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성당 게시판

달아, 달아...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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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 [sugi] 쪽지 캡슐

2000-06-02 ㅣ No.1572

 

술을 안 마신지 2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래도 가끔은

님의 향기 만큼이나 알코올내가 나를 심히

유혹을 할 때가 더러는 있다.

 

주당 이라고 할 만큼 자주 그리고 많이 마시지는

못하지만 그 분위기에 취하다 보면 어울려

사는 사람들의 삶의 향기와 기타 여러가지를

느낄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 잠깐 내린 비 때문인지

술 생각이 간절했으나 한번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푸다보면 여러날을 고생할 것이

뻔한 관계로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기는 왔는데....

 

잠이 안 온다.

술 때문인지 ....생각해 봐도 서운하다.

 

참는자에게 복이 있나니..

이 경우에도 해당이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베란다에 나와 이미 짙은 회색빛의 하늘을

쳐다본다.

아! 달이 하늘에 떠 있지.

 

한동안 달님이 저녁하늘을 지킨다는 것을 잊었다.

 

......그런데

오늘은 없다. 숨었나? 나 보기 싫어서...

 

오래전의 일이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동동주라는 것을 마신 그날

혀끝에 감기는 찰진 맛과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릴때마다

속을 훑어 나가는 듯한 느낌이 너무 좋아서...

 

"어허야, 둥기둥기"를 부르며(내가)...마시다 보니,

어스름 달빛 아래 유유자적 뱃놀이를 하며

세상의 시름을 덜어냈던 선조님들의 흉내를 내어보자니

진짜 기가 막혔다.

 

자주 오라는 주인 아저씨의 미소와 친절이

마신 술의 양과 비례한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동동주는 나중에 취기가 오른다는 사실도....

 

멀쩡한 척을 하며 집에 돌아와 샤워를 무사히 끝내고...

 

더운  여름철 인지라 엄마와 나는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 제치고 마루에서 잠을 자는데...

 

이런, 천정이 나를 중심으로 탑돌이를 하는 양

빙빙 돌기 시작하는데...그 모습이 왜 이리 우수운지.

 

조금씩 실실 웃다 엄마에게 들킬것 같아 참는다고

베란다 넘어 하늘을 보니

’휘엉청’

보름달이 나를 집어 삼킬듯 커다랗게 떠 있는것이 아닌가.

 

순간 나는...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든 달아.."

 

바이브레이션과 꺾어지는 부분 까지도 절묘하게 노래를

한 것이다.

 

............퍽.....퍽..........

 

그날 저녁

입, 수건으로 틀어 막히고 엄마한테 뒈지게 맞았다.

그나마 아빠한테 들키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노래조금 불렀다고 오뉴월 개 패듯이 팰것은 뭐람...

 

후훗...이게 뭔 자랑이라고 이곳에다 떠 벌리는지.

그래도 생각할 수록 우수운 일화다.

 

지금도 나는

잠시라도 바보짓을 안하면 남들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나도 어색하다.

 

그런 나를 가엾이 여겨서인지 친구들은

"그런 네가 재밌어서 더 좋아"라는 말로 위로하려 들지만

나도 조금은 우아하고도 단아한 멋을 가진

여성이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또 한번 닫힐 뻔한 나의 믿음이 나의 바보성에서

비롯되었지만

여문 격려 덕택으로 짐짓 날개짓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누군가 나를 위하여 기도를 해 줄것이라는 생각이

참으로 가슴 든든하다.

천군만마를 얻은 장수일지라도 싸움의 승패를

가늠할 수 없을 진대..

난 이미 이긴 것 같으니...

 

나도 오늘부터는 ’넘’을 위하여 기도 해야겠다.

그러다 보면

차츰 나아지겠지....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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