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동성당 게시판

홍신부님 강론(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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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경

2002-07-13 ㅣ No.4320

오늘부터 매 금요일에는 마태복음을 가지고 강론을 하려고 합니다.

제가 성경에 대한 강론을 하는 관점은 ’영성 심리학적 관점’입니다.

성서에서 예수님이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셨는가-- 하는

’치유의 관점’에서 강론을 하겠습니다.

이것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잘잘못을 가리는 ’영성 신학적 관점’이나

믿음에 대한 강론과는 다르지요.

 

마태복음 첫장을 보면 무엇이 나옵니까?

족보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족보가 나오지요.

마태복음사가는 왜 그 재미없는 족보 이야기를 첫장에 길게 써 놓았을까요?

마태오,마르코,루가,요한 이 네 복음서는 다 교리서였습니다.

전교용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복음서들이 대상으로 하고 있는 예비신자들이 다 달랐습니다.

마태오복음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것이었고,

당시의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메시아는 다윗의 가문에서 나온다고 믿고 있었지요.

그러니까 마태오복음사가는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라는 족보를 만들어서 올려놓은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정말 메시아구나-- 하고 믿을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여기서 족보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족보란 그 사람의 과거를 말합니다.

과거란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주제는 <과거와 영성생활>로 정했습니다.

 

과거란 어떤 것인가.

과거도 쓸모가 있나요-- 라고 질문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내가 살아왔던 과거가 언제 유용하게 쓰이는가?

내 마음이 얼마나 건강한가를 측정할때 과거가 쓰여집니다.

여기 계신 분들중에

자신의 과거를 하나도 숨기지 않고

부모님의 것까지 부끄럼없이 얘기할 수 있는 분, 혹시 계십니까?

그럴수 있다면 대단한 분인 겁니다.

 

사람들은 대개 과거를 말하기 싫어합니다.

부끄럽기 때문에...

이렇게 자신의 과거를 부끄러워하는 분들이 보이는 반응은 대개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옛날일을 자꾸 미화해서 얘기하는 경우입니다.

-- 내가 지금은 이렇지만 옛날엔 한가락 했다

-- 우리 부모님이 지금은 이렇지만 옛날엔 안그랬어.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의 집안내력을 막--이야기하는 분들이 있지요.

대개 과거가 부끄러운 분들, 과거에 뭔가 안좋은 일이 있었던 분들입니다.

그걸 남들이 캐묻기 전에 자기가 먼저 색칠을 해서 얘기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과거를 들먹이는 것 자체를 굉장히 싫어하는 경우입니다.

옛날에 뭘 했냐고 그러면 대답도 안합니다.

 

자기 과거를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자기 과거를 숨기거나

이렇게 자기 과거를 보지 않으려고 하면 어떤 현상이 생기는가?

마음의 힘이 약해져갑니다.

마음안에 분노와 좌절이 자꾸 생겨나고 자신감이 없어집니다.

’저 사람이 내 과거를 알면 어떡하지----’

그것이 자꾸만 나를 위축되게 만듭니다.

문제는

과거라는 것이 내가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잘 숨겨지지 않고

잘 숨겨놨다 하더라도 이것이 짐처럼 붙어다닌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우울한 사람들은 표정이 어둡고 얼굴이 무거워보입니다.

과거라고 하는 짐을 머리에 지고가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영적상담을 할때 처음에는 가벼운 얘기를 합니다.

그러다 횟수가 늘어나면서 자꾸 그 사람의 과거에 대해 물어봅니다.

과거를 자기가 자기 입으로 얘기를 해야지 과거라는 짐을 내려놓을수가 있습니다.

물어봐도 대답을 안하면 조금 시간을 두었다가 그 다음에 또 물어봅니다.

그 사람의 과거에 대해서 맨 마지막에 묻는 것이 바로 부모님입니다.

그 사람의 과거를 가장 많이 드러내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바로 부모님입니다.

내 부모님이 내 과거입니다.

-부모님과의 관계가 어땠냐.

-부모님중에 누가 밉냐.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내 부모님이

나랑 제일 많이 닮았습니다.

그걸 보여줘야 됩니다. 그런데 그게 시간이 많이 걸리지요....

 

사람들은 이런 말들을 많이 합니다.

-과거는 흘러간다---

-과거는 다 잊고 새롭게 살자---

그런데

과거란 것이 그렇게 쉽게 흘러가버리고 잊어버려 지는 것인가!

천만의 말씀입니다.

안 잊어버려집니다.

흘러가지도 않고 절대로 잊혀지지도 않는 것이 과거입니다.

과거란 정말 만만한게 아닙니다.

우리나라 말에서는 과거를 ’..였었다, 있었다...  옛날에 그랬었다...... 이렇게 표현하지요.

하지만 사실 과거는 ’였었다--’ 가 아니고 ’이다--’입니다.

옛날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렇다----

왜 그럴까요?

사람은 기억에 의해서 사는 존재입니다.

