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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성월 특집 - 살아남은 자, 순교한 자, 기억하는 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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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1동성당 [suyu1] 쪽지 캡슐

2008-09-16 ㅣ No.10251

[순교자성월 특집] 살아남은 자, 순교한 자, 기억하는 자의 이야기 ② 해미 순교 성지

 

"천주님도 모르는 당신들 참 안됐소…"

 

박치운(朴致蕓) 요한

"장모, 장모 괜찮소?"

들쳐 업은 장모를 돌아봤다. 없는 형편에도 늘 정갈하게 차리던 분이었는데, 예전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산발인 머리, 핏물이 배고 흙이 묻어 얼룩진 누더기, 옷 밖으로 삐죽이 나온 팔다리는 차마 볼 수 없을 만큼 앙상한 데다 멍과 피고름으로 엉망이다.

'지독한 놈들, 뭘 바라고 노인을 이 꼴로 만들어…'

안타까움에 입을 앙다물며 주변을 둘러봤다. 주위 사람 모두 살아있는 사람이라기엔 몰골들이 말이 아니다. 듣도보도 못한 고문들을 당하면서 조밥 몇 덩어리 얻어먹고 수십일을 버텨낸 이들이다.

그나저나 어디로 가는 것일까. 옥에 빽빽하게 들어앉은 사람들을 끌어내 빨리 움직이라고 소리만 지르니 도통 영문을 알 수가 없다. 주욱 늘어선 사람들 틈에 끼어 움직이고 있으니, 이 곳 해미읍성으로 발을 들인 날이 떠오른다.

홍주에서 해미로…

무진년(1868년) 4월, 세계를 떠도는 장사치 오페르트라는 자가 가야산 대원군 부친(남연군)의 묘를 파헤치다 달아났다는 소식이 홍주(현 충남 홍성군) 원머리까지 들려왔다. 서양인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모두 천주교인에게로 퍼부어지는 때라, 미천한 시골 농부인 나 역시 불길한 조짐을 느꼈다. 얼마나 더 흉악한 일이 벌어지려나….

5월 초2일, 마을 어귀에서 들리는 '천주교인 나오라'는 갑작스런 외침에 집을 뛰쳐나왔다. 한참을 달아나다 포졸놈들의 포악한 손길에 머리채를 잡혀 바닥에 메쳐졌고, 곧 이어 들리는 비명 소리에 옆을 보니 장모가 쓰러져 있었다. 다행히도 다른 식구들은 어디로 달아났는지 보이지 않았다.

다가오는 포졸놈의 손에 들린 쇠못이 눈에 들어왔다. 벌써 누군가를 무수히 찌른 듯 쇠못 머리에는 시뻘건 핏자국이 묻어있었다. 맨살에 차갑게 와 닿더니 쑤욱 찌르고 들어오는 못, 생살이 깊게 뚫리는 생경한 고통에 몸서리치기를 수차례.

"네 놈이 천주교인이라 들었다. 또 다른 일당은? 네 놈에게 사교를 가르친 놈은 누구냐?"

"천주님을 따르는 데 일당이 어디 있소…. 혼자 섬기며 사는 것이오. 내게 천주님을 가르쳐주신 분은 이미 위주치명했다 들었소."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말했다. 여기서 발설하면 이미 달아난 교우들도 위험해진다.

"사교를 믿으면 새 이름을 얻는다지. 그럼 네 이름은 무어냐?"

아…. 천주님이 주신 내 이름, 나를 새로 태어나게 한 이름….

"나는…, 내 본명은 …, 요한이오."

그리곤 포졸들의 손에 이끌려 고개를 넘어 해미로 들어왔다. 피를 쏟아내는 상처는 뜨거웠고 온 몸이 떨리고 있었다. 앞서 끌려가는 장모와 함께 십계명을, 주모경을 외며 마음을 다잡았다.

'두렵지 않다…. 기쁘지 아니한가. 이 순간을 기다리며 천주님을 믿었다. 두렵지 않다….'

해미읍성 문을 나서서…

1천 4백여 명의 군사를 거느린 영장이 지내는 곳이라 들었었지만, 읍성에 처음 들어섰을 때 5만 평은 족히 되어 보이는 그 넓이에 놀랐었다. 그리고…. 그곳을 가득 채운 비명과 피 냄새에 진저리쳤었다.

'여기가…, 말로만 듣던 지옥이구나….'

높은 담벼락에 둘러싸인 읍성, 그 중앙에 있는 옥사(獄舍)에 갇혔다. 매일 끌려 나가 매질을 당하고, 같은 물음들에 답해야했다. '일당이 누구냐', '사교를 퍼뜨린 자는 어디에 있느냐'…. 또 매일 반복되는 '성교(聖敎)를 버리면 풀어주겠다'는 유혹들.

