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돌아보면 모두가 그리움인 것을 (부끄러운 고백 제2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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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준 [bopark] 쪽지 캡슐

2005-06-13 ㅣ No.5522

결혼한 지 6년이 지났건만 아직 아이가 없던 우리 부부는

남의 집 살이를 할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내 집이라고 마련한 아파트에 아이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고

텅 비어있는 빈 방을 볼 때마다 속이 상했지만

서로가 내색은 하지 않았어도

서서히 냉기류가 흐르기 시작하였고,

사소한 말다툼이라도 하고 나면 그 후유증이 풀리기에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였지요.

 

 집을 방문하는 사람마다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이들은 어디에 있느냐?'며

 말못하는 가슴에 못을 박곤 하였었지요.

 

그 무렵 친구의 빚 보증을 서 주었던 것이 잘못되어

저의 집에 가압류가 들어오고,

보증을 서 주었던 사실마저도 몰랐던 내자는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고,

어렵사리 마련한 내 집마저 경매로 넘어가게 생겼으니,

어느 부인이 남편을 이쁘게 봐 주리오?

 

저도 가압류가 들어오자 눈앞이 캄캄했고,

어느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자존심이 상했고,

돈 한푼 만져 보지도 못한 채,

고스란히 갚아줄 일을 생각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지요.

 

이사를 오기는 했지만

저는 중계동성당 신자들과 왕래가 없었고,

날마다 천근만근 눌러 내리는 돈 문제 때문에 속을 끓여야 했으니

답답한 마음에 나에게 도움을 받았던 친구의 집을 찾아가

역으로 가압류를 하기 위하여 확인해보니

다른 사람들이 가재도구에 가압류를 모두 해놓았는데,

무려 5명의 채권자가 가압류를 해놓았고,

그의 자동차에는 무려 25건의 압류가 되어 있었으며,

 

그의 형님댁을 찾아가 보니 자신도 "동생에게 당했다"며

"동생 취급을 하지 않으니 돌아가라"는 말을 듣고

힘없이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겠습니까?

 

결혼할 때 함을 짊어지고 들어가 주기도했던

친구를 이렇게 배신하다니 ...

어처구니가 없었고,

그의 처갓집에도 수소문해보니

장인의 "땅을 설정해서 돈을 쓰고 갚지 않아

장인이 월 00여만 원의 이자를 대신 갚아주고 있는데,

"이제는 사위로 생각지도 않거니와 딸도 보기 싫다"며,

"굶어죽지는 말라고 일년에 쌀 한 가마니만 올려 보내주고 있다"는

말에 ,

 

'빨리 포기해야 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감정이 있는 사람인지라

배신감에 치를 떨어야 했지요.

 

남정네들이야 바깥 일에 바쁘다 보니

동네에서 누가 성당을 나가는지 잘 몰라도

자매들은 금새 알아 차리시고,

어느날 여성 구역장님께서 방문을 하셔서,

우리 집이 처해 있는 상황을 알게 되었고,

"이사를 안 가게 기도를 해주시겠다"는 제의를 하셨지요.

그 후 동네에서 성당을 나가고 있는 자매들이 여러분 오셔서

9일 기도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내자를 통해서 듣게 되었지요. 

 

저는 말했지요.
"집 한 채를 날리고 길거리에 나앉아야할 판인데

기도로 해결될 일도 아니고,

복권이라도 하나 당첨되어야 해결될 일이니,

하느님이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니고,

빚 갚아 주는 것도 아닌데

쓸데없는 짓거리(?)들 하지 말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천벌(?)받을  억지를 부리기도 하였지요.

그러나 저의 말에는 아랑곳 없이 9일 기도는 계속 되었고,

저는 친구에 대한 배신감에 이를 갈고

복수의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그 친구에 대한 미움과 저에 대한 어리석음에 대하여

통렬한 자책으로 날마다 술에 찌들어 생활하다보니,

건강은 극도로 악화되어 갔고,

얼굴은 초췌한 모습이었으니

눈은 퀭하게 들어가고,

광대뼈는 튀어 나오고,

눈빛은 살기로 번뜩였으니,

그것이 바로 마귀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였지요.

 

그런데
9일 기도를 마칠 무렵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고,

빚 보증을 서 주었던 00은행을 찾아가

대출 담담자에게

"제가 보증인인데 주채무자를 대신하여 갚아 드릴터이니

필요한 서류가 무엇이냐?"고 묻자.

담당자가 말하기를

"은행생활하면서 이런 보증인은 처음본다"고 하기에

 

제가 말했지요.

"은행이 어떤 곳입니까? 

큰 도둑넘들에게는 다 떼여도,

서민들에게는 일 원짜리 하나 손해보지 않으려고 하는 곳인 줄 알고 있는데,

그냥 놔두면 연체이자만 계속 늘어날 테고,

그렇게 어리석은 행동은 하기 싫다"고 하였지요.

 

당시에는 정치자금이다 뭐다해서

온 나라가 일,이억에는 눈도 깜짝않고

몇 천억이라는 단어가 나와야 국민들이 조금 감각이 있었던 때였음.

 

그리하여 보증을 서 준 이후

이자를 단 일 원도 변제하지 않은 친구의 채무를

제가 몽땅 떠 안는데 필요한 서류를 꾸몄고,

0년여에 걸쳐서 친구가 썼던 돈을 모조리 갚아 주게 되었으니,

 

얼마 되지도 않은 월급 통장은 매월 마이너스를 면치 못했고, 

결혼한지 7년만에 큰 놈이 태어났으나

빚에 쪼들려 우유값마저 발을 동동 굴러야 했으니,

내자의 심정은 오죽했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못난 남편 때문에

고생한 내자와 큰 놈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지요.^^

 

(3탄은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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