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골 자유 게시판

짝사랑이야기[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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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성 [greenbee] 쪽지 캡슐

2000-06-10 ㅣ No.870

부제. 18년간의 짝사랑이야기.

 

 

철민이는 방학동안 남들 다가는 학원도 다니며 열심히 놀았다. 간혹 찾아오는

지윤이와도 잘 지냈고, 동엽이와도 자주 오고 가며 어린 시절의 우정을 다졌다.

그리고 추운 겨울날 별 생각없이 열심히 공도 던졌다.

학원을 다니면서 길 가다 현주를 마주친 적이 몇 번 되지만 그는 인사도 제대

로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지나치기만 했다.

 

방학이 끝났다. 짧은 이월달은 금방 지나갔다. 철민이가 현주를 더욱 어려워 하

게된 계기가 발생했다. 바로 우등상 수상 문제였다. 철민이는 우등상을 받지 못

했다. 우등상은 현주와 지윤이를 비롯한 열명이 수상했다. 철민이는 거기에 없었

다.

"너, 우등상 못 받았구나."

지윤이가 위로차 철민에게 말을 붙혔으나 철민은 냉담했다. 오년간 학교를 다니

면서 처음으로 우등상을 받지 못했다는 것보다 현주라는 아이와 멀어지는 자신

을 느끼면서 철민은 우울했다. 어린 놈이 상당히 생소한 문제로 마음을 다쳤다.

"넌 받아서 좋겠다."

"너도 공부 잘하잖아. 너무 신경 쓰지마."

지윤이는 안스런 말투였으나 철민이의 답은 비꼬는 투였다.

"넌 더 잘해서 신경 쓰이냐?"

"근데 반장이 우등상을 받은게 이상하다. 너보다 성적이 안좋았는데..."

"반장이라서 받나 보지 뭐."

"그런가? 그래도 기분 나쁘다."

"넌 받았으면서 뭐가 기분 나빠?"

"반장 엄마가 어머니회 이사라서 그럴거야."

"너네 엄마도 어머니회 이사잖아."

"너무 기분 나빠 하지마. 우등상 못받아도 나는 반장보다 철민이 네가 훨씬 좋

아."

"아휴, 됐다. 니 자리 가라."

철민이가 한숨을 쉬며 지윤이의 말을 돌려 받았다.

"나는 개근상 받아 기분 좋은데..."

옆에서 지윤이와 철민이의 말을 듣던 동엽이가 딴청 부리듯 말을 뱉었다.

 

철민이가 우등상을 받지 못하고 집에 돌아 갔지만 그의 부모님은 별 다른 반응

을 보이지 않았다.

"국민학교 때 우등상 그게 뭐 별거냐. 나중에 잘하면 되지."

돌아 앉은 철민의 아버지가 담배를 피며 약간은 서운한 말을 뱉은게 전부였다.

 

삼월달이 되고 철민은 국민학교 시절의 마지막 해를 시작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보는 오학년 때의 담임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싫은 느낌으로 잊혀져 갈 것이다.

"음, 일반에는 성현주, 박지윤, 배준용, 이현철, 박현정, 이슬이, 그리고 김철

민이다."

담임이 반 배정을 하면서 첫번째 반에 들어갈 학생들의 명단을 불렀다. 두 명

의 방긋 웃는 얼굴이 있었다. 철민이와 지윤이였다. 철민이는 현주와 다시 같은

반이 된다는 것에 얼굴이 밝아졌고, 지윤이는 철민이와 같은 반이 된다는 것에

즐거워 했다. 동엽이는 그저 멀뚱한 표정이다.

"철민아 우리 또 같은 반이다. 호호."

지윤이가 철민이의 허리를 찌르면서 즐거운 말을 건네 주었다.

"그래. (현주도 같은 반이다 하하.)"

철민이는 지윤을 보는 듯 고개를 돌리고 현주의 표정을 살폈다. 현주는 현철이

와 서로 손뼉을 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다소 언짢게 눈에 들어 왔으나 그것보

다 현주가 자기 반이 된다는 기쁨이 더 커 철민은 웃을 수 있었다.

 

육학년 첫날은 오학년 1반에서의 조례겸 종례를 끝으로 시작 되었다. 철민은 지

윤과 나란히 육학년 1반으로 들어 갔다. 자기 뒤로 현주가 따라 오고 있다는 것

을 느끼며 말이다.

철민은 오학년 때 앉았던 자리와 비슷한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한 분단 건너

바로 옆에는 지윤이가 앉았고, 지윤은 제법 친했던 현주와 짝이 되어 앉았다.

"야이 씨, 니가 왜 여기 앉아?"

"나? 너랑 짤짤이 패였잖아."

"나 이제 짤짤이 안해 임마."

"이 새끼 대게 비싸게 구네."

