠지지 말고
당신의 선행을 늘 염두에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12 그들을 낫게 해 준 것은 약초나 연고가 아닙니다.
주님, 그것은 모든 사람을12) 고쳐 주는 당신의 말씀입니다.

-----
7) 구리 뱀의 일화가(민수 21,4-9) 영성적으로 해석된다. 뱀은 이스라엘인들에게 순명을 상기시킨다는 것이다.
8) 눈을 돌린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모세가 하느님의 분부에 따라 만들어 놓은 구리 뱀을 본다는 것인데(민수 21,8-9), 여기에서는 하느님을 향한 회개라는 영성적 뜻도 함께 내포한다.
9) 탈출 8,16-28과 10,1-20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확대시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단순히 해로운 짐승이 이집트인들에게는 살인적인 존재가 되는 데 반하여, 이스라엘인들은 물리면 바로 죽는 뱀들에게 물렸어도 살아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병을 고쳐주는 말씀에 관해서는 시편 107,20 참조.
10) "이빨에" 는 내용상 덧붙인 말이다.
11) "모든 사람" 대신에 "만물" 로 옮길 수도 있다.
(이상, 발췌 끝)

[이상, 내용 추가 끝].

그리고

여기를 클릭하면,

이 책들에 대한 가톨릭출판사 제공의 안내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
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 5시간.


2,304 1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