내가 경험해가지고 기억했던 것들이 내 몸에 학습이 되면서

그 학습된 것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냥 갑자기 그렇게 새롭게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과거에 누적된 기억들에 의해서 살아가는 존재인 것입니다.

 

물리학에서도 관성의 법칙을 얘기하지요.

물건을 한번 밀면

그 밀은 힘, energy에 의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과거가 꼭 그렇습니다.

과거가 우리손에 잡히지도 않고 만질수도 없는 것이지만

그렇지만 energy가 있습니다.

이게 내 안에서 강물처럼 흘러갑니다.

이것을 없앨수가 없습니다. 있어요.

그리고 지금도 나를 그 과거가 지배하고 잇습니다.

 

아들러라는 심리학자는 내담자들에게 항상 이 질문을 했습니다.

-- 첫 기억이 무엇인가?

만일 자신의 삶에서 떠오르는 첫번째 기억(그런 질문을 받고 바로 떠오르는 기억)이

오빠랑 냇가에 가서 재밌게 놀았어요--- 이런 거라면

지금 사는게 괜챦은 분들입니다. 마음이 편안한 분들이지요.

그러나

옛날에 아버지가 술먹고 들어와서 나를 때렸어요--

밤중에 엄마가 맞고 쫓겨나던거 그것만 생각나요--

어렸을때의 악몽같은 일들이 기억나요---

이런 분들은 지금도 그렇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지금도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그 기억이 살아서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 무엇인가--- 하고.

그 기억이 지금 내 마음입니다.

걔를 잘 다독거려야 합니다.

"지나간 일이야-- 지금은 아니야--"라고 다독거려주십시오.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게 되면

대개 새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과거를 묻어버리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정말 깊어지려면

과거를 묻어버리면 안되고 하나씩 자꾸 끄집어내야 합니다.

끄집어내고 나서 그걸 들여다봐야 됩니다.

그래야 내가 강해질 수 있습니다.

옛날의 상처를 치유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족보를 보면 예수님의 조상중에 인간적으로 정말 부끄러운 행동을 한 사람들이 여러사람 들어있습니다.

혈통을 중시하는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이해가 안갈정도로 하자가 있는 사람들이 여럿 들어가 있습니다.

또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자기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다 끄집어내고 있습니다.

이런 일까지 써놨나--- 하는 생각이 다 드는데

사실 그것이 과거를 치유하는 방법입니다.

주님앞에 내 과거를 끄집어내어 주님께 치유를 받는 것,

이것이 심리치료 기법인 것입니다.

 

간혹 이런 분들도 있습니다.

-나는 도저히 기억이 안난다-- 하나도 생각이 안난다--- 라는 분들.

정말 생각하기 싫은 기억은

사람의 마음속의 무의식이 알아서 자동으로 가장 깊은 곳에 묻어버립니다.

그래서 머리에서는 더이상 기억이 안납니다.

그러나 마음 어딘가에 숨어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부분이 계속 곪고 썪어들어가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라고들 말씀하시지만

왜 그런지 모르는게 아니라 상처가 있어서 그러는 것입니다.

 

집에 가셔셔 시간이 있을때마다

내 과거의 아주 안좋았던 것들,

지금은 머리속에서는 잊어버린 것들인데 여기,가슴에는 숨어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하루에 하나씩만 끄집어내서 일기를 써보십시오.

그때의 기억이 어땠는가--

그때 그 마음하고 대화를 해 보십시오.

 

실제로 집에서 과거를 가지고 어떻게 치유를 해나가야 하는가를 설명드리겠습니다.

할머니들하고 얘기를 하다보면 할아버지가 속 썪이다 돌아가신 할머니들이 많으세요.

그럼 얘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놈의 영감탱이가~ 망할놈의 영감탱이~ 하면서 영감탱이가 미워죽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럼 영감님한테 하고 싶은 얘기 지금 다 해보시라고 그러면,

얘기하려다 말고 갑자기 한숨을 쉬면서 "불쌍한 영감탱이~" 그러십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살아있을때는 그렇게 미운짓 했지마는 결국 죽지 않았냐---

지금 미워해서 뭐하냐---

그런 얘기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게되면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안에 있는 한이 풀리지를 않게 됩니다.

내가 용서해주는 것은 용서해주는 것이고

내 마음안의 한을 푸는 것은 또다른 문제인 것입니다.

내가 할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은 가슴에 있고

용서해 주고자 하는 것은 머리에 있습니다.

다릅니다.

정말 용서를 하려면 가슴이 풀려야 용서가 됩니다.

내가 화가 풀려야 정말 용서가 되는데

영감님 생각만 하면 막~ 화가 올라와요,

근데 성당에서 용서하라고 했으니까 용서해야지--- 하면,

즉 머리에서 용서해야지--하면 이 화가 올라오다가 도로 내려갑니다.

얹힌것처럼 그냥 남아있어요.

그럼 이걸 어떻게 해야 되는가.

영감님이 살았냐 죽었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영감님의 어떤 모습이 내 안에 살아있는게 중요합니다.

