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골 자유 게시판

짝사랑이야기[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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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성 [greenbee] 쪽지 캡슐

2000-07-04 ㅣ No.1013

부제. 18년간의 짝사랑이야기.

 

 

철민이는 휴가 기간 동안 현주와도 연락을 취하고 만남을 가졌다. 만남을 갖기

전 지윤에게서 느끼지 못한 설레임은 있었으나 설레임 만큼 편하지는 못했다. 자

기가 하고 싶은 많은 말들 중 한 것 보다 참고 절제한 것이 훨씬 많았다.

철민은 지윤과의 만남에서는 자기가 주인공이었으나 현주와의 만남에서는 왠지

제 삼자라는 느낌을 가져야 했다. 그래도 철민은 현주를 만나고 나서부터 예전처

럼 현주가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야구 하는 거 힘들지 않니?"

"육체적으론 힘들지만 해 볼만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오히려 예전보다 편

해."

"야구가 네 적성에 맞나 보다. 열심히 해."

"그래."

"우리 오빠는 야구 보다는 지금 학과에 충실하는 게 낫겠지?"

"나는 니네 오빠를 잘 모르는데? 그래도 세울대니까 학과 공부에 미련을 버리지

않으면 좋은 삶을 보장 받을 수 있다고 봐."

"다니는 학교 가지고 너무 그러지 말라니까."

"알았어."

"참, 지윤이가 많이 예뻐졌지?"

"응. 너에게 화장하는 법 배웠다고 그러더라."

"별로 가르쳐 준 것 없어. 지윤이 화장품 모두 네가 사주었다며?"

"응? 내가 사주기 전에도 화장품 있었는데."

"흠, 조금 부럽네."

"너도 사줄까?"

"됐어."

철민이는 그냥 예의상 사양하는 현주의 말에 약간 새침해졌다.

"사줄 수 있는데..."

"그럼 나중에 사주고 싶은 생각이 들면 향수나 하나 사 줘."

"그,그래."

"정말 너 야구하는 거 지윤이에게 얘기 하지 않을 거니?"

"지윤이에게 왜 그렇게 신경을 쓰냐? 꼭 알려야 되나?"

"너네 둘이 사귀는 거 아냐?"

"엥? 사귀다니?"

"서로 연인 사이 아니냐구?"

"친구 사이지 무슨..."

"그럼 네가 야구하는 거 지윤이에게 빨리 알려."

"말이 어렵다."

"어렵니? 그 일 때문에 지윤이가 섭섭한 감정 생기지 않게 하란 말이야."

"그것도 어렵다. 그 일이 뭘 뜻하냐?"

철민이는 현주가 지윤이를 많이 의식한다는 것을 느꼈다. 철민은 그 사실에 현주

와 지윤을 더 따로 생각하고 싶었다.

"언제 우리 지윤이랑 같이 한 번 봐."

"지윤이랑 우리 셋이?"

"그래."

"나중에..."

 

철민은 다시 야구부로 돌아 왔다. 짧았던 휴가 기간이 끝나고 아직 뜨거운 햇살

이 내리 쬐는 운동장에서 철민이는 땀을 흘리며 일류 야구 선수가 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 떼고 있다.

 

팔월달이 거의 끝나는 무렵에 철민이네는 년쎄대를 방문했다. 년쎄대 야구부와

연습 경기를 갖기 위해서였다. 철민이는 연습 경기라도 자신은 출전 기회를 가지

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철민이는 선발 통보를 받았다. 철민이는 많이

떨렸지만 한 없이 설레였다.

경기에 앞서 양팀 선수들은 서로 마주 보며 인사를 했다. 철민 자신의 바로 맞

은 편에는 올해 신입생이면서도 많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고교 서열 일순

위, 여름에 있었던 대회에서 자기 팀의 결승 진출을 무산시켰던 그 놈이 서 있

다. 키는 철민이 정도였으나 덩치는 훨씬 컸다. 그러나 철민이는 별로 기가 죽

지 않은 모양이다.

"니가 임싼동이냐?"

"그렇다."

"그렇다? 너 몇학번이야 새꺄?"

"새꺄? 그래 왜 처음부터 반말이야?"

대치하던 상태가 좀 더 길었다면 쌈 날 뻔 했다.

 

연습경기라 한량대도, 년쎄대도 거물급은 출전 시키지 않았다. 후보 선수들의

전력 테스트가 주 목적이었다.

"야, 김철민."

감독이 선발 내정 된 철민이를 불렀다.

"네! 선발 김철민."

철민이는 의기 양양하게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너에게 아직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냥 네 빠른 공으로 쟤들 기만 죽

여 주면 된다. 알았어?"

"알았습니다."

 

년쎄대가 먼저 공격을 했다. 철민이는 아직도 직구 밖에는 던질 수 없었으나 연

습을 하면서 컨트롤은 상당히 향상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연습 경기라도

실전은 달랐다. 철민이는 투구 연습을 하며 가지지 못했던 긴장감을 느꼈다.

 

"플레이 볼."

심판인지 학생인지 잘 구분이 안되는 자로 부터 야구 경기가 시작 됐음을 통고

받은 철민은 심각한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 선 타자와 포수를 째려 보았다. 눈싸

움에서 부터 상대 기를 죽이려는 작전이었다.

포수의 사인은 안쪽 낮게 빠른 볼을 요구 했다. 타자가 부담 스럽다.

’생각대로 들어 갈 수 있을까?’

