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일반 게시판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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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섭 [klaray] 쪽지 캡슐

2002-10-06 ㅣ No.527


☆ 출처 : 조계준님의 홈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이 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이나 흔한 풀이었다.
산 기슭이나 길가 아무데나 있었다.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 찔레꽃 필 무렵
줄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
발그스름한 줄기를 꺾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겨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 달콤했다.
입안에 군침이 돌게 신맛이, 아카시아 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는데는 그만일것 같았다...(77쪽)



가끔 나는 손을 놓고 우리 시골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하염없이 생각하곤 했다.
말 수 적은 오빠도 내 향수를 알아차리고는
여름방학이 며칠 안 남았다는것을
손가락으로 헤아려 보여주곤 했다(91쪽)





박완서님의'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싱아는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이책을 읽은 사람들중에
싱아를 먹어본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이런 의문에 사로잡혔다..
이 책은 싱아를 통하여 유년의 그리움을 표출하여 쓴
박완서님의 자서전적인 이야기이다.


은희경이 "새의 선물"에서 보여준
성장의 추억처럼 이 싱아에도
절절히 묻어 나오는 추억이 담겨있다..
은희경은 바로 나와같은 세대의 이야기라
매우 흥미롭고 진지했지만
박완서님의 추억은 우리시대 어머니들의
기억과 아픔을 다시 들여다 보는것같아
무언지 모를 애틋한 그리움이 솟구친다..


픽션이 아닌 순전히 작가의 기억력으로만 의존해서 쓴
이 책은 재미도 있거니와 그분의 몰랐던 이야기들을
세세히 들여다 볼 수 있어 작가와의 친밀함이 더해간다.





성장의 과정..
누군가 산다는 것은 긴 고통, 짧은 행복이라고 말했다.

행복의 순간은 짧고, 힘겨운 시간은 길다는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 행복을 누리는 시간은 짧다.
유년기는 그 행복의 절정일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알아가고 많은 것들을 만나면서 고통은 시작된다.
누군가는 그 모든 만남과 앎이 크나큰 아름다움이라 말했지만...

누구나 유치찬란한 유년시절이 있을것이다...

기억으로 더듬어보는 유년기는
누구에게나 참을 수 없는 경이로움을 안겨준다
작가에게는 그야말로 '야성의 시기'이다

산과 들에서 마음껏 뛰어 놀며 군것질을 하고,놀이감을 발견했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환희를 느끼고,
피빛으로 물든 저녁 노을에 비애를 느꼈다. .

야성의 시기에서 벗어나 문명의 세계인 서울로
발을 들여 놓은 것은 한 단계 성장이었다.
마냥 풍성하고 너그러운 자연의 품 말고 또다른 세상,
아득바득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또다른 세상을 알아가는 성장의 과정이었다...





풀로 각시를 만들어 쪽찌어 시집 보낼 때..
게딱지로 솥을 걸고 솔잎으로 국수 말고 김치를 담갔다.

마지막으로 쇠비름뿌리를 뽑아 열심히
"신랑 방에 불켜라. 각시 방에 불켜라..."주문을 외면서
손가락으로 비벼서 새빨갛게 만들어서 등불을 밝혀 주었다.
가지고 놀 것은 무궁무진했고
우리는 한번도 어제 놀던 걸 오늘 또 가지고 놀 필요가 없었다.





어찌 그렇게 재미있게도 표현하셨는지..
어렸을때,뒷마당 장독대에서 친구하고 했던
소꿉놀이가 그대로 생각났다..
꼬막껍데기에다 수북히 흙밥을 올리고..
푸성귀 찧어서 반찬 올리고..
꽃으로 만든 반찬은 얼마나 화려하였겠는가..?

그리고 책중에 나오는 뒷간의 풍경은
상상을 초월할만큼 압도적이다...
어린시절 깜깜하고 적막이 감도는 은밀한곳...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그 곳은 측간으로 더러운게 아니라
아름다움까지 간직하고 있다..

李箱에게 불쑥 내밀어보는 도전장도 눈여겨볼 만도 하고..