"키도 별로 안 큰게. 왜이리 뒤에 앉아?"

"앉은 키는 크단 말이야."

철민이 옆에는 간혹 같이 돈따먹기를 했던 같은 반 준용이가 앉았다. 반에 학생

들이 모두 차고, 선생님이 들어 왔다. 학생들을 감쌀 줄 알고, 잘 생기고 더군다

나 총각인 남자 선생이 삼반의 담임이었다.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특히 작

년에 일반이였던 학생들의 표정이 제일 밝았다.

자리 배정이 있었지만 철민과 준용, 그리고 지윤과 현주의 자리는 변하지 않았

다. 철민의 뒤에는 그가 탐탁하게 생각지 않았던 현철이가 앉았다.

"야, 김철민 잘해 보자."

"뭘 잘해? 잘해 봐라 그래."

현철이가 철민의 등뒤에서 말을 건네자 철민은 특유의 냉담한 어조의 답을 보냈

다. 철민이가 그런 냉담한 말을 건넨 것은 자기의 우등상을 가로채 가 버린 것보

다 현주와 친하다는 이유가 컸다. 철민의 덩치가 오학년때 보다는 많이 커졌다.

현철이와 덩치 차이가 많이 줄었다. 지윤과 현주와의 키차이도 상당히 줄여졌

다.

"철민아, 올해도 잘 지내자."

"그래."

지윤이가 바로 옆 분단에서 철민에게 말을 건넸다. 철민이는 답을 해 주기는 했어

도 옆으로 고개를 돌리지는 못했다. 지윤의 옆에는 현주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

다.

 

육학년 때의 담임은 오학년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이튿날 반장 선거에서 바로

드러났다. 담임은 반장 출마에 제약을 두지 않았다.

"반장 할 사람. 아무나 반을 위해서 열심히 뛰어줄 사람이면 된다. 추천하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라."

담임의 말에 여기 저기서 손을 들었다.

"선생님. 철민이를 추천합니다."

지윤이가 손을 번쩍 들더니 철민이를 추천했다.

"야이씨. 나 안해 임마."

철민이는 지윤이의 허리를 치며 거부 반응을 보였으나 담임이 그냥 철민이의 이름

을 칠판에 반장 후보 명단으로 적어 버리고 말았다.

반장 후보에는 모두 여섯명이 나왔다. 묘하게도 오학년 때 반장을 했던 사람이

세명이나 되었다. 전교 부회장까지 했던 녀석도 있었다.

여자 부반장 후보에는 현주와 지윤이가 나란히 후보로 지명되었다. 현주가 지윤

이를 추천했고, 현철이가 현주를 추천하였다. 여자 부반장 후보는 그 둘 말고 둘

이가 더 있었다.

투표가 거행되었다. 철민이는 약간의 갈등은 있었으나 별로 망설이지 않고 현주

를 적었다. 반장의 이름에다가는 자기 이름을 적지 않았다. 아니 적지 못했다.

그냥 작년에 전교 부회장을 했던 아이의 이름을 적었다.

 

투표 결과가 나왔다. 반 학생의 거의 반이 작년에 전교 부회장을 했던 아이에

게 표를 던졌다. 현철이는 낙담했다. 자신의 표가 6표 밖에는 나오지를 못했다.

현철이는 반장에서 탈락되었다. 부반장은 바로 철민이가 되었다. 철민이는 자기

표가 열 넷표나 나왔다는 사실이 믿어 지지 않는가 보다. 얼떨떨해 했다. 그리

고 현주와 같은 부반장이라는 사실은 더 실감나지 않는가 보다. 현주는 지윤이

를 두표차로 누르고 부반장이 되었다. 철민이가 지윤을 찍었다면 재 투표에 들어

갔을 뻔 했다.

철민이는 현주와 친해 질 수 있다는 계기가 마련 된 것이라 기뻐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단 일주일 동안의 일이었다. 현주가 전교 부회장 선거에 나가 당선이

되어 버렸다. 다시 현주는 철민의 생각에서 벗어나 버렸다.

"나, 현주가 부회장 되는 바람에 부반장 됐다. 호호."

지윤이가 현주 대신으로 부반장이 되었다. 지윤은 철민과 같이 학생회에 나간다

는 사실에 기뻐했으나, 철민은 또 냉담했다.

"그래 넌 좋겠다."

 

첫 전교 학생회의에서 철민은 그냥 평의원이 되어 한자리를 차지 하기는 했지

만 전교 회장의 말을 받아 안건을 칠판에 적고 있는 현주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

만 봐야했다.

아침 전교 조례때도 철민은 운동장에 반 아이들과 함께 섞여 교단 옆에 서 있

는 전교 회장과 현주를 멀리서 지켜 보기만 했다. 현주는 여전히 철민의 마음속

에서 아주 높아 보이는 존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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