 

철민이는 공을 힘껏 포수가 요구한 코스로 던졌다. 공은 타자가 맞을 정도는 아

니었지만 철민이 생각한 것 보다 더 타자 쪽으로 치우쳤다. 타자는 접해 보지 못

한 빠른 공 때문에 뒤로 나자빠 졌다.

’뭐여 저새끼. 맞지도 않았는데...’

 

철민이는 첫타자를 아주 쉽게 요리 했다. 철민이가 공을 던질 때마다 타자는 꿈

적 놀라며 뒤로 물러 나기 일쑤였다. 철민이는 선수가 되고 처음으로 타자를 삼

진 처리 시켰다.

상대편 감독이 자신을 겁나게 째려 보았다. 자기 팀의 덕아웃에서 선수들이 철

민이를 격려해 주었다.

"잘한다 김철민."

박찬오도 기쁘게 환호성을 질러 주었다.

’학번도 낮은게 반말했어. 너 나중에 보자.’

철민이는 기분이 좋았다.

 

철민이는 이회까지 자신의 빠른 공으로 년쎄대를 삼자 범퇴 시키면서 기를 죽였

다. 덕아웃에서 자신을 잘한다 추켜 세웠다.

"야, 너 실전인데도 별로 떨지 않고 잘한다. 타자가 들어서고 안 들어서고 그

느낌은 천지차이인데 초짜가 제법인데..."

"형은 빠른 공 때문에 직구 만으로도 대학 야구에서는 통하겠는데요?"

칭찬은 초짜에게는 약 보다는 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삼회부터 철민이는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런데로 컨트롤 되며 타자의 헛스윙

을 유도했던 철민의 공이 포수가 잡을 수 없을 정도로까지 엉망으로 변했다. 타

자들도 방망이를 휘둘기 보다는 기다렸다. 연속 세 타자 포볼을 내 주었다.

한 타순이 돌고 다시 일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 섰다. 철민은 잠시 진정을 하고

어깨에 힘을 뺐다. 그리고 천천한 공을 던졌다. 타자가 공을 받아 쳤다. 하지만

첫타석에서 겁을 많이 먹었던 그 타자가 친공은 빗 맞고 투수 정면으로 때굴 때

굴 굴러갔다. 아주 쉬운 공. 더블 아웃을 시킬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철민

은 초보였다. 수비 연습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주 미숙했다. 철민은

자신에게로 공이 굴러 오자 순간 당황을 했다. 한 번 공을 잡다 놓치고 이미 홈

베이스 쪽은 아웃 시키기 힘들었으나 철민은 홈으로 공을 던졌다. 그것도 어깨

에 힘이 들어 가 있는 상태에서... 공은 포수가 잡지 못하고 뒤로 빠졌다. 공이

뒤로 빠졌으면 바로 홈으로 수비 보조를 들어 갔어야 했지만 철민은 그 자리에

서 서서 글러브로 얼굴을 가린 채 쪽만 팔고 있었다. 실수 하나로 주자 세명이

모두 홈을 밟아 버렸다. 강판!

 

철민은 계속 글러브로 얼굴을 가린 채 덕아웃으로 들어 갔다.

"아직 멀었다. 김철민."

감독은 철민에게 단지 그 말만을 해 주었다.

 

약간 기가 죽어 앉아 있는 철민에게 투수 코치와 다른 선수들은 그래도 잘했다

며 격려를 해 주었다. 철민은 자기가 아직 멀었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좋은 경험

했다고 자책할 수 있었다.

"내가 그래도 안타는 맞지 않았다 그치?"

철민은 자기 옆에 앉아 있던 찬오에게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맞아요. 처음 치고는 상당히 잘 한 거야."

 

한량대는 년쎄대에게 저번 4강전 패배를 설욕 했다. 철민이 덕택이었다. 한량대

는 철민이 다음으로 계속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들을 내 보냈다. 6회 쯤에는 찬

오도 등판을 했었다. 년쎄대 타자들은 자기 몸 쪽으로 오는 공에 이상하게 민감

한 반응을 보이며 움찔했다. 처음 철민이 공을 접하고 놀란 가슴 때문이었다. 철

민이보다 덜 빠른 공에 눈이 익기 보다는 철민이 공에서 느낀 무서움으로 다음

투수들에게 기를 펴지 못했다.

철민이는 알 지 못했지만 년쎄대 감독은 철민에게 상당한 느낌을 받았다. 경기

가 끝나고 한량대 감독에게 철민이를 의식한 것 같은 말을 뱉었다.

"상당한 원석을 한 명 발견하신 것 같으이."

"그런가요? 하하. 아직은 써 먹기 힘들것 같습니다. 하여간 오늘 좋은 경기 가

졌습니다."

 

철민은 삼회까지 공 60개 이상을 던지 면서도 어깨에 별로 무리를 느끼지 못했

다. 체력적으로 철민은 성장해 있었다. 그것을 철민은 느끼지 못했지만 투수 코

치는 이미 다 계산해 놓은 모양이었다.

"어깨 괜찮냐?"

"네."

"아까 경기에서 3회에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 간게 바로 보이더라. 자연스럽게

경기에 임할 수 있도록 마인드 컨트롤 해라. 삼일 뒤에 전력 투구로 공을 몇개

까지 던질 수 있는지 테스트 해 볼 참이니까 투구 연습 너무 심하게 하지 마라.

알았나?"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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