 

부부싸움을 예로 들어 봅시다.

남편이 부인에게 막 욕을 하고 화를 냈어요.

그리고 나서 남편은 잊어버렸습니다.

남편은 잊어버렸지만 부인들은 기억하고 있지요.

그런데 부인들이 기억하고 있는 그것은 남편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이것을 풀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근데 다 잊어버린 남편한테 가서 그때 그일에 그런 소리하지 않았냐-- 고 하면

남편은 나 그런소리 한적 없어--- 하고 황당해합니다.

그럼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내 마음안에 살아있는 남편 하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지금 남편 말고

내 마음속의 남편하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때 그 화를 내던 그 남편하고.

영감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죽었지만,

그때 나에게 수모를 겪게 하던 그때 그 영감님 모습을 앞에다 놓고

거기다 대고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얘기를 하는데 그게 그냥 얘기로 되겠습니까.

살아생전에는 대들었다가는 얻어맞을까봐 하지 못했던 것을

공상속에서 마음껏 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안의 응어리를 푸는데 크게 도움이 됩니다.

 

대개 마음의 병이 생기는 사람들은 한을 못 풀어서 생깁니다.

어릴때부터 착하게 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이것을 푸는 법을 못 배웠던 겁니다.

우리 민족을 한 많은 민족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어려울게 없습니다.

한풀이를 하면 됩니다.

한풀이 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하고 싶은 얘기 다하는 것입니다.

미운 놈 사진 놓고 할 얘기 다-- 하고 그래도 분이 안 풀리면

발로 막 밟으세요.

자기 마음안의 분노가 응어리가 되기전에 그걸 빨리 빨리 풀게 해 주는게

그게 바로 counseling입니다.

왜 사람들이 혼자하지 비싼돈 내고 상담소를 가는가.

나 혼자 하라고 하면 잘 못합니다.

쑥쓰러워서 못하고,

하다가, 내가 이래도 돼? 이 생각이 들어서 못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옆에서 자꾸 하게 해 줘야하는 것이지요.

 

이같은 한풀이가 왜 중요한가.

내 안의 한이 풀려야지만 정말 용서가 됩니다. 한이 풀려야 합니다.

 

자매님들 사이에 이런 일들이 많겠지요.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는 자매가 나에게 안좋은 소리를 했어요,

근데 단체에서 계속 얼굴봐야 하고 또 같은 동네에 산단 말이죠.

그럼 이때 어떤 선택을 하는가,

-내가 참아야지, 내가 용서해야지----- 합니다.

그런데 그런다고 해서 마음이 풀리나요?

그 자매 만날때마다 놀랍니다.

그 자매 안 보려고 일부러 다른 골목으로 돌아가면 거기서 만나고.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더니 말이죠.

심리적으로 내가 분노가 해소가 안되면 계속 그것이 내 생활에서 걸립니다.

그럴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단 나 혼자 풉니다.

그 자매의 그림을 그려놓고

이년아-- 니가 그럴수가 있어------ 하면서 대꺼리를 하고

그러고 나서 그 자매를 만나면, 괜챦아요.

좀 쑥쓰럽기도 합니다.

’내가 그런거 넌 모르지-----’ 하고 미안한 마음도 올라오고.

그게 자기 마음을 풀어가는 방법입니다.

그게 안될때는 자꾸 화병이 생기고

사람들 만나는 것을 피하게 되는 우울증이 생깁니다.

 

미운사람 사진갖다 놓고 해보고, 사진 없으면 그림 그려놓고 해보고,

그림 못 그리면 이름 석자 써놓고 하십시오.

상담소에서는 비싼돈 받고 이것을 계속 시키는 것입니다.

저도 거의 매일 합니다.

어떤때는 5~6학년때 나를 때린 애가 생각이 나요.

계속 과거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아주 어렸을때 기억들이 차례 차례 올라옵니다.

그 기억이 올라오면 에이, 옛날이니까-- 하고 묻어버리지 말고

바로 그때그때 풉니다. 풀어야 합니다.

마음은 애기 같아서 잊어버리지를 않고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걸 풀어주는 작업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렇게 해야지 그 다음에 기도를 할때도

정말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게 안되고 화를 누르고 하는 기도는 가짜입니다.

개신교 신자들이 카톨릭 신자들보다 기도를 잘하는 이유는 통성기도 때문입니다.

막 소리소리 지르면서 자기 감정을 터뜨립니다.

감정을 다 터뜨리고 기도를 하니까 안에 있는 기도가 나오는데

우리 신자들은 참고 기도문을 갖고 합니다.

기도문에 우리죄를 용서하시고~ 누구도 용서하시고~

순 마음에도 없는 기도문을 갖다가

용서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기도문을 읽으면서

용서해야지--- 용서해야지---- 하고 계셔요.

그렇게 마음이 굳어진 상태니까 기도하라고 하면 당황하고 기도가 잘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너무 굳어져 있습니다.

좀 푸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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