고통에 정신이 아득해질 즈음이면 옥사로 돌아왔고, 살아남은 교우들과 함께 성모님을, 천주님을 찾으며 밤을 보냈다.

그러기를 20여 일, 해가 기울어갈 즈음이면 좀처럼 나오게 하는 일이 없었는데 오늘은 옥사 안에 있던 모두를 끌어내고 있다. 여(女)옥사에서도 사람들이 끌려 나왔다. 부축을 받으며 나오는 장모를 발견하여 들쳐 업고는 그들이 떠미는 대로 발길을 재촉했다.

옥사 바로 앞에 서 있는 커다란 호야나무(회화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한쪽 나뭇가지에 철사줄로 머리채가 묶인 채 걸려있는 사람들. 그 상태로 얼마나 호되게 당했는지 나무 밑에는 핏물이 흥건히 고여 있다. 코를 찌르는 피 냄새를 맡으며 서문으로 다가가니 문 좌편에 형체도 알 수 없게 엉망이 되어 엎어져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면서 그 수십 명 사람들, 아니, 그 수십 구의 시체들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토포 병방 박영완이라는 자가 그들을 넘나들며 불 붙은 심지를 하나하나의 안구에 대어보고 있었다. 아직 덜 죽은 이가 있으면 마구 밟아 숨통을 끊어놓는 중이다.

죽기 직전 뱉어내는 헐떡임과 뼈가 우지끈 부서지는 소리가 귀에 박힌다.

그 앞에서 성호를 긋는 교우들에게 무자비한 발길질이 가해졌다. "빨리 걸어, 빨리."

살아서는 나올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해미읍성 서문을 벗어나니 불안감이 한층 더하다. 하늘에서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해미천 다리를 건너 조산리 숲에 이르렀을 때에야 행렬이 멈춰섰다. 그 앞에 있는 큰 구덩이. 설마, 설마… 이 많은 사람들을?

그 때 한 여자가 울부짖으며 소리친다. "예수 마리아, 저희를 돌보소서…!"

내 등에 죽은 듯 늘어져 있던 장모가 그 소리를 따라한다.

"예수 마리아, 예수 마리아…."

구덩이를 보고 눈물 흘리던 이, 그대로 주저앉아 버린 이 등, 모두가 그 소리를 따라했다.

"예수 마리아, 저희를 돌보소서…"

갑자기 미친 듯 앞으로 달려나가는 줄 뒤편에 있던 이들.

"구덩이에 나를 먼저…! 이 몸뚱이가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소. 기다릴 수가 없소…. 내 차례를 기다리다간 천주님을 외면하게 될지도 모르오. 보내주시오!"

형역들이 귀신들린 이들이라 욕하며 그들을 구덩이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줄 앞의 이들부터 하나씩 구덩이로….

드디어 형역이 나를 보며 앞의 이들에게 했던 것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성교(聖敎)를 버린다 말하라. 그러면 당장 이 자리에서 풀어주마, 살려주겠다."

장모를 부축하여 구덩이 바닥으로 내려가 똑바로 섰다. 목숨을 구걸하듯 엎드려 죽기는 싫었다.

"당신네들…. 참 안됐소…. 천주님도 모르고…. 천주님 버리고 구차하게 목숨 건져 무얼한단 말이오? 죽이시오."

그리고…. 사방에서 흙이 쏟아져 내렸다. 정강이를 넘어 가슴팍, 목까지… 흙이 차오른다. 움직일 수가 없다. 크게 숨을 들이쉬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흙은 더 차올라….


* 취재후기 - 해미성지 & 박치운

순교자 성월 취재를 위해 충남 서산시 해미면 '해미성지'를 찾았다. 이름이라도 남아있는 이는 박취득, 이보현, 인언민 등 100여 명 남짓이나 정확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순교했는지 알 수 없는 곳.

사람이 이토록 잔인해 질 수 있음을 절실히 깨달으며 수많은 남형(濫刑)들을 살피다가, 생매장 당한 이들의 기록에 눈이 갔다. 고문을 해야 하는 군졸들이 지쳐가고 사체 처리가 어려워지자 생각해 낸 '모조리 묻어버리는' 방법.

수십 혹은 수백에 달할 지도 모르는 생매장자 중 단 3명의 기록을 짧게나마 찾을 수 있었는데, 그 중 박치운(42. 요한)과 그의 장모 문 마리아(61)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예수 마리아'라는 교인들의 기도 소리를 잘못 알아들은 주민들이 '여수 머리'라 부른 것이 그대로 지명이 되었다는 '여숫골'.
그곳을 둘러보며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엇을 위해 이토록 수많은 이들이 피를 흘린 것일까.'

그 피 위에서 후손으로 살아온 우리는, 이 질문에 무어라 자신있게 답할 수 있을까.

이나영 기자 lala@catholictime.org

[기사원문 보기]
[가톨릭신문  2008.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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