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직자 친구도 있고 수도자 친구도 있습니다. 젊었을 때 그들과 만나면 몇 마디 안부를 묻고는 더이상 할말이 없었습니다. 서로 사는 것이 달라서 그런가 했지만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않고 마치 무엇을 주어야 할 의무만 있는 듯이 행동을 하곤 해서 만나면 금세 지루해지기 일쑤였지요.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해서 한치라도 허튼소리를 할까 조심했지만 확신보다는 갈등이 커보였습니다. 세련되게 자신의 성소에 대한 기쁨을 말하곤 했지만 나를 감동시키지는 못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만나니 점점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늘고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삶에서 발견한 보물을 쉽고 재미있게 단순한 언어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은 우리 나이가 마흔이 넘어서부터였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삶에 배짱도 생기고 자신에 대해서도 관대해지는 만큼 세상을 보는 것도 관대해진 듯했습니다. 세상을 보는 시각은 더 날카롭고 정확했고요. 그리고 자신이 처한 현실을 보는 것도 구체적이고 솔직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이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에 무엇을 놓아야 할지, 무엇을 잡고 있어야 하는지 아는 이의 솔직함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들만의 영적 보물을 나에게 나누어주고 싶어하는 친구들을 떠올립니다. 그들이 그 보물을 사기 위해 치르는 고단함 안에 담긴 행복을 그려봅니다. 마치 진주를 발견한 장사꾼이 자신의 것을 다 팔아 진주를 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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