재미난 뒷간의 풍경....(책속에서 찝어 옴)

소꿉 장난을 하다가 한 아이가 "술래잡기를 할래?"
하면 우르르 따라하듯이 누군가가 "뒷간에 가자 "하면
똥이 안 마려워도 다들 따라가서
일제히 동그란 엉덩이를 까고 앉아 힘을 주곤 했다.

계집애들도 치마 밑에 엉덩이를 쉽게 깔 수 있는
풍차바지를 입을 때였다...
엉덩이는 깠지만 똥이 안 마려워도 손해날 것은 없었다.
줄느런히 앉아서 똥을 누면서 하는 얘기는
왜 그렇게 재미가 있었는지..가히 환상적이었다.

옥수수 먹고 옥수수같이 생긴 똥을 누면서
갑순이네 누렁이가 새끼를 여섯마리나 낳았는데
누렁이는 한마리도 없거니와
검둥이하고 흰둥이하고 흰바탕에
검정점이 박인것밖에 없으니 참 이상하다는 따위
하찮은 얘기가 그 어둑시근하고 격리된 고장에선
호들갑스런 탄성을 지르게도 하고 ,
옥시글 옥시글 재미난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게도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뒷간에서는 잘 생긴 똥을 많이 누는게 수였다.
똥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 땅으로 돌아가
오이호박이 주렁주렁 열게하고
수박과 참외의 단물을 오르게 한다는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뒷간도 재미있었지만 뒷간에서 너무 오래있다
나왔을때의 세상의 아름다움은 유별났다.

텃밭 푸성귀와 풀숲과 나무와 실개천에서 반짝이는 햇빛이
너무도 눈부시고 처음 보는것처럼 낯설어
우리는 눈을 가느스름히 뜨고 한숨을 쉬었다.

뭔가 금지된 쾌락에서 놓여 난 기분마저 들었다.

훗날 학생 입장 불가의 영화를
교복의 흰깃을 안으로 구겨 넣고 보고 나와
세상의 밝음과 낯섦에 접할때마다
나는 유년기의 뒷간 체험이 되풀이 되고 있는것처럼 느끼곤 했다.





그로부터 더 오랜 훗날
李箱의 [권태]라는 수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놀이기구라고는 없는 오륙명의 시골아이가
무얼 가지고 어떻게 놀아야 될지 몰라
돌멩이로 풀을 짓이기다가
곧 싫증이 나서 하늘을 향해 두팔을 벌리고
괜히 기성을 지르다가 맨 나중에는 나란히 앉아서
대변을 한무더기씩 누더라는 얘기였다.

李箱은 그것을 '창작유희'라고 묘사해놓고 있었다.
그런 설명이 없더라도 그의 뛰어난 글솜씨 때문에
돌파구 없는 권태의 극치가 섬뜩하도록 실감되는 글이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가지난 뼛속까지 서울내기인
李箱의 감수성이 만들어 낸 관념의 유희일뿐 정말은 그렇지 않다.
시골애들은 심심해서 어떻게 살까 불쌍하게 여기는건은
서울내기들의 자유이지만
내가 심심하다는 의식이 싹트고 거기 거의 짓눌리다시피 한것은
서울로 오고 나서 였다
.
.
.
.
.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후편이다.
작가가 1951년 1.4 후퇴 때부터 시작하여
1953년 결혼을 할 때 까지의 이야기이다.
전쟁통에 하나의 독립된 개최가 되어
혼자 힘으로 세상과 부딪치고
또 가족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박완서는...
1931년 경기도 개풍 출생.
숙명여고 졸업,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학업 중단.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나목이 당선.
단편집 <엄마의 말뚝>,<꽃을 찾아서>, <저문 날의 삽화>,
<한 말씀만 하소서>, <너무도 쓸쓸한 당신> 등이 있고,
장편소설 <휘청거리는 오후>, <서 있는 여자>,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미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등이 있다,

수필집으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여자와 남자가 있는 풍경>,
<살아있는 날의 소망>,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어른노릇 사람노릇> 등이 있다.

한국문학작가상(1980), 이상문학상(1981),
대한민국문학상(1990), 이산문학상(1991),
동인문학상(1994), 대산문학상(1997), 만해문학상(1999)등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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